기독교가 사회의 비주류에 놓여 있을 때 우리의 선배들은 기도했습니다. "은혜를 주셔서 교회를 성장 시켜주시고 우리의 삶에서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받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놀랍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가시적으로 누구나 확인할 수 있을만큼 교회는 성장했고 성도들의 삶은 풍성해졌습니다.
그것이 비록 모든 목회자와 성도의 경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은혜의 수혜자들이 되었지요.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신학과 신앙의 경향이 만들어졌습니다. "기도는 역사를 만든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은혜가 찾아온다." 저는 이런식의 이야기에 조금도 딴지를 걸고 싶지 않습니다. 동의하니까요. 그런데 <역사, 은혜, 일>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시비를 좀 걸고 싶습니다.
기도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교회의 성장이나 물질적인 복과 같은 것으로 치환하는 것은 문제가 아주 많은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늘날에도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종류의 은혜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 직전 세대의 목사님들이 우리보다 실력이 있어서, 기도를 많이해서, 진실해서, 준비를 많이해서 부흥을 맛 본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그것이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으신 것이지요.
우리 시대는 준비와 기도가 그 아무리 철저하고 간절해도 개척을 시도하는 대부분의 목회자는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확신컨대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하고 계십니다. 우리시대 신자와 목회자들에게 좌절, 탄식, 실패, 조롱, 한숨의 길로 몰아 넣으셔서 부흥 시대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진지한 고민과 성숙의 자리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를 아름답게 빚고 계십니다.
우리의 죄성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를 단기간에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기에 직전 세대가 경험한 그런 종류의 역사만이 부흥의 참된 표지로 인식합니다.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길이 가장 적합한 은혜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바람대로의 부흥과 성장이 또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 짓을 하고 하고 해 왔는지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경험한 동일한 종류의 은혜는 아니지만 동일한 수준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허락되고 있습니다. 이 길을 외면하지 맙시다. 좌절, 눈물, 실패. 한숨, 갈등, 고민의 자리에서 도망가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종국에 우리의 심령에 억울하거나 원망스러운 맘을 주시지 않으시고 "아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셨고 일하셨구나!" 그렇게 고백하시도록 하실겁니다.
묵묵히 각자에게 주어진 그 길을 오늘도 걸어갑시다. 어쩌면 우리 각자들이 실패자로 부름 받고 있는 이 길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통회 자복하며 회개하는 자리로 가지 않을까요? 그 은혜의 초석에 우리를 불러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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