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마태복음 5장7절
우리나라는 지금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나라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혼란과 불확실한 상황 때문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고 있다. 이 불행한 사건 때문에 손해가 얼마나 될까, 국민들 시간을 대략적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이렇다.
이 사건이 알려진 30일 X 약2000만 명 X 하루 한 시간 낭비 X 최저임금6,030원=약 4조원
직간접적으로 손실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이것의 10배(40조)도 넘는다. 이는 1년 예산의 10%로 국방예산과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 마음고통과 나라의 이미지 실추는 금액으로 환산불가다.
그러나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기를 쓰고 기도해야 한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공의를 행하므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를 사하소서”(단4:27)
이는 이스라엘이 위기였을 때 하신 말씀으로, 우리나라도 정의와 공의가 회복되길 기도해야겠다.
산상수훈 중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말씀처럼 나라를 위해 깊이 슬퍼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실 것이다. 또한 요즘같이 나라전체가 위기일 때 우리부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더 필요하다. 바로 본문말씀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사람을 자비롭게 여기는 것으로, 동정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 어떤 사람이 괴로워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돕고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쉬운가? 시대가 힘들고 어려우면 내가 더 힘들다고 외친다. 그런데도 예수님 제자들이나 우리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가 먼저 이 지구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동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모든 죄를 용서받았고, 성령님을 부어주셔서 날마다 도와주시고, 마지막 날 우리를 기억해주셔서 심판이 아닌 영광의 자리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신비하고 영원한 긍휼함을 받은 우리가 먼저 긍휼을 실천해야 한다.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1.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마9:27)
예수님은 사역하시면서 주변의 불쌍한 자, 소외된 자들, 병든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에게 손짓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하며, 보려고 힘써야 한다. 성도와 가족, 친구 등 이웃들을 살피며, 도울 것을 찾아 돕고 용서할 것은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복음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2. 공동체적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마20:1~16)
마20장은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로, 예수님께서 일찍 온 사람이나 늦게 온 사람이나 품삯을 모두 한 데나리온씩 똑같이 주셨다. 일찍 온 사람들이 불평했지만, 예수님은 하루 종일 기다려도 일자리가 없던 사람을 긍휼히 여기셔서 하루 쓸 돈을 주신 것이다. 이미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포도원 같은 우리교회는 이웃을 품어야 할 것이다. 추수감사절 헌금은 이웃을 섬기고 긍휼을 베푸는데 썼으면 좋겠다.
3. 긍휼히 여기는 것은 신앙과 삶을 함께 가게 하는 고리다.(마23:2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시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절대 닮지 말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정의와 믿음만 있으면 뭔가 부족하고, 긍휼이 있을 때 삶이 조화롭다. 십일조와 믿음은 신앙 부분에서, 정의와 긍휼은 삶의 모습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긍휼히 여김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긍휼함을 실천해야 되는 사람들이다. 가까운 곳의 내 도움이 필요하고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웃을 섬겨,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긍휼 베푸시길 축복한다.
마태복음 5:7~7 5장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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