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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흔적(신승룡 목사)
갈라디아서 6:12~18 최진권 목사 2017-08-27
말씀: 갈라디아서 6장12절~18절

긍정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흔적이나 상처가 있는가 하면, 생각하기 싫은 부정적인 상처나 흔적도 있다.
전자는 영광의 상처로 축구선수 박지성과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떠오른다. 후자는 고생과 고난으로 인해 억지로 생긴 상처로, 두렵고 수치스러워서 꽁꽁 숨겨두려 한다.

그런데 부정적인 흔적과 상처를 자랑한 사람이 있다. 바울이다. 헬라어로 흔적은 ‘스티그마’, 낙인을 뜻한다. 낙인은 주인이 자신의 소유를 나타내기 위해 불에 달군 쇠로 짐승의 몸에 찍는 글씨나 문양이며, 죄수나 노예에게도 찍었다. 당시 ‘십자가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로 낙인 찍혔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을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죽은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자랑했다. 

“나를 괴롭히지 말라 내가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17절)

오늘날 기독교를 개독교로, 목사를 먹사나 목레기로 바꿔 부른다. 그리스도인임을 숨겨야 될 지경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당시 예수의 흔적을 조롱하고 ‘가짜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과 율법주의자들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육신의 할례와 율법준수를 강조했고, 그런 가짜복음에 성도들이 넘어갔다. 이에 바울은 다른 복음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유대인과 율법주의자들은 왜 형식적인 할례와 율법준수를 강조했을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욕심과 이익을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여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자신들의 종으로 삼으려 하고, 박해를 받을까 복음을 따르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것만 믿고 복음을 세상의 것과 교묘히 섞어버렸다. 그래서 완전히 바뀌어버린 복음, 능력을 잃어버린 복음은 육체의 열매만 가득하게 되었다. 당연히 복음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 공동체는 분열되고 깨졌다. 이들은 예수의 흔적을 결코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예수의 흔적을 ‘가시’로 표현했는데, 안질과 말더듬과 간질이다. 또 복음을 전하며 당한 핍박, 고통, 불편함, 마음 상함 등등. 예수의 흔적은 복음을 위해 육체와 마음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의미하며,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복음을 자랑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자랑할 수 있을까?

1.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갈2:20, 6:14)

나의 영광과 예수그리스도의 영광 중 무엇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가? 자신이 만든 복음에 갇혀 있지 않는가? 자신이 의롭게 여기는 것에 종 노릇하고, 박해를 받을까 두려운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충분한지, 십자가의 은혜를 점검하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는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선포하고, 오직 예수의 노예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자랑하라.

2. 박해를 두려워 말라.(12절, 롬8:35~39)

바울이 예수의 노예라는 확실한 증거로 삼은 것이 핍박과 박해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와 끊을 수 없다. 예수님을 닮은 9 가지 성령의 열매-사랑,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맺기 위해 수고하고 몸부림칠수록 상처가 더 날 수 있다. 모욕도 받고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의 병이 들 수도 있다. 그럴수록 예수님의 흔적은 더 커다랗게 남는다. 또한 하나님은 그 흔적을 선하게 사용하신다. 상처받을까, 두려움 때문에, 놀림 받을까 하나님의 일하심을 축소하지 말라. 예수의 흔적이 클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3.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힘을 얻으라.(6:2, 18)

공동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완전히 거룩함을 이루지 못한,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렇게 위로하자.

“혼자가 아닙니다! 제게 기대세요! 당신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믿음의 공동체는 엄청남 힘이 있다. 바울도 공동체의 사랑이 큰 힘이 됐기에,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고 하지 않았을까? 바울 역시 그들을 보며 다시 일어섰던 것이다. 우리도 예수의 흔적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고 붙들어주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우리에겐 예수의 신실한 제자라는 사실을 증명할만한 흔적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흔들리지 않고 자랑할 수 있는가?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점검해 보고, 세상을 두려워 말고,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힘을 공급받으라!
갈라디아서 6:12~18
6장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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