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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을 베풀며 살자
누가복음 4:16~19 최진권 목사 2019-09-22

말씀: 누가복음 4장16-19절

요즘 10주에 걸쳐 ‘예수님을 따라 행하자’고 설교를 하고 있다. 예수님을 따라 행하는 삶은 그리스도인들의 변화의 시작이고, 교회가 변혁되는 출발점이다. 지난 주까지 예수님을 따라 사랑을 행하자, 용서를 실천하자고 결단했다.
오늘은 세 번째로 긍휼에 대해 살펴보고, 실천을 다짐하는 시간되길 소원한다.

긍휼에 대해 설명하길 국어사전에서는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이라고 했다. 영어로는 컴패션(compassion), 어린이 구호단체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 단체를 표현하길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라고 잘 표현했다.
성경에서는 '불쌍히 여겨 함께 하는 것'으로, 아기를 가장 완벽하게 보호하는 '엄마의 자궁'으로도 설명한다. 한반도를 60년 가까이 섬기고 있는 오대원 목사님(David Ross)은 긍휼을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했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런 긍휼하심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알려준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시며 선포하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번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에게 자유롭게 하고/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18,19절)
메시아로 오셨지만 세상 지도자들의 모습과 세상 상식을 뒤엎으며 오셨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소외되고 나약하고 소망 없는 자들에게 새 삶을 주신다고 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이들을 부정하게 여기고 외면했지만, 예수님은 직접 그들에게 가시고 아예 함께하셨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긍휼이다. 

하나님은 아무 가망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를 보내 주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7,8)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에게 최고의 긍휼을 베풀어 주셨고, 성령님으로 내주하신다.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고 끊임없이 약속하셨고, 그 긍휼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

세상은 더러 긍휼을 베푸는 척하면서 어려운 자를 더 어렵게 하고,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만든다.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하니라”(잠12:10) 이런 세상 속에서,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긍휼을 기대한다.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10)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긍휼을 받았기에 세상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긍휼의 완성인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긍휼을 베푸는 자로서 필요한 자세들을 살펴보자

1. 우리 긍휼의 근인인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께 민감하자.

당시 회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약과 메시아에 대한 내용을 잘 알면서도 예수님이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무시하고 배척한다. 우리 안에도 여전히 이런 죄성이 남아있기에,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는 더러운 옷 같은 긍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긍휼만을 나타낸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2. 긍휼은 사람에게 초점을 두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도, 법, 경제, 문화보다 사람에게 초점을 두셨으며, 특히 어렵고 힘들고 좌절된 사람들에게 가셨다.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이 목표였다면 간수가 보이지 않았을 텐데(행16장), 찬송과 기도로 옥문이 열려 간수가 자결하려 하자, "우리가 여기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결국 간수와 그 가족은 구원으로 인도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 청년을 양자로 삼았다. 긍휼은 사람에게 집중하여 예수님을 따라 불쌍히 여기며 돌보는 것이다.

3. 불편함을 감수하며 함께해야 긍휼을 보일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끝까지 함께하셨다. 발까지 씻기며, 여인들을 섬기며, 심지어 자신을 팔 가룟 유다와도 함께하셨다. 사람들은 품위를 따지고, 격을 맞추려 하고, 사회적 신분에 관심이 있고, 이익을 계산하지만, 우리는 이런 차별과 분리를 넘어 불쌍히 여기며 함께하라는 긍휼에 대한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 긍휼의 복도 약속해 주셨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예수님은 긍휼하심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누추함에도 함께 하시며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이런 긍휼을 받고 아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긍휼을 베풀며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누가복음 4:16~19
4장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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