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역대하 20장 32-35절
우리 신앙생활에서 긴장하지 않고 마음을 놓고 방심하는 그런 면은 없을까?
코로나19 상황이 갑자기 온 것은 하나님이 지구상에 사는 인류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기회를 주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 없이도 잘 살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류에게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시는 것일 수 있다. 인류에게 사람의 한계를 알고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역대하 말씀에는 끝까지 잘한 왕보다 방심한 왕들이 많이 나온다. 여호사밧 왕도 25년간 통치하면서 잘한 일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일도 있다.(대하17-20장)
처음에는 지도자와 백성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명령하고, 연합군의 공격을 받을 때는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전심을 다했고, 하나님께서도 태평함을 주셨다. 이렇게 태평한 가운데 왕의 임무를 마쳤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점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실과 성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잃었다. 백성에게는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마음을 잃고 방심했다.
본문말씀에 여호사밧이 마지막에 방심한 두 가지가 나온다.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33,35절)
하나는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그대로 남겨둔 것이고, 또 하나는 악독한 왕과 동맹을 맺은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방심할 수 있는 두 부분이 없나 점검해야 한다.
여호사밧이 방심했던 산당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별 것 아닌 것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전통, 관습, 문화로 자리잡은 것들일 수 있다. 산당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짓기 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솔로몬 때 성전을 지으면서 산당은 필요 없는데, 방치되면서 우상을 섬기는 곳이 되었다. 여호사밧의 아버지도 산당을 없애지 않았고, 여호사밧도 초기에는 없애다가 나중에는 그대로 놔두는 등 오락가락하며, 관습이 되고 문화와 전통으로 굳은 것이다.
신앙에도 산당이 있다. 양다리 신앙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유혹 받는 부분이다. 하나님도 좋고 세상과 돈도 좋고, 예배도 좋고 노는 것도 좋고, 말씀도 좋고 처세술이나 명언도 좋고. 유행처럼 그렇게 사니까 문제 없는 줄 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우리가 하나님을 더 존귀하게 최고의 능력으로 여길 때, 방심하지 않게 되고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또한 여호사밧이 방심했던 악한 자와의 연합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타협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본능처럼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
여호사밧이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연합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일 수 있다. 자신의 아들과 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을 결혼시켜 동맹 맺는 것은 성공적인 전략이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 동맹은 60년 이상 든든하게 쌓아놓은 나라를 뒤흔들어 놓았다. 손해가 가도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은 그쳐야 한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못박는데 앞장섰던 70여 명의 공회원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두려운 상황이다. 그들과 타협하고 사정을 나중에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선포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고 하며 너희들이 죽인 예수님이 구원자라고 굽힘이 없이 말했다.
눈앞의 당장 이익을 보고 방심하기보다, 타협하기보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님을 높이는 것이 더 큰 능력이다.
우리도 방심할 수 있다. 예배와 교제가 어려운 지금 더욱 그렇다. 예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존귀하고 크고 위대하게 생각하며 지내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영원히 인도하실 것을(시48:14) 믿고, 주님을 높이고 방심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다.
역대하 20:32~35 20장 32 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33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마음을 정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34 이 외에 여호사밧의 시종 행적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에 다 기록되었고 그 글은 이스라엘 열왕기에 올랐더라 35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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