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의 증언과 축복(눅1:39-45)
오늘은 엘리사벳의 증언과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작가 마크 트웨인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마크 트웨인이 성경을 읽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성경을 읽고 있는 트웨인의 모습이 의아하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답니다. “선생님께서 성경을 읽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선생님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해하시나요?” 그러자 마크 트웨인은 웃으며 말했답니다.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제가 마음 아픈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 때문이 아니라 이해하고 깨달은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가 되고 깨달았지만 삶에 적용되어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라고 했던 그 말이 우리에게 큰 의미를 남기고 있습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말씀이 믿어지고 그 말씀에 순종되어지게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순종되어졌던 여인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마리아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준비된 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헌신적 순종을 했습니다. 이 말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리아가 몰라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처녀가 약혼한 상태에서 임신을 하면 죽음밖에 없다고 하는 당시의 관습을 모르고 답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순종했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성경을 통해보면 이 순간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는 기적 같은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물론 정확히 언제 어느 날 잉태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추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한 순간 잉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마리아를 찾아 왔을 때가 세례요한을 잉태했던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6개월이 지났을 때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세상에 왔습니다. 이점을 보더라도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고백하는 순간에 이미 성령으로 잉태된 줄로 믿습니다. 아멘. 따라해 보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아멘 할 때에 응답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으로 답하여 여러분의 삶을 응답의 역사로 이루어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또 학자들은 정혼한 남편 요셉에게 꿈을 통해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때라고 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18절로 25절에 보면 천사가 꿈에 현몽해서 네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네 아내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요셉에게 알려 줍니다.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님은 요셉에게도 천사로 임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아멘 하는 순간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기적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 와서도 아멘 하는 성도가 은혜를 받아요. 속으로 아멘을 해도 좋지만 겉으로 표현하면 설교하는 사람이 힘이 나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담임목사 빨리 죽게 하는 방법은 열심히 아멘 하는 거라고 해요. 그러면 담임목사가 신이 나서 소리 지르다가 죽는답니다. 아무튼 아멘 할 때에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마리아가 순종함으로 응답을 받아 잉태하게 되었는데 마리아의 마음속에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한 것일까 하는 부분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남편의 허락을 받아서 자기보다 6개월 먼저 임신을 한 엘리사벳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때에 엘리사벳이 상상할 수 없는 축복된 증언을 마리아에게 해 줍니다. 이것이 본문의 말씀이에요.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서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에 감동되어져서 증언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아,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잉태되었구나!’하고 확신하게 됨으로 그것에 너무 감사하고 감격하여서 46절로 56절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감동 받아서 어떻게 증언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엘리사벳의 증언
마리아가 유대 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했어요.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을 때에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뛰어 놀았다는 것입니다. 임신 6개월이기에 어느 정도 아이가 노는 것은 보통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연적 현상이 아닌 특수한 사건이었습니다. 누가는 이를 성령께서 태아에게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은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태중의 예수그리스도를 보며 기뻐하며 감격하여서 태중에서 찬양하고 영광 돌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멘.
이처럼 태중 세례요한이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더불어 엘리사벳도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태중에서 아이가 뛰어노는 것이 메시아를 향해서 감격해서 찬양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증언하는 것은 자기의 감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증언하는 거예요.
42절을 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자기의 신분을 망각하고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큰소리로 증언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성령으로 감동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감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중요한 일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이루어집니다.
1955년 가을 미국 오리건 주 유게네라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마을회관에서 종교영화를 상영한다는 광고가 났습니다. 그 영화는 한국전쟁에서 생긴 고아들의 참상을 소개하며 이들을 돌보는 손길을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았던 한 농부 부부의 가슴 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고아들이 불쌍하기는 하나 가난한 농부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마음 아픈 영화의 장면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이들 부부는 이 일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농장의 일부를 팔아 직접 한국에 가서 8명의 고아들을 양자로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마을 신문에 기사로 나가자 여기저기서 이들을 돕겠다는 편지가 왔고 어떤 가정에서는 고아를 양자로 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이 농부는 전적으로 이 일에 헌신하게 됐는데 그들이 바로 유명한 홀트 양자회의 주인공인 해리 홀트 부부입니다.그래서 우리나라에 홀트 아동복지재단이 세워진 것입니다. 시골의 농부 부부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서 헌신하고 순종했더니 이렇게 크고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게 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날 성령님께서 저에게 1030을 했으면 좋겠다는 감동을 주셨어요. 1030은 우리교회가 2010년까지 30개 교회를 세우자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교회에서 선포를 했어요. 그러면서도 이것이 과연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그것을 하자면 우리가 6억 정도의 선교비를 보내야 되는데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성령이 감동하니까 하나님께서 주변에 감동하는 분들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여러 성도들이 헌신을 하셨어요. 혹자는 살림에 여유가 있으니까 헌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동으로 선교에 헌신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어떤 분은 익명으로 저에게 헌금을 가지고 왔어요. 그 분은 부부관계가 깨어질 위기 상황에 있는 분이었어요. 집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상당히 물질적으로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분이 “제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하고 싶습니다.”라며 헌신을 해서 한 교회가 세워졌어요. 이렇게 성령에 감동하신 분들에 의해서 20개가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변에는 작은 것에 감동되어서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입주를 앞둔 코오롱 대림 주공아파트 전도를 위해서 여호수아 6장에서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돌듯이 그 아파트를 주변을 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매일 1바퀴, 어떤 분은 매일 3바퀴씩 돌며 그곳에 살게 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감동하심에 순종한 그 순종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줄로 믿습니다. 내 지식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작은 것부터 순종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에 감동된 엘리사벳이 마리아 앞에서 한 증언을 생각해보면 이 증언은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43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실까요.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이 말은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이에요. 엘리사벳은 아론 제사장의 가문의 직계후손이에요. 사가랴도 역시 제사장 가문이에요. 당시 이스라엘에서 제사장 가문이라는 것은 초 엘리트 계급이에요. 반면 마리아는 어떤가요? 남편 될 사람이 목수예요. 한 마디로 비천한 가문이에요. 그리고 마리아는 엘리사벳보다 나이도 훨씬 어려요.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에 모든 면에서 엘리사벳이 마리아 앞에 이렇게 겸손한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미암아 된 줄로 믿습니다. 성령에 감동되면 겸손해지는 줄로 믿습니다. 신분도, 명예도, 지위도 다 내려놓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종의 모습으로 무릎을 꿇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라는 이 말은 아부도 아첨도 아닌 하나님께 대한 복종의 행위이고 더 나아가 왕으로 오실 메시야를 향한 종의 태도라는 거예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된 그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앞에 복종하고 무릎 꿇는 자세로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하게 증언한 이 말씀을 우리가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내 주의 어머니’라고 고백한 부분은 엘리사벳이 겸손한 모습으로, 너무 존경스러워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이 부분을 중점으로 부각하여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데오 토코스 θεο τοκος)라고 부르는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가톨릭과 기독교의 차이점의 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른 곳은 없어요. 이는 초기 기독교가 중세로 넘어가며 타락과 변질이 시작하면서 생겨난 교리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신격화 시켜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마리아가 우리를 구원한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마리아는 죄가 없고 승천했다는 설까지 만들기도 했어요.
특별히 1931년 교황 피우스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재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말씀 드린 대로, 성모 승천설, 성모 무오설 등이 파생된 것입니다. 결코 기독교와 가톨릭은 같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물론 성경의 거의 상당부분은 같이 믿어요. 그렇지만 부분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향하여 ‘내 주의 어머니’라고 한 것은 최고의 존경을 표시한 것이지만 마리아를 신성시한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질문해 볼게요. ‘류우열은 목사다.’ 이 말은 참인가요, 거짓인가요? 맞는 말이지요. ‘목사는 류우열이다.’ 이 말은 참인가요, 거짓인가요? 큰일 날 말이지요. 이렇게 되면 저는 이단이에요. 다시 한 번 물어 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예수님이시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인가요?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고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예수님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어머니인 것은 맞아요. 그러나 예수님을 낳으셨다고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런데 그녀를 신성시하고 우상시하는 것은 잘못된 거예요. 이런 구분이 분명하게 있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리아 숭배사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겸손하게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라고 한 말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요단강으로 오셨을 때 한 말과 비슷합니다.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요한은 신들메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표현으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증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처음 만나는 젊은 처녀이지만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는 사실 앞에 겸손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분명하게 당신이 잉태한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마리아에게 증언해 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기쁨과 찬양함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려드리며 예수그리스도를 해산하는 그 순간까지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 충만 받아서 이웃을 이렇게 증언해주고 축복해주는 것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힘을 주로 격려를 줄 수 있다면 이것보다 귀한 일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또 44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네가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그러니까 메시야께서 마리아에게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계시하신 것과 아울러 자신의 태중에 있는 세례요한마저도 기뻐 뛰었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2. 엘리사벳의 축복
이렇게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잉태를 증언하고 나서 45절에는 축복을 합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당신은 정말로 복 받은 여인입니다. 왜 복 받은 여인입니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복되다는 거예요. 따라해 보실까요. “믿어지는 복” 이런 복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볼게요. 제가 설교를 하면 거짓말처럼 들리시나요? 그런 분이 있을 수 있어요. 교회에 처음 나오시거나 신앙의 배경이 달랐던 분들은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믿어지는 복이 있게 되길 축복합니다.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는 믿어지는 복이었어요. 마리아는 천사가 나타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될 것이라고 하는 말씀이 주어졌을 때 아멘하고 그 말씀이 믿어진 거예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마리아는 구약에서 예언 되었던 모든 말씀들이 다 믿어졌던 여인이었어요. 모든 말씀이 믿어졌었기 때문에 나에게 주신 말씀이 의심 없이 믿어진 거예요. 이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길 축복합니다.
저도 간증할 것이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교회 다니는 것이었어요. 또 예배도 재미있었어요. 교회 다니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일등을 해 본 일이 없었지만 교회에서 하는 일등을 좀 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주는 상은 별로 받아 본 적이 없지만 교회에서 주는 상은 좀 받았어요. 밥도 교회에서 먹으면 맛이 있고 잠을 자도 교회에서 자면 좋았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설교가 재미있었어요. 설교를 듣고 은혜를 못 받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인 것 같아요. 더군다나 설교시간에 뭐라고 말씀하셔도 다 믿어지는 거예요. 전혀 의심이 가지 않았어요. 예전에 목사님들은 참 어려웠어요. 그래도 저는 목사님들이 부러웠어요. 그래서 나에겐 특별한 부르심은 없었지만 목사가 되었어요. 가만히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마리아에게 임했던 은혜, 믿어지는 은혜가 저에도 조금 임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족한 것이 많고 연약한 것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믿어지는 믿음의 은혜를 주셨다고 생각해요. 할렐루야!
그래서 어려부터 예수 믿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으면 믿어지는 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젊은 시절에 예수를 안 믿으면 선지식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것과 충돌을 일으켜서 쉽사리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창조론을 말하면 진화론을 생각하고 예수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면 다원론을 생각하게 됩니다. 서울에 가는 것이 경부선만 있나, 호남선도 있고 중앙선도 있는데 이거나 저거나 잘 믿으면 잘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상이 기본으로 되어 있는 사람은 성경말씀이 잘 안 믿어져요.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성경을 보면 자꾸 의심부터 생기기 때문에 믿음이 확립되지 않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믿지 않아서 그래요. 우리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믿음생활을 잘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는 믿어지는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아멘 되어지는 거예요.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넘쳐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이든지 아멘되어지고, 아멘되어지니까 감동되어지고, 감동되어지니까 순종하고, 순종하다보니까 역사가 일어나는 삶이 우리 삶에 반복적으로 일어나서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인생이지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귀한 일들이 성취되어지고 이루어져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1:39~45 1장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2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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