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오심(눅2:1-7)
예수님의 오심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2월은 성탄절로 기억되는 달입니다. 필리핀에서는 노동자들이 성탄절을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 1년을 일한다고 할 만큼 성탄절의 분위기가 고조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성탄절 분위기가 점점 시들해져감 느낍니다. 교회가 외부에 성탄 트리를 화려하게 장식을 하면 좋겠는데 이런 부분까지도 세상 사람들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바람에 요즈음은 교회도 성탄 트리를 간소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크게 감격하지 못하고 ‘오셨나 보다.’하는 덤덤한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깊이 생각하면서 12월 한 달 동안 성탄의 기쁨과 감격과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믿음이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은 매우 쉬운 말입니다. 그러나 매우 의미 있는 말이며 매우 복잡한 말입니다. 가령 오바마 대통령이 나의 집을 찾아오셨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무구한 의미와 해석이 따르게 됩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국에 사는 미천한 자에게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어떤 관계인지 등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많은 페이지를 장식할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왔다는 것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 속에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이고 거기에 분명한 해석을 내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이 성탄절에 감사가 있는 것이고 귀한 것입니다. 이 성탄절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성탄절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즈음은 성탄절을 백화점에 빼앗기고 룸살롱에 빼앗기서 물건을 팔고 술 먹고 취해 있는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저들에게 성탄 분위기를 빼앗겨버리고 오히려 교회는 조용한 상황에 있는 것 같아요. 트리를 많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우리 마음속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알면 이 날은 기뻐하고 감격할 수밖에 없는 날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33년이라는 짧은 방문입니다. 예수님의 영원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이 33년이라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이 짧은 시간에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근본적인 죄 문제와 저주의 문제와 사단의 문제와 그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하시고 이 세상 떠나실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시작될 수 없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이 구원이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감격할 일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것을 알면 알수록 우리 속에 감사가 있는 거예요.
예수님의 오심은 신비예요.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유대의 한 구석에 오신 그것으로 끝이 아닌 거예요. 예수님은 2천 년 전에도 오셨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또 예수님은 유대 땅에만 오신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한 정점으로 오신 거예요. 지금 우리에게도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 이예요. 그래서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부분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의 예정하신 시간에 오셨다.
첫 번째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은, 따라해 보실까요. “하나님의 예정하신 가운데 오셨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오신 것이 아니에요. 우리 중에 세상에 태어날 때 계획가운데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가운데 태어났지만 우리는 특별한 계획 없이 태어나요. 그렇지만 예수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우리와 같은 태어남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모든 주변여건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으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어요.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말씀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주변 배경은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사람이 1절에 나오지요.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의 초대황제입니다. 아구스도 로마 황제가 천하로 다 호적을 하라고 명을 내려서 로마 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고향에 가서 호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살고 있었던 요셉과 마리아도 황제의 명이 얼마나 지엄한지 만삭이 된 몸으로 유대 베들레헴 다윗의 동네로 호적을 하러 갑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이르러 해산할 날이 차서 해산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여관이 없어서 말구유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이처럼 예수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행하여졌던 일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호적을 하라고 명을 내렸던 로마의 초대 황제 아구스도에 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아구스도 이전에는 로마 역사의 가장 위대한 집정관 카이사르가 있었어요. 그는 주변 국가들을 다 쳐서 정복하여 로마의 국경을 넓히고 주변국가가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나라를 번성시켰어요.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고 그가 믿고 신임했던 직속부하 부루투스에게 암살을 당한 후 아구스도가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남긴 ‘부르투스 너 마저’ 라는 말은 너무도 유명한 말이지요. 카이사르가 죽고 아우구스투스가 새로운 집정관이 되었는데 그는 지혜로운 통치로 말미암아 로마 초대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제 로마는 평화를 이루게 됩니다. 카이사르가 통치할 때는 주변 국가를 공격하여 나라를 확장하다 보니 거기에서 또 갈등이 일어나고 싸움이 끊이지를 않았지만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세워지면서 부터는 외부에서 침공도 없고 외국을 침공하는 일도 없게 되었어요. 그로 인해서 로마에 평화가 깃들게 되었어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때에 싸움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주변을 다 정돈해 놓으신 거예요. 만약 대통령이 인천 서구에 온다면 주변정리를 하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수 있도록 로마에 지혜로운 초대 황제를 세우셔서 평화가 있게 하시고 베들레헴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관심을 갖게 하셨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에 관심이 있지 않겠어요. 놀라우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을 정하신 거예요. 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려면 언어가 같아야 되지 않겠어요? 언어가 다르면 물론 통역을 통해서 전파가 되겠지만 그것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인도나 아프리카에 가서 한국말로 한마디 하면 영어로 통역하고 그것을 다시 현지말로 통역하고 하다 보면 의미 전달이 어려워져요. 두 번 말하고 나면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요. 아주 복잡해요. 그러나 그 당시에는 헬라어로 통일되어 있었어요. 언어 통일이 이루어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헬라어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언어적인 환경도 만들어 놓으셨어요.
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길을 잘 만들어 놓았어요. 물론 로마가 길을 잘 만들어 놓은 이유는 주변 국가를 정복해서 얻은 다른 민족들을 다스려야 하니까 그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속히 가서 그것을 진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그 길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된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그 복음이 쉽게 전파되게 하시려고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으시고 아구스도 황제를 통해서 호적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하시고 비로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물론 로마 황제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시는 것을 위해서 그런 명령을 한 것은 아니에요. 황제로서 자기의 나라 통치를 잘 하기 위해서 명령을 했겠지만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이끄시고 섭리하셔서 그 가운데 예수그리스도가 오시도록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말씀하셨듯이 때가 차매 가장 적절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붙들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다스리시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그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오늘 우리가 이 시대에 태어나서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백성된 것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섭리가운데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도록 환경까지도 완벽하게 준비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우리들의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릎 꿇고 경배치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예배할 수가 없는 거예요. 크리스마스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에게 예배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그리스도께 예배 할 수 있는 거예요. 아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르니까 무덤덤한 거예요. 이것을 알면 이날이 감격스러운 날이요 복되고 아름다운 날이 될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어떻게 하셨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첫 번째로 우주 쇼를 하셨어요.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하늘에서 별이 움직여서 그들을 인도했어요. 여러분 그런 별이 있습니까? 저도 우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제 맘대로 움직이는 별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 우주 쇼를 펼치셨어요. 아멘. 그뿐입니까? 천사를 보내서 목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주셨어요. 저나 여러분이 태어나는데 천사가 와서 아무개가 태어날 거라고 알려주는 경우가 있습니까? 또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통해서 호적을 하러 가라고 명령을 하도록 해서 베들레헴까지 마리아를 가도록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도록 하셨어요. 한편의 드라마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대에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주 쇼를 펼치시고 역사의 배경을 주관하시고 다듬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찬양합니다.
2.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이처럼 기가 막히게 놀라운 방법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왜 오셨을까요. 따라해 보실까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아멘. 우리를 이라고 말하면 감도가 떨어져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헐리우드의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있어요. 2차 대전 중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라이언 일병의 4형제 중 3형제가 전사하고 적진에서 실종된 유일한 생존자인 막내 라이언 일병이 살아남습니다.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미 행정부는 단 한명의 목숨이라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특공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라이언 일병 한 명을 구하러 갑니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생명이 죽을지도 모를 할 상황이지만 지휘관 밀러 대위는 작전을 끝까지 책임지고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는 내용입니다. 너무나 감동스러운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감동스러운 것이 무엇일까요. 라이언 일병이 적진에 빠져 있는 것처럼 오늘 죄와 사단에 빠진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특공대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줄로 믿습니다. 영화 속의 8명 특공대는 라이언 일병 한사람 구하고 끝이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저를 믿는 모든 자들을 다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라이언 일병이 적진에 사로잡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처럼 우리가 죄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죄의 심판과 형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거예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권세를 멋지게 행사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으러 오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죽으려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 다 살려고 태어났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두가 살려고 태어났지만 모두 죽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죽으려고 태어나셨는데 영원히 사신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진리예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출발이 되는 성탄절이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구원이 이루어졌겠어요. 그래서 오심이 소중한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예수그리스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도 감격도 흥분도 없고 무덤덤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새롭게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는 누가복음 7장 32절 말씀처럼 감각이 무뎌지고 관심이 없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기쁨으로 즐겁게 맞아 드릴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멘. 예수님이 오신 것 때문에 여러분의 집에 트리를 장식하세요. 가게를 하시는 분들도 많은 비용을 들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예수님이 오신 것에 대해서 환영하는 마음으로 트리를 만드세요. 예수님이 오신 날은 예수님의 생신날이니까 예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어떤 때는 제 생일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어느 해에 제 생일날이 금요일이었어요. 아이들도 학교에 다녀오고 저도 얍복강 기도회를 마치고 올라갔는데 집에 불이 꺼져서 깜깜했어요. 그래서 “왜 이리 캄캄해. 불을 켜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폭죽이 터지고 불꽃이 터지면서 생일 축하 한다고 말해주었어요. 그리고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놓고 노래로 축하해 주었어요. 다 저에게서 나간 돈으로 한 일이지만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오신 모습을 가정에서부터 축복해야 됩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교회 어느 권사님이 성탄절에 3단 케이크를 강단에 만들어 놓고 예수님의 생신을 축하했어요.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예수님의 생신을 축하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세러머니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온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의 생신을 축하하고 찬양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오심을 환영하고 기뻐하고 감격하는 성탄절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되지 않겠어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하기 위해서 주일학교에서 뭔가를 만들어서 준비하고 발표하는데 발표하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 정도만 그것을 보러 와요. 나머지는 뭐하지요? “TV가 훨씬 낫구만.”하고 말하며 집에서 TV보고 있어요. 이것은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본에서부터 생각을 해 보아야 돼요.
생 텍쥐베리의 어린왕자라는 책에서 여우가 어린왕자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예수님께서 오신 12월 25일을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행복해지고 그 날이 되면 좋아서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는 없을까요? 백화점과 유흥업소에 성탄절을 빼앗겨버리고 교회는 무엇을 위해서 기뻐해야 되고, 무엇을 위해서 감사해야 되고, 무엇을 위해서 흥분해야 될지를 모르는 상황 속에 놓여있어요.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이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마음으로 환영하시고 ‘왕이여 나의 가정으로 오시옵소서. 나의 심령 가운데로 오시옵소서. 나의 어두운 것을 다 해결해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나의 주시여 이곳으로 오시옵소서.’ 라고 고백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비록 동방박사는 아닐지라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는 심정으로 환영하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복된 심령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2:1~7 2장 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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