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하여(눅 2:21-27)
오늘이 2009년도 한해의 마지막 주일인데 여러분에게 좀 엉뚱한 질문을 하나 할까 해요. “한 해 동안 살림살이 잘하셨나요?” 살림살이는 여자만 합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니까 어떤 분은 자신하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집안도 치우지 않고 나온 것이 생각나서 ‘저는 엉망입니다.’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살림살이는 결코 쉽지가 않은데 가나안 농군학교 창설자 김용기 장로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 신앙생활도 잘하더라.”
살림을 잘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을 잘 관리하고 조화롭고 균형 있게 다스리면서 사는 것을 살림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들어오는 수입은 없는데 펑펑 써대면 카드 긁어야 되고, 날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해야 되고 가계에 적자가 납니다. 이것은 살림 못하는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수입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쓰기는 쓰는데 향락이나 죄를 짓는 것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정말 물질이 사용되어서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키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데에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도 살림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또한 그저 쌓아놓기만 하려는 분들도 있지요 이런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살림살이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벌줄 알아야 하고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옆 사람에게 물어 보시지요. “살림살이 잘 하고 계시나요?”
그런데 살림살이는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들어오는 것이 있고 나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수입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수입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 수입을 얻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얻는 수입은 은혜를 받는 수입입니다. 아멘. 은혜를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 충만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 충만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구원도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신앙생활은 받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거예요. 기도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물질 축복도 받아야 돼요. 건강의 축복도 받아야 돼요. 모든 좋은 것들은 다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마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성경 공부를 해서 성경지식을 키워가는 훈련도 받아야 돼요. 이것을 안 받으면 신앙지식이 성장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게 됩니다. 제자 훈련도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제자 훈련은 가르치는 사람도 힘들고 훈련 받는 사람도 힘들지만 감사한 것은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성숙해 집니다. 아멘. 따라해 보실까요. “성숙은 훈련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래서 훈련 받아야 됩니다. 훈련을 싫어하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받아서 내적으로 풍성하고 영육 간에 강건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받는 일에 충실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요일이면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그 때에 신년축복 안수기도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 받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안수기도를 받을 때 그에게 기도한 그대로 복이 임한 줄로 믿습니다. 아멘. 우리가 받는 부분에 있어서 부족하면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을 하나님께 성령 충만 받는 것도 없고, 은혜도 받은 것이 없고, 기도응답 받는 것도 없고, 말씀 충만 받은 것이 없는데 봉사를 합니다. 봉사하는 것은 좋지만 받은 것이 없이 봉사를 하면 항상 거기에는 소리가 납니다. 마치 기계가 돌아갈 때 윤활유가 없어서 삐거덕 소리가 나고 남의 살을 깎아먹고 얼마 못가서 기계가 망가지는 것처럼 은혜 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성령 충만 받지 못한 사람이 봉사하면 본인도 힘들고 남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려면 받아야 됩니다. 은혜 받아야 됩니다. 축복받아야 됩니다. 성령 충만 받아야 됩니다. 받고 나서 주를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하고 마음껏 선교하고 주를 위해서 힘쓰는 일을 감당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수입을 영어로 Income라고 합니다. 지출을 Outgo라고 합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적절하게 잘 이루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사해바다는 Income은 있는데 Outgo가 없어서 죽은 바다가 된 것입니다. Income도 잘되어야 하지만 Outgo도 잘 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기형이 있어요. 받은 것 없이 봉사하려는 사람이 있고 받은 것은 많은데 봉사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옆 사람에게 물어 보세요. “올해 신앙생활 살림살이 잘 하셨나요?” 한해를 되돌아보면 아쉽고 부족한 것이 많아요. 어떤 분은 이런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한해를 돌아보니까 들어온 것이 너무 적어요. 은혜 받는 일을 너무 게을리 했어요. 그런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려다 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나 또 어떤 분은 이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받은 것은 많은데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바빠서 멀리 했어요.’ 내년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회복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받은 은혜를 따라서 더 헌신하고 충성하고 말씀대로 사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예수님처럼 말씀에 충실 합시다.
첫 번째로, 따라해 보실까요. “예수님처럼 말씀에 충실하여 더 나은 삶을 삽시다.” 오늘 읽은 말씀 21절로 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율법에 충실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셨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21절에 보면 “할례 할 팔일이 되매” 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성경의 율법에 기준해서 팔일이 되어서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지었다는 거예요. 또 22절에 보면 “모세의 법대로”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율법, 즉 하나님 말씀이에요. 말씀대로 정결예식을 했다는 거예요. 또 23절에는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라고 말씀합니다. 즉 헌신례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는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으로 보면 예수님의 가정이 가난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말씀대로, 율법대로 할례를 행하고 헌신례를 행하고 성결예식을 행하는 것을 봅니다. 27절 중반 절에도 보면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성전으로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따라해 봅시다.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셨는데 우리는 충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았어요. 죄 사함 받았어요. 의롭다함을 받았어요.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 영생을 얻을 수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금 죽어도 천국갈수 있으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굳이 힘들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들이 깔려있는 거예요. 이것은 심각한 잘못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 해방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친 확신,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에 대한 확대 해석을 조심해야 돼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 맞아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국교회의 위기론을 이야기 합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전도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예수 안 믿는 사람도 거짓말해서 떼어 먹고 예수 믿는 사람도 거짓말해서 떼어 먹고, 다른 것이 없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과 소금된 삶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 만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실패하면 안 돼요. 요즈음은 왜 이리 ‘회’가 많고 ‘식’이 많은지 몰라요. 송년회, 동창회, 친목회, 산악회, 동호회, 결혼식, 장례식.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왜 이리 힘든지 몰라요. 오늘 이 자리에 추운 날씨에도 무릅쓰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다는 증거 인줄로 믿습니다. 아멘.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폐기종을 앓고 계신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숨을 잘 못 쉬시는데 어느 날 폐가 막혀 죽다가 살아났어요. 이분이 주일날 교회를 오는데 리어카를 타고 왔어요. 예배를 사모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한 날에 예배하겠다는 그 중심처럼 오늘 이런 예배가 드려져야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 실천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어요. 첫째는, 따라해 보실까요. “이웃에게 피해 주지 말자.”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요. 나에게 아무리 많은 유익이 있다 할지라도 피해를 주면 안 돼요. 물질적으로 피해를 주면 안 돼요. 잘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으로 피해를 주었다면, 빌리고 갚지 않았다면 회개해야 돼요.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의 정조를 건드리면 안 돼요. 남의 물질을 건드리면 안 돼요. 둘째는 나의 것을 가지고 나누고 베푸는 거예요. 사랑은 피해주지 않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될 때 빛과 소금된 삶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조차도 이 세상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순종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로5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증언하며 하나님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기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도 율법아래 살도록 나게 하셨다는 거예요. 하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에서 구원하시고 해방시켜주신 은혜를 입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키냐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목사님은 율법주의자이신가요? 라고 합니다. 저는 율법주의자는 아닙니다. 복음주의자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흠이 많아요. 그렇다고 그것을 빌미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렸을 때 이런 말씀을 들은 것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지만 저들은 졸며 자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확대 적용하는 신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말씀대로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라며 변명의 구실로 삼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왜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삶을 사셨을 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에 들어갈 때 성전 세를 안 내셔도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성전에 들어가는데 성전 세를 내야 되겠느냐, 안 내야 되겠느냐?” 제자들은 안 내도 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성전 세를 내자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하면서 살면 빛과 소금된 삶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빛과 소금된 삶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복음이 전파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예수님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힘쓰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일에 사고파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금하고 있어요. 엄청난 손해가 올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정말 믿음으로 살고자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을 믿고 결단해야 돼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는 거룩한 노력이 있을 때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 합시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우리의 모델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시므온이예요. 25절로 27절을 보면 어두웠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던 시므온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마침내 아기 예수를 만나는 축복을 누린 자였습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델인줄로 믿습니다.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첫째,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어둡고 삶의 기준이 무너진 시대를 살았지만 세상의 기준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준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요즈음에는 의롭고 경건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를 않아요. 오히려 의롭고 경건한 사람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해요.
어제 인터넷을 보니까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대박 주라면 죄악 주라도 좋다.” 죄악주가 무엇인지를 찾아보았더니 ‘죄악주란 사람의 건강과 건전한 사회공동체를 파괴하는 등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식을 말한다. 군수산업, 도박 산업, 주류와 담배산업 등이 그 예이다.’ 라고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의 성공기준은 어떻게든 많이 버는 거예요.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어요. 시므온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다 보니까 아마도 성공은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때 당시에는 제사장 직분까지도 돈을 받고 매관매직을 할 정도로 타락한 시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평가를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산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귀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위로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을 뜻하는데, 유대인들은 정치적 해방으로 생각했지만, 진정한 이스라엘의 위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신앙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리켜서 재림신앙,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심판 주이신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명명백백히 평가받을 것이라는 신앙에 기초하는 신앙입니다. 시험 안 보는데 누가 공부하겠어요? 시험이 있으니까 공부하잖아요. 그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판이 있기 때문에 바르고 더 낫게 살려고 하는 노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시므온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면서 살았다는 거예요.
셋째,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 감동을 받고 순종하면서 살았습니다. 25절에는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26절에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7절에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 성령의 감동,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았다는 거예요.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살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 이 시대는 내 생각이 정의인 시대예요. ‘네 생각 대로해. 네가 옳아.’라고 말하지만 사사기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다 자기가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자기의 생각에 옳은 대로 행했어요. 예를 들어 첩을 얻어서 간음을 행하면서도 자신이 옳은 대로 행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여인을 죽여서 열두 도막을 냈다고 성경에는 기록하고 있어요. 그런 참혹한 짓을 하면서도 내가 옳은 대로 행했다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옳다고 하는 기준이 이렇게 틀립니다.
내가 보기에는 옳은 것인데 상대방이 보기에는 악일수가 있어요. 또 상대방은 정의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불의일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성령의 지시하시는 대로, 성령의 감동하시는 대로 산다는 것은 내 생각대로 산다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거예요.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산다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내 기준을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열사람에게 다 물어보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가장 힘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절대로 목회자의 음성을 안 들어요. 그러니까 말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지만 다 자기의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시므온처럼 성령의 지시를 받으면서 살아야 우리의 삶에 더 나은 삶이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그에게 지시하시기를 네가 죽기 전에 메시야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았더니 마침내 성전에서 아기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축복을 누린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부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더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저는 주일날 외부에서 목사님이 오시면 식당에 가서 식사접대를 했던 일들을 얼마 전부터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일날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더라도 식당에서 식사접대를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주일날 사먹으러 다니니까 문제입니다. 내가 사먹으러 다님으로 그 식당주인을 일하게 만드는 거예요. 간접 죄예요. 이것 때문에 구원받는지 받지 못하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신앙이 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빛과 소금된 삶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경건한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하며, 종말신앙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심판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고 살아감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하여 나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9년도 신앙생활의 살림살이가 잘못된 것들이 2010년도에는 영적인 신앙생활의 살림살이가 잘 이루어져서 은혜 충만히 받고 주신 그 힘과 능력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세상에서 칭찬받는 삶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임영수)
여호와 하나님
모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부끄러움을 느끼고
우리를 바라볼 때 깊이 반성하고
우리를 바라볼 때 깊이 존경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주십시오.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아온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조소하고 침 뱉는 멸시의 대상으로밖에 서 있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기도합니다.
우리의 낮은 생활습관을 다 떨쳐 버리고
좀 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높은 위치에 서서
당당하고 굳세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누가복음 2:21~27 2장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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