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습관세우기(눅 2:36-40)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백삼 년 만에 폭설이 내려서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어려운 점이 많았던 한 주간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인하대 병원에서 발인예배를 드리고 고속도로로 서울을 올라가다 교통사고가 난 것을 여섯 건이나 보았어요. 길이 미끄러워서 사고도 많고 문제도 많지만 하나님께서 한 주간을 지켜주셔서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신년이 된지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신년에 작심삼일 한 것 벌써 끝났어요. 어떤 분은 작심삼일 백번만하면 일 년을 성공적으로 살수 있다고 말합니다. 새해를 출발하면서 올해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기 위해 마음의 다짐이 있었지만 예전에 해 오던 습관을 따라서 살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새해에는 좀 더 주님을 닮아가고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겠다는 거룩한 결심과 뜻이 세워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닮아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예수님 흉내 내기”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자꾸만 흉내를 내다보면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는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열심히 예수님을 닮는 생활, 주님을 따라가는 생활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올해는 사업이 잘되고, 건강이 좋고, 가정이 평안한 은혜와 축복도 누리셔야 되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닮고 주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가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 하라는 축복처럼 모든 것들이 잘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주님과 가까이 지내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옆 사람에게 인사해 보실까요. “올해는 주님과 가까이 지내는 한해가 되십시오.” 신앙생활은 늘 주님과 동행하는 거예요.
룻기 1장 16절로 17절에서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를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끝까지 함께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주일학교 때 목이 터져라 불렀던 찬송이 있었습니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찌 즐거운 일 아닌가 맘에 맑은 하늘 열리고 밝은 빛이 비친다 발자취를 따라가자 기쁜 마음으로 발자취를 따라 가자 찬송하며 즐겁게’ 이 찬양이 그동안에는 찬송가에서 빠져 있었는데 개역개정판에는 560장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주일학교 선생님들도 이 찬양만 부르면 아이들이 힘써서 찬양을 하니까 항상 이 찬양을 하게 했어요. 이 찬양을 열심히 부르다 보니까 지금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찬송대로 된 줄로 믿습니다. 올 한해는 주님을 열심히 따라가고 주님을 흉내 내다가 주님을 닮고 주님의 향기가 나타나고 주님의 모습이 보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이것이 없으면 외형적으로 아무리 잘 되어도 그것은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은 물거품인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은 주님 닮은 모습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평생 주님을 본 적이 없지만 거의 주님을 닮았다고 할 수 있는 한 여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6절에 보면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84세나 된 분인데 세상에 내 놓을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재산도 명예도 없지만 그녀는 평생을 주님 닮은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1. 거룩한 습관을 세운 안나
안나가 주님을 닮은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요. 따라해 보실까요. “거룩한 습관”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한 생애를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 평생을 살면서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살았습니까?” 라고 질문할 때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글쎄요. 특별한 습관은 없는데요. 더구나 거룩한 습관은 없는데요.”하고 말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말해주고 있는 거예요.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거룩한 습관입니다. 습관적인 예배를 나쁘게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좋은 쪽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습관에 매여서 주일날 다른 곳으로 갈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도 참 좋은 습관이지요. 간혹 교회에 나오면서도 주일날 놀러가는 습관을 가진 분이 있어요. 친구 만나는 습관을 가진 분도 있어요. 그 습관은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안나는 84세가 되기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으며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었다고 37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그녀는 결혼 후 7년 만에 남편이 죽었습니다. 당시에 결혼을 10대 초반에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60년 이상을 청상과부로 산 것입니다. 그 인생이 얼마나 힘없고 고독하고 가련했겠어요. 그렇지만 성경은 이 여인을 가련하고 고독한 여인으로 말하지 않고 디모데전서 5장 3절에 말하고 있는 참 과부처럼 존경할 만하고 모든 사람이 본받을 만한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영웅호걸이 기록되어 있나요? 부자의 순서대로 목록이 기록되어 있나요? 성경에는 그 인생이 얼마나 거룩한 습관을 따라서 살았느냐를 기록하고 있어요. 아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실 지도 모릅니다. “너는 어떤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살다가 왔느냐? 혹시 쓰레기 같은 습관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느냐? 타락한 습관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느냐?” 본문에서 누가는 안나를 소개를 하면서 비록 과부로 평생을 살았지만 결코 그녀는 불행하지 않았고, 그 인생이 무의미하지도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무시당할만하지도 않은 삶을 살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나는 성전에 올라오셔서 정결 례를 하고 헌신 례를 드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뵈옵고 단번에 그가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람들에게 메시아이심을 알릴만큼 영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안나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단번에 알았던 것은 그녀가 성령 안에서 늘 깨어있던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세요.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던가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알았던가요? 구원자로 알았던가요?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나 병 고치는 사람이나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사람이나 애국자로 생각했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로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2010년 새해를 맞이하여 성도님들에게 거룩한 습관을 세워가겠다는 결단이 마음속에 있기를 바랍니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거룩한 습관을 따라서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시고 습관을 따라서 저녁에 기도하신 것처럼, 안나가 84년 평생 성전을 떠나지 않고 습관을 따라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처럼 우리성도님들에게도 이런 습관이 세워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습관을 따라 경건생활을 이루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습관을 따라서 성경을 열고 읽고 듣는 분들이 많습니다. 습관을 따라 새벽을 깨우는 성도가 있는가하면, 매일 저녁8시가 되면 2층에서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봉사도 습관인 것 같습니다. 봉사하시는 분들이 봉사를 합니다. 이런 습관은 그들의 삶에 아름다운 진주 같은 열매로 알알이 영글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습관을 길들인다는 것은 매우 좋아 보이지만 그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려운 일입니다. 쓰레기 같은 습관은 노력하지 않아도 생깁니다. 그러나 거룩한 습관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릅니다. 특히나 하지 않던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운명을 낳는다.”는 말처럼 습관이 운명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1)성경읽기
거룩한 습관을 들이는 첫 번째는, 따라해 보실까요. “성경읽기” 성경을 읽는 것은 거룩한 습관을 세워 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부분입니다. 일단 성경을 펴고 읽는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모으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타락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을 1년에 한번 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번 읽는 것은 고사하고 교회에 나온 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성경 1독을 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곤란합니다. 성경을 읽는 습관이 되지 않아서 못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날마다 펴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인터넷을 켜지 전에 먼저 성경을 펴십시오.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성경을 펴는, 서류를 결제하기 전에 먼저 성경을 펴는 거룩한 습관을 갖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난해 성경을 11독(김미화), 9독(송정순 한현주), 7독(김충한), 6독(하일순), 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 외에도 3독, 2독, 1독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격려의 박수를 드립시다. 일 년에 11독을 하려면 매일 성경을 4~5시간정도씩 읽어야 합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못했어요. 어찌 보면 성경읽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1독 정도는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하루에 3~4장씩만 읽으면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3~4장씩 읽는 것은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사람은 결코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7시 반이나 늦어도 8시에는 출근을 합니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성경을 엽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성경을 열지 못하고 급하게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점검한다든지 다른 일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컴퓨터를 켜기 전에 성경을 읽으면 30분에 4장 정도를 읽는데 컴퓨터를 켜놓고 성경을 읽으면 성경 4장을 읽는데 한 시간도 걸리고 어떤 경우는 두 시간도 걸립니다. 그래서 습관이 중요해요. 잠자기 전에 성경을 읽는 분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서 읽는 분도 있는 것처럼 여러분 나름대로 습관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성경을 일독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일독하겠다고 결심하고는 마태복음 1장 읽다가 끝납니다. 또 어떤 분은 창세기부터 읽다가 천지창조까지 읽고는 덮어버립니다. 이것은 곤란합니다. 평일에 3장 주일에 5장을 읽으면 일 년에 일독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거룩한 습관을 세우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정시기도
두 번째로는 정시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습관 세우기에서 기도는 너무 중요합니다. 안나는 84세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기도했는지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기 때문에 성전을 떠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여러분이 하루에 세 번씩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성전에 와서 기도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만약 여러분이 여섯 번을 정해놓고 기도한다면 성전에서 살아야 될 거예요. 시간을 정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요. 하루에 세 번씩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한번이라도 성전에 들러서 기도하겠다는 마음의 각오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가정에서도 기도할 수도 있고 직장에서도 기도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요. ‘주님, 올해부터는 꼭 성전에 들러서 기도하겠습니다.’하는 다짐이 있기를 바랍니다. 먼 곳에 사시는 분들은 어려움이 있겠지요. 이런 분들은 가정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기도 방을 만들고 그 곳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형편 따라 생각나는 대로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분들은 절대로 기도 못합니다. 형편이 되는 대로, 시간이 나는 대로 하는 기도는 사실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정하지 않으면 안 돼요.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고넬료도 기도시간을 정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시편108편 2절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 가운데 특별히 새벽을 깨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요 다른 것은 다해도 새벽기도는 못하겠어요. 하루 새벽기도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후들하고 눈이 침침해요’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새벽기도를 함으로써 만물을 대하기 전에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을 뵈옵고 그 하나님과 교제 한다는 거룩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보다 소중한 일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온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새벽을 깨워서 아침부터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교회 제도적으로 만든 나라는 없다고 말합니다. 저도 외국을 다녀보지만 새벽기도를 하는 나라는 없어요. 예수님이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 습관을 따라서 한국교회가 하는 새벽기도는 너무 소중한 거예요. 새벽기도 하는 성도들은 건강해지리라고 믿습니다. 새벽기도 하는 성도들은 늘 깨어있는 성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3) 큐티
세 번째는 큐티하는 것입니다. 큐티는 단순히 말씀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말씀 가운데 하나를 붙잡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하는 거예요. 읽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이고, 깨닫는 것은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이고, 행동하는 것은 손과 발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이 머리에 머물러요. 머리로 판단합니다. 이것이 가슴으로 내려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가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내려와서 행동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를 “신앙은 좋은데 삶은 엉망이다.”라고 비판합니다.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는 거예요. 삶의 문제에서 주님 닮은 태도가 없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좀 더 성숙하고 겸손하고 배려할 줄 알고 섬겨줄 줄 아는 모습을 발견하기 원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신자보다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해서 실천할 때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으로 변화되게 될 줄로 믿습니다.
4)독서
네 번째는 독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습관 가운데는 독서가 있습니다. 기독교 매체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성도의 신앙 성숙을 위해 도움이 되는 순서를 물었더니 첫째는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는 것이며, 둘째는 경건서적을 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세 시대에 경건한 생활을 이루어 가던 성도들은 반드시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했습니다. 이는 ‘거룩한 독서’(聖讀)로 영적 독서를 말합니다. 즉 경건한 독서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성숙도가 결정되고 얼마나 영적인 지식이 풍성해지는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1월부터 게시판에 추천도서를 붙이려고 합니다. 구입하셔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1달에 1권 읽기입니다. 저자는 수십 년간 쌓아온 신앙의 엑기스를 책으로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성숙해지고 저자가 경험했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하게 되면 독서보고가 있습니다. 경건서적을 읽고 요약과 느낌 그리고 자신의 결단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금요일 남성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독서보고를 받았습니다. 보고내용의 공통점은 훈련자 모두 복잡한 마음으로 제자훈련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포기할까를 생각했다는 분도 있어요. 그러면서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고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그래, 이왕 시작했으니 한 번 해보자!’하고 결단했답니다. 할렐루야! 책을 읽으면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합니다. 태도가 바꿔집니다. TV프로그램 ‘무한도전, 패밀리가 떴다.’를 열 시간 시청해도 우리의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독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것뿐 아니라 거룩한 습관은 많이 있습니다. 봉사도 해야 됩니다. 섬기는 것도 해야 됩니다. 선교도 해야 됩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도 거룩한 습관입니다.
2. 거룩한 습관을 따라 사신 예수님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거룩한 습관을 따라 사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해 볼게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30세까지 엉망으로 사시다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이제부터 거룩하게 살아야지’라고 하셨을까요? 아니면 어려서부터 거룩한 습관을 따라서 사시다가 공생애도 그 습관대로 하신 걸까요? 후자입니다. 어렸을 때는 아무렇게나 사시다가 30세가 되시면서 거룩하게 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하신 거룩한 습관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습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거룩한 습관을 따라서 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랍비에게 배운 것이 없지만, 심지어 글을 모를 것이라고 추측할 정도였지만 예수님은 12살 시절에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을 할 정도로 지혜로우셨습니다. 주님은 성경을 가까이 하셨으며 묵상하셨습니다.
주님조차도 거룩한 습관을 따라 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거룩한 습관 없이 온전한 신앙생활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은혜 받으세요. 복 받으세요. 형통하세요.”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은혜 받는 것과 복을 받는 것과 거룩한 습관은 다른 것입니다. 은혜는 있는데 거룩한 습관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복은 받았는데 거룩한 습관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성경은 은혜 받은 것과 복 받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어떤 거룩한 습관을 따라 살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느 위치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합니까? 주님을 닮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까? 새해를 맞이해서 거룩한 습관을 세우십시오. 예배드리는 습관, 목장 모임 하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독서하는 습관, 시간을 정해서 기도 하는 습관, 큐티하는 습관 등 거룩한 습관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에게 말해 보실까요. “올해는 거룩한 습관을 세우십시오.” 아멘. 올해는 거룩한 습관을 통해서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가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2:36~40 2장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39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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