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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예수
누가복음 2:40~52 유우열 목사 2010-01-17
잃어버린 예수(눅2:40-52)

 지난 주일에는 거룩한 습관을 가졌던 안나에 대해서 살펴보았어요. 거룩한 습관에 대해서 설교를 했기 때문에 새벽기도를 안 하던 우리 성도님들이 거룩한 습관을 따라서 새벽기도 할 것이라고 여겨져서 월요일 새벽을 상당히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아마도 마음은 있었는데 너무 추워서 못 나오신 것 같아요.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을 지내면서 어떤 마음의 결단을 하셨습니까? 특별히 올해는 성경1독을 하겠다고 결단하시고 실천 하신분계십니까?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올해는 성경1독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계획대로 실천에 옮기셨어요. 이런 경건생활은 하루를 승리하면 그 다음이 승리하게 되고 일주일을 승리하게 되면 또 한 주간을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실패하면 내일도 없고 오늘 실패하면 다음 주도 없는 것이지요. 경건생활에 늘 승리하는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장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릅니다. 성숙을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올 한해는 대가를 지불하고 시간을 지불해서 영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한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우리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어요. ‘우리교회는 긍휼의 은사가 많은 분들이 많구나.’ 또 교회적으로도 긍휼의 은사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누가 힘들고 어려울 때 돕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면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평상시에도 느꼈지만 지난주에는 더 많이 느꼈어요. 지난주일 저녁에 개척하시는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시고 나서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분들이 그 분을 돕겠다고 손을 내미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섬길 수 있고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따뜻한 마음은 아무리 혹독한 영하의 날씨도 결단코 얼릴 수 없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간에 제일 추웠던 새벽이 영하 16도였어요. 저는 그 새벽에 새벽기도 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도 다 얼어붙어서 새벽기도에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많은 성도들이 나왔어요. 영하16도의 추위도 하나님 앞에 경건을 이루겠다는 뜨거운 열정을 얼어붙게 하지는 못했어요. 새벽을 깨우는 마음은 새벽을 깨우는 마음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돕고자하는 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이 되었어요. 
 또 지난 주간에 이런 모습도 저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전도하고 나눔을 하는 날에도 상당히 추웠어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나와서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우리교회는 부흥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1.1.1 전도 운동을 하니까 한사람이 한사람을 전도하겠다는 마음이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감동스럽게 퍼져나가는지 모릅니다.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 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2년 전쯤에 충주에 있는 황성박씨라는 분을 김정호A집사님과 함께 심방했습니다. 그분은 전혀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입니다. 전기공학 박사이고 대통령표창을 받은 사람인데 하던 일에 실패했던 분이에요. 그 분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어요. 처음엔 교회에 안 나간다고 했는데 끊임없이 기도했더니 교회를 나가게 되었어요. 얼마 전 새해 벽두에 그에게서 이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새해인사 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저는 이제 모범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그를 위해서 지금까지도 기도하고 있는데 이렇게 우리가 한사람이 한사람을 청하고 기도하면 먼 곳에서도 변화되고 어느 곳에서든지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혹한의 날씨도 불구하고 나눔을 쉬지 않고 합니다. 차도에서 찬바람을 맞아가며 토스트와 커피를 나누는 일이 얼마나 춥고 힘들겠습니까? 그래도 아주 훈훈한 모습도 있습니다. 차를 잡는 집사님들이 손을 흔들면 모든 버스나 택시가 서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가는 분들도 거의 90%정도의 기사님은 손을 흔들어 주고 가시더군요. 지나가는 차로 인해 찬바람이 이는 차도는 아주 춥지만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또한 선한사마리아에서는 반찬을 만들어 나눕니다. 이처럼 이곳저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겨주는 이런 모습들이 얼마나 보기에 좋은지 모릅니다. 지난 주간에 교회 밖으로 나온 교회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섬김을 보여줄 때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더 효과적으로 말할 기회를 얻는다.” 우리가 지역을 섬기면 지역에서 우리가 더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더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또 지난주에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섬나라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이 발생하는 과정은 길겠지만 정확하게 7초를 7도가 조금 넘는 강도로 흔들었다고 합니다. 그랬는데 대통령궁이 무너지고 유엔대사가 죽고, 많은 시민들도 죽고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건물더미에 깔려 생사를 알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일어났습니다.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도 7초만 흔들면, 우리 건강을 흔들어버리시면 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업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시기에 우리가 평안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이것을 흔들어버리시면 잠깐 사이에 모든 것이 소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불행을 당한 아이티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교회에서도 모금함을 마련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밥 한 끼를 먹지 않는 마음으로 목장에서 아이티를 위해서 모금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말씀은 매우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열두 살 어린 시절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는 여러 곳에 실려 있지만 공생애를 시작하는 30세가 되기까지의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은 이곳 외에는 없습니다.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과 육신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그 과정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게 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은혜 받고 뭔가 새로운 결단을 하고 돌아 갈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은혜 가운데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한 마디로 함축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40절 후반 절입니다. 다 같이 읽어 보실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예수님의 어린 시절, 청년 시절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어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따라해 보실까요. “하나님과 가까웠더라.” 하나님과의 사이에 간격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성령님 안에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 거해서 간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가 위에 머무르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은 내가 주님과 간격이 없이 친밀한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예배를 마치고 성전을 나가면서 주님과 멀어진 상태로 한 주간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위에 있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과 간격이 없이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이루어질 때 은혜가 그 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승리인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생활을 위해서 매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받은 은혜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아가서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삶을 이루어가는 거예요. 이렇게 일주일을 승리하면 또 그 다음주일에 승리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할 때에 한 주간을 승리 할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한 주를 승리한 분은 그 다음 주에도 믿음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 주간 한 주간을 승리하다 보면 일 년을 승리하는 것이고 일 년을 승리하는 분이 평생을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실패하는 사람은 내일이 없는 거예요. 신앙생활에는 내일이 없어요. 오늘 잘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하루하루, 예수님의 일주간, 예수님의 일 년은 늘 하나님과 가까운, 간격이 없는 삶을 사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이 세상을 떠나시기에 앞서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요한복음 17장21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간격이 없는 삶을 사는 첫 번째 방법은 성경을 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를 시작하면서 성경을 펴셨나요? 그것이 참 중요해요. 휴대폰을 끄는 등의 방해 요인을 제거하고 나서 성경을 펴고 하나님 말씀 앞에 나를 세우는 거예요. 그리고 그 말씀을 겸허하게 읽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예요. 성경을 펴는 순간만큼은 경건해진다고 믿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과 간격이 없는 삶을 이루어가는 모습입니다. 아침에 말씀을 펴면 그 하루가 풍성해지는 거예요. 아멘. 예수님의 어린 시절 같은 축복된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어 친밀한 상태가 이루어지니까 형통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어떤 역사가 일어날까요? 따라해 보실까요. “저절로 열매가 맺는다.” 열매를 맺으려고 일부러 노력할 필요가 없어요. 주님과 친밀해지면 저절로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온도와 습도가 맞고 거름이 있고 태양이 잘 비추어주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거예요. 우리가 아침부터 말씀을 읽고 경건한 삶을 살고 주의 말씀과 동행하는 매일의 삶을 살게 되면 그 하루가 풍성해지는 것이고 그날그날 열매가 맺혀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이 주님과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승리하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잃어버린 예수
 그런데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웃지 못 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41절을 보면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그 모든 예식을 마치고 돌아오게 되어서 하루 길을 왔는데 예수님이 옆에 안 계신 것을 알게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친척과 아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물으면서 이틀이 지나 마침내 성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말씀 내용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아이를 데리고 먼 길을 갔다가 아이를 하루 동안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 모르고 지냈던 분계십니까? 어떻게 해서 저들은 예수님을 잃어버렸을까요? 학자들의 말로는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성실하셨는지 부모가 터럭만큼이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따라 오실 거라고 여겼다는 거예요. 또 당시의 여행은 한 무리는 남자끼리 그리고 한 무리는 여자와 어린아이로 이루어져서 여행을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께서 마리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마리아는 아버지 요셉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이를 잃어버린 것을 몰랐을 거라는 추정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추론을 들어서 설명한다 할지라도 아들을 잃어버리고 3일을 가면서 알지 못했다는 것은 결코 정당활 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바쁘고 무관심한 오늘의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이야기가 이천년 전의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도 그럴 수 있어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지만 성전을 떠나가면서 ‘예수님 안녕히 계세요.’ 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한 주간을 주님 없이 살아갑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일주일 후에 성전을 기억하고 다시 올라온다는 것이지요. 아예 성전을 올라오지 않는 사람은 십년 이십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지요. 우리의 습관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성경책도 집에 가면 덮어 책꽂이에 올려놓고 전혀 주님 생각을 하지 않고 주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마치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가 예수님을 성전에 남겨두고 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44절입니다.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전혀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지만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도 이러한 실수와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참으로 경건한 부모였어요. 당시의 역사적인 흐름을 보면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은 세 절기인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는 성전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후부터는 초막절이나 칠칠절은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유월절에만 겨우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 초차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건했던 예수님의 부모조차도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더라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퀴즈를 하나 내볼게요. 첫 번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경건해졌을 것이다. 두 번째, 예수님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실지라도 경건한 삶을 살기위해 애쓰고 힘써서 경건해졌다. 몇 번째가 맞습니까? 두 번째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저절로 경건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경건의 삶을 살았기에 경건의 삶을 사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건을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이처럼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신앙생활이 ‘주여! 믿습니다.’하고 고백 만 하면 주님께서 다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우리의 가는 길에 형통의 역사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늘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고 행여 주님을 놓쳤으면 더 힘써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멘. 이런 수고와 노력이 신앙생활입니다. 저는 파스칼이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신앙을 갖기는 쉽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다.” 신앙생활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세상 환경을 이겨야 되고 경건한 습관을 이루려니까 어려운거예요. 경건하지 못한 삶은 노력하지 않아도 얻어지지만 경건한 삶은 마음과 힘을 쏟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쏟지 않으면 성경 한 장도 읽어지지 않습니다. 저도 성경을 한 장 읽는데 30분이 걸릴 때가 있어요. 조금 읽다가 전화 받고 다른 일이 생기고 잡생각이 들어오고 하는 통에 성경 읽기도 바쁘고 쉽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요셉과 마리아를 보면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유를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동생들을 낳았잖아요. 그래서 마리아는 동생들을 돌보느라고 분주하고 정신이 없어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말썽 부리지 않는 예수님을 잠깐 놓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 만나느라고 바쁘고 아기 돌보느라고 바쁘고 일하느라고 바빠서 예수님을 놓친 거예요. 문제는 바쁘기 때문이에요.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별하지 못해서 일어난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바쁜 일에 쫓기면서 살아갑니다. 요즈음은 거지도 바쁘답니다. 한국 사람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따라해 보실까요. “바쁜 아빠 나쁜 아빠, 바쁜 남편 나쁜 남편, 바쁜 엄마 나쁜 엄마, 바쁜 목사 나쁜 목사” 바쁘면 나쁜 거예요. 바쁜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을 위해서 바쁜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로 바쁜 거예요. 정말 중요한 일, 영적으로 가치 있는 일, 하나님과 관계를 세우는 일, 내 믿음이 성장하는 일로 바쁜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것, 영원히 가치도 없는 것에 바쁜 거예요. 돈을 벌고 사업을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그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밥을 한 시간 늦게 먹는다고 죽지 않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으면 하루가 의미 없이 지나가는 거예요.

 이번 달에 안아주심 이라는 책을 추천도서로 게시판에 올렸습니다만 늘 급한 일로 쫒기는 삶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의 내용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급한 일 때문에 쫓기듯이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일을 들여다보면 급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정말 중요한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우는 일입니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게으르게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지런해야 되지만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한 일을 먼저 하면 바쁠 게 없다는 거예요. 순서가 뒤죽박죽되니까 바쁜 거예요. 항상 급한 사람은 남이 만나자고 하면 가리지 않고 다 만납니다. 가자고 하는 곳에 다 갑니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아는 사람은 불필요한 것은 거절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거절합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데 누가 만나자고 하면 거절합니다. 이런 태도가 되어야 돼요. 그래야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하루 동안 잃어버리고 며칠을 찾았나요? 이틀을 찾았어요. 그리고 사흘 만에 성전에서 토론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난 거예요.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가 훌륭한 점은 잃어버린 줄을 하루 만에 알았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라요. 예수님을 영접했으니까 동행한 줄로만 생각해요. 교리적으로만 동행한다고 믿는 것이지 정말로 삶속에서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행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님과 가까운 삶을 살면 그 인생은 승리하고 성공할 줄로 믿습니다. 다음 주도 잃어버리지 말고 살고 또 그 다음 주도 그렇게 살면 성공하는 거예요. 일주일씩 오십 번 승리하면 일 년을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서 새롭게 경건을 시작하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다른 것을 대하기 전에 먼저 주님과 교제하십시오. 이렇게 한주를 승리하십시오. 그러면 또 한주가 여러분에게 승리의 한주로 다가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돌아오는 한 주는 주님과 동행하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어서 하나님과 가까우셨던 것처럼 하나님과 가까운 삶을 사셔서 풍성한 열매가 있는 한주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2:40~52
2장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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