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눅 3:1-6)
지식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부터 상당히 부담스럽지요?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영적인 지식이 충만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볼까요? 여러분은 언제,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어떤 분은 경험을 이야기 할 것이며 또 어떤 분은 구원을 받기는 받았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었어요. “언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격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는 대답이었어요. 어떤 분은 어려서부터 믿었기에 감격적이기 보다 점차적이었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몰랐던 사실이지만 성경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지식으로 다가왔을 때 확신하게 되고, 감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귀한 은혜의 진리라고 할지라도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서 나에게 지식이 될 때에 믿게 되는 것이고 확신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듣고 나니까 믿음이 생겼다는 거예요. 듣는 것이 곧 지식입니다. 진리를 들어야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들을 때 영적인 지식, 성경적인 지식이 더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내가 가야할 길과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길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으려면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는 만큼 믿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름만 몇 자 아는 것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놀라운 비밀들을 알아야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충만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배움입니다. 복음을 듣고 배움으로 지식이 될 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처럼 영적인 성장과 성숙도 배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배움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배움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그럴 때 힘을 얻으며 확신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배움이 한 축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배움이 없는 신앙생활은 정체입니다. 배움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합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아는 만큼 믿고 아는 만큼 성장한다.” 설교를 통해서, 공부를 통해서, 거룩한 독서를 통해서, 성경 안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종합적인 배움이 있어질 때에 우리에게 진정한 영적성숙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게으르지 말아야 됩니다.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도들 가운데 이렇게 오해하는 분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그저 예배나 잘 드리면 되고 적당히 봉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착하게 가지고 선하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착하고 선하게 사는 것은 성도의 기본입니다. 우리는 기본에서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신앙의 연조에 따라서, 믿음의 경력에 따라서 믿음이 점점 성장해야 되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장성한 분량까지 들어가도록 늘 노력하고 수고하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배우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결코 자라나지 못할 것입니다. 배움은 우리로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영적 지식에 부요하기를 바랍니다. “가난이 부끄러울 수는 없지만 무지는 부끄러운 것이다.”라는 말처럼 영적 무지는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지한 것 때문에 죄를 범하고, 삶의 목적을 따라서 살지 못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도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거예요. 이름 석 자를 모른 것도 아니고 율법을 모른 것도 아니에요. 진정한 하나님의 참된 뜻을 알지 못하고 영적지식이 없어서 그들은 죄를 범하고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지식을 추구해야 되고 성경적인 지식을 추구해야 됩니다. 영적인 만족과 기쁨이 있게 되길 축복합니다.
이런 격언들이 있습니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호랑이조차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알기를 거부함이 부끄러운 것이다.”
“무식한 자가 목청은 제일 좋다.”
“무지는 하나님의 저주요, 지식은 하늘나라로 올라갈 때 필요한 날개이다. -셰익스피어”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이 세상을 날아 갈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영적인 지식이 없으면 험하고 악한 죄악 속에서 날지를 못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지식에 무지하니까 함부로 사는 것입니다. 영적인 지식이 없으면 세상에 눌려서 살고 지배당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식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이 세상을 자유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으랴.’ 하고 고백하며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성경을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무지한 자는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탄생조차 부정하려고 합니다. 무지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역사적 활동자체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니고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말을 들으면 혼란스러워합니다. 이유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없는 믿음은 쉽게 흔들리며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풍성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배워야 됩니다.
1. 성경에 대한 역사적 지식
세례요한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1절로 2절에서 설명하고 있어요. 디베료는 티베리우스 로마의 2대 황제를 말합니다. 티베리우스 통치하에 유대근동의 상황은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었고, 헤롯이 갈릴리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정황이 너무도 정확하지 않습니까?
2008년 SBS에서 [예수는 신화다]라는 방송을 했습니다. 내용은 기독교 복음서는 고대 지중해 지역에 수 세기 동안 퍼져 있었던 ‘오시리스-디오니수스’ 이방신화를 유대교적으로 각색한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예수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차용해온 것이며 여러 신화적 존재들의 이야기를 옮겨와 합친 내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를 역사적 메시야의 전기로 보지 않고 디오니수스에 관한 이방신화를 유대적으로 각색한 허구라고 주장했습니다.
SBS에서 기독교계에 저항을 받을 줄 알면서도 이런 방송을 한 이유를 어느 자료에서 보니 아랍계 중동 오일머니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요구와 타협을 해서 이 방송을 방영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의도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켜서 신앙을 흔들어 놓겠다는 의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성경적이고 교리적인 부분만 이해하고 있고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공격을 받을 때 정말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자.” 지식 위에 있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에요. 무조건 믿는 믿음은 작은 문제가 와도 흔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두고, 역사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지식위에 우리의 믿음을 굳게 세우면 반석 같은 믿음이 되어서 어떤 환란과 시험이 온다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진정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영적인 지식, 성경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2. 세례에 대한 지식
세례에 대한 지식도 알아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세례 문답을 마치고 세례 받는 사람들이 요단강에 와서 하얀 가운을 입고 침례를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당시 만연한 죄악에서 돌아서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란 물로서 몸을 씻는 정결의식입니다. 이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이며 의롭게 살겠다는 표현입니다.
세례는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예식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교리 중에 아주 중요한 교리입니다. 그러니까 세례만 바로 이해하게 되면 예수님의 죽으심을 이해하게 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이해하게 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내가 영생을 얻게 되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세례를 정확히 이해하고 세례 받은 성도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군대에 가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군인들이 세례를 받는데 무엇 때문에 세례를 받지요? 초코파이와 야쿠르트를 먹으려고 세례를 받아요. 세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세례를 받아요.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부활하게 된다는 예식을 세례하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이후 기독교에는 세례예식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공식적인 입교절차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은 우리교회의 정식회원이 아니에요. 세례를 받아야 진정한 성도가 되는 거예요. 세례를 받지 않으면 성찬에 참석할 수 없어요. 세례를 받지 않으면 성가대에 봉사 할 수도 없고 어떤 직분도 받을 수 없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가장 먼저 명령하신 것이 모든 족속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명령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위대한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신약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이 성스러운 예식에 참예했고 제자들에게 가르치며 실천하였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내적 신앙의 외적인 고백이며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자기의 백성 됨을 인 쳐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세례의 축복을 누리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주님을 뵙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너는 너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느냐?” 하고 물으셨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나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 세례 받게 되었나에 따라서 상급이 주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세례를 자꾸만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를 태도가 아니에요. 세례의 축복을 알면 세례를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았어요. 그때에 목사님께서 세례문답을 하신다고 하셔서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외우고 얼마나 많이 준비를 하였는지 몰라요. 성탄절 전날 축하행사를 마치고 세례문답을 하였는데 목사님께서는 아주 쉬운 것 한가지 만 물어보셨어요. 그러고 나서 세례를 받았어요. 그때 어린 생각으로는 세례를 받으면 큰 역사가 나타나는 줄 알았어요.
‘내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새로 살아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는 놀라운 비밀이 세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분들은 세례교육을 받으시고 세례의 축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만 세례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서 다른 사람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잘 안내하고 훈련시키는 것도 하나님 앞에 받을 중요한 상급이라고 믿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4절로 6절까지 말씀에서 세례요한이 빈들에서 세례를 베푸는 행위는 오실 메시아를 위해 길을 닦고 터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누가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짐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이 낮아지고 굽은 길이 곧게 되고 험한 길이 평탄하게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거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면서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되었어요. 따라해 보실까요. “예수그리스도는 역사의 주인공이시다.” 아멘. 이것 하나만 깨달아도 우리 삶의 방향이 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물질이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권력이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세례요한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에덴의 축복을 누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불 순종했습니다.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죄와 사망아래 매여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저주의 심판 아래 놓인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심판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지옥형벌에서 영원한 천국의 영생축복으로 이끌어주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행동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 때에 초라하게 살았어도 가장 큰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물질중심 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돈으로도, 힘으로도 못 갑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 받는 거예요. 정치와 권력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인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때에 끝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역사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가 헛되이 살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뛰는 만큼 잘못되는 것입니다. 푯대를 바로 정하고 그 방향을 향해서 뛰어 나갈 때 헛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영적인 지식이 있을 때 무엇이 정말로 귀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한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돈도, 권세도, 나라도, 그 무엇도 아닙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구원 받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는 하나님은 오직 모든 사람들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며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물질이 없다고 좌절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어요. 돈이 없다고 자식과 같이 목숨을 버리는 비정한 부모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돈이 없으면 삶이 조금 불편한 것뿐이에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으면 지금 잠시는 불편하게 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축복과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있는 진정한 영적지식이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적인 지식이 있으면 어떠한 일을 만나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의 삶입니다. 이 세상은 가치를 둘 세상이 아닙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고생문이 열립니다. 초중고를 거쳐서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공부를 마쳤는데 결과는 이태백이에요. 태반이 백수예요. 직장이 없어요. 그러다가 겨우 직장 얻어서 적응할 만하면 그만두라고 합니다. 인생이 다 그래요. 이 세상에 목적을 두면 절망 밖에 없어요. 영적인 지식을 통해서, 영의 눈을 통해서 이 세상에 머물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지식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요 우주의 중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믿고 따라가는 우리도 역사의 중심이요 우주의 중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된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있으면 우리는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비록 초라했지만 얼마나 당당했습니까? 영적인 지식이 있으니까 순교하는 순간까지 당당했어요. 하나님 나라에서 얻게 될 영원한 축복을 알지 못하니까 세상에 굽실거리는 거예요.
영적인 지식을 가지면 마귀 앞에서도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죄악에서도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잠시 사는 이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알고, 성경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좀 더 알고, 영적으로도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한한 축복을 깊이 알아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3:1~6 3장 1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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