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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리라
요한1서 4:7~12 유우열 목사 2010-02-14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7-12)

 이 시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받고 있는 얼굴인지 옆 사람의 얼굴을 한번 보십시오. 내가 누구에겐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처럼 당당하고, 자신감 있고,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아멘. 남편의 얼굴을 보면 부인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어요. 또 아내의 얼굴을 보면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어요. 사랑받고 있는 부인의 얼굴은 해같이 빛납니다. 또 자식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부모와 부모에게 사랑을 받는 자녀들은 뭔가 달라요. 그런데 우리는 누구의 사랑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나중문제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이해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자연 생태계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연어의 산란과정을 볼 수 있는데 경외감이 들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연어는 여러 가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자기가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감합니다. 그런데 알에서 부화된 새끼들이 자기를 낳아준 어미의 죽은 시체를 먹이삼아 성장하여 다시 바다로 나가는 것을 봅니다.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할 만큼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사랑의 대 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끼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살기에 바쁘고 놀기에 바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이로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사랑이 위대하고 크지만 이보다 더 원천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모르는 우리들의 모습이 연어의 새끼들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부모의 사랑보다도 크고, 연어의 사랑보다도 큰,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미천한 존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나처럼 죄악 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나처럼 완악하고 원수 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느끼고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듬뿍 부어져서 ‘나는 사랑받은 존재다.’ 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 갈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인류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있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었기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창조의 깊으신 뜻을 보게 되는데 이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버금가는 권위를 주셔서 모든 지상의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시고자 하시는 뜻이었습니다. 이야말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는 사랑덩어리예요. 할렐루야! 아담과 하와를 무엇으로 만드셨나요? 흙으로 빚으셨습니까? 흙속에 무슨 성분이 있어요? 아담과 하와는 흙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에덴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창조해주셨습니다. 창조 자체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덩어리, 축복덩어리로 창조하셨어요.

2. 사랑을 배반한 인생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했나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어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랑을 베풀어주셨으나 사람은 이 축복을, 이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고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유지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마라. 이것을 먹게 되면 정녕 죽으리라”하신 말씀은 에덴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행복을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법도였어요. 최소한의 질서였어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질서를 어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모든 은혜와 축복들을 저버리게 되었고 오히려 형벌의 대상이요, 저주의 대상이요, 그래서 지옥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지만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되어서 아담과 하와가 받게 되는 그 모든 불행과 저주를 그대로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거예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하시는 로마서 5장 12절 말씀대로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것 때문에 우리에게도 사망의 저주와 형벌이 들어온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음 밖에는 없는 거예요.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배반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어요. 그래서 이사야 56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주께서 우리 무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제 길로 가는 것이 범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고 그 이후로 모든 인생들이 아담과 하와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불행과 저주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것이 저주와 불행입니까?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것이 저주와 불행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의 모든 축복된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자연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적대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엊그제 크리스체너티 투데이 라는 기독교 잡지를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아프리카의 우간다라는 나라가 몇 십 년 전만해도 무정부상태에서 엄청난 살인이 있었던 나라였는데 다행이도 이제는 85%의 국민이 기독교 인 이랍니다. 놀랍지요. 우리나라가 20%가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할 것이 없어요. 최근 이 나라에서는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또 동성연애를 하는데 어른이 어린아이를 동성으로 성추행을 하면 사형을 할 수 있다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간다에 이런 법이 만들어지니까 동성연애를 합법화시킨 서양에서 반론이 쏟아지고 난리랍니다. 그러나 우간다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질서를 따라 사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이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질서를 따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한 우리를 가리켜서 이렇게 말합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원수”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덩어리, 하나님의 사랑덩어리로 창조되었는데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수 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했기 때문에 원수가 되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모른 척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서운해 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내가 사랑을 쏟아 부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모른척하면 원수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가장 축복된 존재로 창조된 인간이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였을 때 그에게 닥쳐진 저주와 형벌은 축복만큼이나 큰 것입니다. 무거운 것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 높이만큼 충격과 파괴도 비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지리니 이는 둘째 사망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3. 그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원수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놀랍습니다. 절대로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인 우리를 사랑한 것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원수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내 마음에 아주 아픈 상처를 준 사람정도를 원수라고 하겠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우리가 원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 같은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10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이 사랑 때문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나 같은 죄인, 추악하고 부족한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미국에서 노예를 팔고 사던 시절 어느 집에 주인의 신임을 받는 '조'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몇 명의 노예를 더 사려고 조와 함께 노예시장을 갔습니다. 그 때 조는 유난히 늙고 힘없어 보이는 노예를 보더니 그를 사자고 했습니다. 주인은 "저 노예는 너무 늙어서 쓸모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네게 짐만 될 것이다"라며 거절하였지만 사랑하고 신뢰하는 ‘조’의 간절한 청원 때문에 할 수 없이 늙은 노예를 샀습니다. 집에 돌아온 조는 그 늙은 노예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며 유별나게 보살폈습니다. 그러한 조를 이상히 여긴 주인이 그를 불러 이유를 물었습니다. "혹시 네 아비가 아니냐?" "아닙니다. 그는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원수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가 나를 유괴해 노예시장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노예시장에서 뜻밖에 그를 보게 되었고 순간 '너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제 신분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원수 같은 행동을 한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를 지으신 그 분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고 나를 지으신 그분께서 말씀하신 삶의 질서대로 살지 않고 엉뚱하게 죄를 범하여 원수 된 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4. 최고의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단순히 형벌을 면해 주는 정도의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사에서 죽일 사람을 죽이지 않고 용서만 해도 큰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냥 넘어가 주기만 해도 큰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에 비교한다면 이런 사랑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9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죄를 없는 것으로 해 주는 정도가 아닙니다.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주시기까지 원수 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을 다 찾아봐도 이런 사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혹 아비가 아들을 위해서 자기 눈을 주었다거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간을 잘라주고, 신장을 주었다는 사랑은 있어도 아버지가 남을 위해 자기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어주는 사랑을 했다는 경우는 없습니다.

 심방하면서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질문을 가끔 합니다. “내 자녀가 지금 난치병에 걸렸는데 당신 외아들의 오른손 손가락 하나만 잘라주면 내 아들이 낫는다면 잘라주겠습니까?” 조금 전까지도 “목사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던 사람이 이 말 한 마디에 대번 달라집니다. 손가락을 자른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안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손가락 하나가 아닌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온 몸을 찢기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14번 넘어지면서 가셨던 고난의 길을 걸어가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릴 때에는 옷을 벗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 수치까지도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차마 보실 수 없어서 외면하신 줄로 믿습니다. 내 자녀가 어디에 가서 그런 모습을 당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줄로 믿습니다. 이 사랑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고 역사에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밖에는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5. 우리가 할 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진바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따라해 보실까요. “그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원래 하나님과 원수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사랑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신앙은 출발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교인이에요. 신자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나를 위해 주셨다는 사랑을 인정할 때  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만약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사랑을 부정한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보다 더 큰 것 입니다. 100kg의 쇳덩이를 2m높이에서 떨어뜨리면 강단이 깨질까요, 안 깨질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100kg의 쇳덩이를 20m높이에서 떨어뜨려보세요. 그러면 아마도 이 강단은 박살이 날 것입니다. 무슨 말 입니까? 하나님의 창조하신 사랑을 우리가 어겼을 때는 2m 높이에서 쇳덩이가 떨어진 정도의 진노라고 말한다면 원수 된 우리를 독생자를 주어서 사랑하신 그 사랑을 거부하는 행위는 마치 이 강단을 박살내는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 100kg의 쇳덩이처럼 잔인하고 무서운 심판으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라고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비유로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왕이 아들을 위해 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일치하게 사양합니다. 소를 샀기에, 밭을 샀기에 가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왕이 대노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최고의 사랑을 주셨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왕이 대노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서 내 안에 그분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의 삶에 놀랍고 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헌신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부은바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사도바울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오리까.” 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던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인정하여서 입에서부터 주여 내가 무엇을 하오리까하고 주님께 묻고 기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마 하나님 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그래, 나는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족하다. 그리고 정말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예배하거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말거라.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는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거라.’

 여러분! 진정한 이웃사랑은 무엇일까요? 구제도 사랑이겠지요. 나눔과 섬김도 사랑이겠지요. 그러나 정말 귀한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이 귀한 사랑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줌으로 사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와서 그 사랑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영생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 갈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사랑덩어리 인줄로 믿습니다. 복덩어리 인줄로 믿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것에 감사하십시오. 이 사랑을 받은 것을 인정하십시오. 이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주십시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십시오.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요한1서 4:7~12
4장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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