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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 의식
마태복음 25:14~30 유우열 목사 2010-02-21
청지기 의식 (마 25:14-30)

 이 시간에 나온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한번 주어진 생명, 한번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에 TV에서 보았던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평범하던 박사가 위기의 순간이 되면 얼굴이 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드라마였습니다. 두 얼굴을 가졌다는 것은 어느 한 면만 보고는 전부를 알 수가 없는 것이고 그에 대한 정확한 판단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저작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도 있지요. 지극히 인격적이고 선행을 베푸는 지킬박사를 보십시오. 얼마나 존경스러운 분입니까? 그러나 그가 밤이면 은밀한 살인자, 사람을 죽이는 하이드로 변하여 사람들을 공포 가운데 몰아넣지 않습니까? 의사로서 선행을 베푸는 지킬박사의 모습만을 보고는 그 사람을 전부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이드의 모습까지 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모두 알기 전에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킬박사만 보면 아주 좋은 사람인데 하이드를 보면 세상에서 아주 추악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양면의 모습을 오늘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이드를 비난하지만 내 안에 하이드 같은 성품도 있고 지킬박사 같은 성품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오늘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드리는가 하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태어나면서 죽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는 물질이 바로 이렇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좀 뻑뻑한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주제는 생각하기에 부담되는 주제가 아니라 반드시 이해를 해야 되고 이 부분에 대한 바른 의식을 가져야만 세상에서 성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생활은 다 잘하는데 물질관계가 잘못되면 그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물질관계 속에서 신앙관계가 연결되고, 대인관계가 연결되고 모든 관계가 연결되기 때문에 물질의 문제를 잘 이해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사실 돈이라는 것도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돈은 매우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첫째, 돈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제활동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둘째, 돈은 생명을 살려내고, 어려운 이를 돕기도 하고, 삶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등 매우 건설적인 부분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60여 년 전, 6.25전쟁 이후에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지요? 물질이 부족해서입니다. 아주 힘들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열강중의 하나로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을 부흥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물질의 축복을 누려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우리나라가 GNP는 일본이나 주변국가보다 낮은지는 몰라도 제가 지난번에 네덜란드를 갔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네덜란드가 우리나라보다 GNP가 두 배 이상이 높아도 실제로 개인의 생활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개인의 생활은 한국 사람들이 훨씬 낫다는 거예요. 네덜란드는 국가는 부자여도 개인은 가난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개인은 부자인데 나라는 가난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이 선진국과 비교할 때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물질로서 얻게 되는 유익이고 축복입니다.

 반면 돈은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돈은 사람을 예속시킨다.” 즉 사람을 물질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가운데 ‘나는 물질의 노예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겠지만 황금만능주의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의 노에가 되어서 오직 돈, 돈, 돈만 외치고 살아갑니다. 돈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고 돈을 의지하게 하는 기능도 있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야 하는데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거예요. 예수님은 돈을 가리켜 맘몬이라 하시면서 하나님처럼 의지하는 존재로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이 결코 신은 아니지만 신과 같은 위치에 올라와 있는 것이 돈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돈에는 힘이 부가되고 권력이 따라오며 사람을 미혹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돈으로 인해 온갖 죄악과 파괴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범죄의 원인이 되며 인간을 파괴시키고 가정을 파괴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 이런 뉴스가 있었어요. 존경받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어야 하는데 아마 몇 푼을 받았나 봐요. 그것이 들통이 나서 늘 정직을 주장했던 그 분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셨다고 합니다. 돈이 유혹한 것이지요. 선배 목사님들이 늘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목회자는 돈 조심해야 된다. 여자 조심해야 된다.” 이것은 목회자에게나, 정치인에게나, 교사에게나, 누구에게나 미혹의 손길로 다가오는 것들이지요.

 이처럼 돈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칼이 의사에게 붙잡히면 사람을 살려내는 수술도구가 되지만 폭력배에게 붙잡히면 범죄의 도구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바른 이해와 태도가 중요합니다. 

 1. 하나님의 물질관
 따라해 보실까요. “하나님의 물질관” 성도는 하나님의 물질관을 가져야 됩니다. 성도는 돈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유의하면서 돈의 부정적인 면만 보고 돈은 나쁜 것이라고 죄악시하거나 터부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좋은 일을 너무나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면만 봄으로 물질만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만들어 놓은 세속적인 물질관에 매여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돈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고 돈을 하나님 자리에 가져다 놓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격도 돈 때문에 망가지고, 관계도 돈 때문에 깨지고, 신앙도 돈 때문에 깨집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시험이 들어서 교회를 떠나시는 분들 가운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물질 문제로 교회를 떠납니다. 세속적인 물질관을 가지고 살아가면 실패하고 믿음에서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물질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 하나님은 만물의 소유주라는 사실입니다.
 그 첫 번째로는, 따라해 보실까요. “하나님께서 만물의 소유주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물질관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땅을 자기이름으로 등기하는 법이 없어요. 모두 나라 거예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나라 것으로 해 놓은 거예요. 몇 년씩 혹은 수십 년씩 정부로부터 임대를 받아서 땅을 사용하다가 되돌려주어야 돼요. 어찌 보면 성경적인 토지 제도 법에 의해서 기준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 통장에 저금이 되어있다고 내 것이 아니고, 내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다고 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의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거예요. 시편 50편 10절로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모든 것을 맡겨 주셨지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소유권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면 탐욕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만석에서 한 석 모자라는 사람이 그 한 석을 채우기 위해서 한 석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다는 옛말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탐욕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내 소유’라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생 돈을 쫓아다니다가 돈 때문에 인생을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면 집착이 사라지고 물질의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물질의 소유주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돈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어려움을 당해도 이로 인해 좌절하거나 범죄 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보면 많은 돈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를 해서 병을 얻거나 인생 실패자처럼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욥기 1장 21절 욥의 고백처럼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충격은 받을 것이지만 이로 인해서 인생을 실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성경적 관점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실패를 겪었다 할지라도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물질의 공급자이신 하나님께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냥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더 크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돈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면 이웃을 돕거나 선행을 위해 돈을 사용할 줄 알게 됩니다. 이웃을 위해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소유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눌 줄 모르고 집착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진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면 좋은 일을 위해 쓸 줄 압니다.

 보통 미국 부자와 한국 부자가 다르다고 합니다. 미국 부자는 훌륭하고 한국 부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미국의 부자들은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만큼 많은 돈을 기부합니다. 그러나 한국부자는 그렇지 않아요. 상속세까지 웬만하면 내지 않으려고 하고 쉽게 기부하려고 하지 않은 모습들이 있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에 그것은 잘못판단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말해야 돼요. 미국 부자는 존경 받고 한국 부자는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물질관을 가진 부자는 존경 받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적절하게 나눠쓴다는 물질관을 가지니까 이 사람이 나눌 수도 있고, 섬길 수도 있고,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내 것이라고 고집하니까 일원도 못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최소한 네다섯 가지 이상을 위해서 써야 돼요. 첫째는 나를 위해서 써야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합니다. 세 번째는 나라를 위해서 써야합니다. 네 번째는 이웃을 위해서 써야합니다. 나에게 백 원이 주어졌다면 그것이 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나라 몫으로 세금도 내야하고, 하나님 몫으로 십일조도 내야하고, 이웃을 위해 구제도 해야 합니다. 수입이 적든 많든 다 내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물질의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 물질은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칭찬받고 오늘 말씀대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는, 따라해 보실까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로 부름 받았다.” 청지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타국으로 가시는데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겨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청지기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맡겨주신 것은 단순히 물질만이 아니에요.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에요. 내 생명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에 남을 죽여도 안 되고 내 생명을 끊어도 안 돼요.
 내 자녀는 내 것입니까, 아닙니까? 내 자녀도 내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맡겨주신 거예요. 요즈음은 자녀들이 하나나 둘이다 보니까 자녀들이 신의 위치까지 올라가요. 이것은 문제 있는 거예요. 그 자녀를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실 수도 있고, 잘 되게 하실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 필요하신대로 쓰시는 거예요.

 우리교회에서는 헌아식을 하고 장로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합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하지 않아요. 이유는 세례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지적으로 동의하고 시인 할 수 있어야 받는 것인데 어린아이는 그것을 시인하지 못합니다. 지적인 능력으로 인지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헌아식을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강단으로 데리고 나와서 헌아식을 합니다. “이 아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인 것을 믿고 하나님께로 바치겠습니까?”하고 물으면 부모가 아멘으로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쓰셔도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 아이를 내 맘대로 주장하려고 합니까?

 자녀도 내 것이 아니고 생명도 내 것이 아니고 물질도 내 것이 아니고 건강도 내 것이 아닌 거예요. 하나님께서 건강을 빼앗아 가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청지기 의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맡겨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청지기의 특성
 청지기의 특성을 오늘 본문 14절로 15절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주인의 소유를 위임 받은 사람이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적게 받았다고 불평하고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많이 맡겨졌다고 좋아서 일한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달란트나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나 모두가 귀한 거예요.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이 맡겨준 것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셨다는 믿음을 갖게 되길 축복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주인을 위해서 일할 수 있어요.

 2) 주인의 것을 관리 증식 분배할 책임이 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해서 재산에 이익을 남기고 더 나가 다른 종들에게 분배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를 맡겼으면 그것을 잘 관리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그것을 증식했어요. 다섯 달란트를 남겼어요. 목장에 목원들을 주었는데 다 잃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부흥해야지요.

 구약에서 요셉을 보면 그는 많은 종들이 있는 가운데 종들의 우두머리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배분을 잘하는 역할을 했어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잘 관리하고 증식해서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도 나누고 자기를 위해서 쓸 수도 있게 했어요. 이렇게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청지기입니다.

 3) 언젠가는 결산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청지기는 주인이 맡겨준 것에 대해서 반드시 결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결산이 무서운 거예요. 학생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시험이지요. 하나님 앞에서 누구든 간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19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맡겨진 것에 대해서 다 따지신다는 거예요. 많은 것을 맡겨주셨는데 자기만을 위해서 쓰면 책망 받는다는 거예요. 건강을 주셨는데 그것을 자기의 쾌락만을 위해서 쓴다면 책망 받는다는 거예요.

 이런 생각도 해야 됩니다. 부모를 잘 만나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다면  공부를 잘한 이 사람도 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지 않으면 책망 받아요. 모든 것에 대해서 결산이 있는 거예요. 물질도 맡겨주셨으면 그것에 대한 결산이 있는 것이고, 지식도 맡겨주셨으면 그것에 대한 결산이 있는 것이고, 건강도 맡겨주셨으면 그것에 대한 결산이 있는 거예요.

3.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선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이신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돈의 위험성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첫째는 물질의 위험성을 늘 조심하며 살아야 됩니다. 누구라도 물질 앞에서는 장담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늘 깨어서 조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돈은 자신을 지배자로 만들어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습니다. 이미 풍족한데도 더 많이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물질의 위험성을 간과하기 때문에 잘못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많은 탐욕을 가지다 보니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도 못해요. 사람과의 관계도 못합니다. 물질에 인색한 사람은 이웃을 위해서 속전도 드리지 못한다고 했어요. 내가 얼마를 쓰면 이 사람이 구원받고 살겠는데 아까워서 그것도 못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잘 사용해서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도록 관리하라고 하나의 수단으로 주셨는데 물질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물질은 영적인 성숙에도 치명적인 위험을 가져다줍니다. 물질 때문에 신앙생활을 못합니다. 물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성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물질로 인해 시험도 들고, 싸우기도 하고, 하나님을 떠나기도 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물질을 섬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런 위험성을 바로 알고 이것을 조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2)돈의 한계성을 알아야 한다.
 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돈의 한계성”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고, 돈만 있으면 건강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지만 돈의 한계성이 있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회장 따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잖아요. 아마 그런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평생 동안 가진 돈을 다 세어보지도 못하고 다 쓰지도 못할 거예요.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은데 뭐가 부족하고 불행해서 죽나요? 사람들은 말하기를 어느 정도 돈이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개념이 없어진대요. 돈이 없으니까 날마다 얼마, 얼마 따지는 것이지 돈이 많은 사람은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답니다. 그러니까 돈을 따지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돈이 있어서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어도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이 여러 개 있는 넓은 집에서 삽니다. 그런데 방이 많으니까 문제가 됩니다. 부인은 이방에서, 남편은 저 방에서 살며 한 집에 살면서도 평생 별거를 하는 것과 다를 것 없이 살아요. 넓은 집이 있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거예요.

 또 돈으로 안락한 침대를 살 수는 있어도 편안한 단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약을 살 수는 있어도 건강은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교회 건물은 살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구원은 살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황금만능주의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이 청년들이 많을까 어른들이 많을까를 생각해 보았어요. 모두 똑같습니다. 어른들은 살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말 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도 어쩌면 그렇게 돈의 매력에 빠져있는지요. 돈에 매여서 사는 순간 그것이 목적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이 되어서 결국 인생을 실패하게 되고 주님께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 받는 삶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성경적 물질관을 가지고 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사는 동안 내게 맡겨주신 것에 감사하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주인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아름답게 쓰다가 “잘 하였구나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인정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25:14~30
25장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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