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넘어지는 시험 세 가지 (눅 4:3-13)
얼마 전 아주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정직해보이던 어떤 분이 대통령 보좌관이 되어서 청와대로 들어갔습니다. 대단한 출세입니다. 그 자리가 돈이 있다고 들어가는 자리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들어가는 자리도 아니지요. 대통령의 마음에 들어서 들어간 자리이지요. 그런데 어느 기업에서 주는 몇 억의 돈을 받은 것이 들통이 나서 결국 몇 개월 근무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잃고 수감이 되고 지금까지 쌓았던 명예와 신뢰가 한 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뻔히 알면서도 넘어질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그들도 앞서서 이런 일로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분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비난을 했을 것이고 자신은 절대로 그런 경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분이 자신이 그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다시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성도님 여러분! 여러분에게 그런 자리가 주어진다면 어떠할 것 같습니까?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에 비난을 할 수 있지만 정작 우리가 그 자리에 오른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뻔히 그 결말을 알면서도 유혹과 시험에 넘어져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면서도 넘어지는 시험에서 승리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즉 예수님은 그 시험에서 넘어가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시험에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깨닫고 그대로 살기를 결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단이 아담을 시험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시험에서 넘어졌어요. 선악과를 따먹었어요. 시험의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셨어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당하는 시험은 마치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시험했던 것과 같은 시험이에요. 이 시험을 선악과 시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담의 피를 받고 살아가면 우리는 시험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교만의 시험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첫 번째는 돌을 들어 떡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셨던 상황입니다. 매우 굶주린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 돌을 들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합니다. 마귀란 놈이 얼마나 고약하고 잔인한 놈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가지고 시험을 합니다. 자비란 조금도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마귀의 정체를 알면 치를 떨게 되는 겁니다. 성경에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한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마귀는 왜 이런 시험을 했으며 왜 이것이 시험이 되는 것입니까?
마귀는 예수님께 이런 단서를 붙여서 시험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신 말씀에 기인합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교묘한 시험을 합니다. 매우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흔드는 겁니다. 즉 40일 씩 금식한 마당에, 이제 능력으로 충만해졌으니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서 아들의 권세를 사용하라는 교묘한 이간작전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그 선악과에 무슨 독성이 있어서 아담과 하와를 죽게 한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자체가 하나님께 불순종이요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사단의 시험은 이제는 너도 클 만큼 컸으니 아버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네 권세를 가지고 네 의지대로 하라는 시험입니다.
혹자는 돌을 들어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은 40일을 굶주린 예수님에게 먹을 것으로 시험하려는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탐식으로 시험을 했다면 이것은 유치원수준의 시험이 아닐까요? 40일을 금식하셨기에 먹고 싶은 유혹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금식하신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 금식하신 것이 아니지요. 그랬다면 그것은 우스갯말로 굼식이지요. 주님은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이끌리셨기에 금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음식에 대한 탐심에 넘어지는지를 시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시험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틈나게 하려는 시험입니다. 사극을 보면 부왕이 총애하는 아들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세자에게 몰려듭니다. 그러면 세자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간신배들의 말만 듣고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의논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정적의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이런 경우들이 있지 않습니까? 마치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배제한 체 권세를 행사하고 일을 추진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교만의 시험인 것입니다. 사람은 커지면, 지식이 쌓이면, 재산이 생기면, 지위가 올라가면 교만해집니다. 돈을 버는 능력이나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이나 다른 어떤 능력이 생기면 교만해집니다. 대개 사람들은 어려우면 하나님과 의논합니다. 그런데 여유가 생기면 의논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그러나 자기가 함당할 힘이 생기면 엎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혼자 일을 처리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주님이 제일입니다. 주님만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돈 있고, 건강 있고, 원하는 것을 얻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입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에는 매우 겸손하였지만 왕이 된 후 교만해졌습니다. 사울이 40년 동안 왕으로 있을 때의 교만을 한 마디로 성경에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어요. 역대상 10장 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사울은 40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교만은 묻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의논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일을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여 백성을 살린 것처럼 너는 돌을 들어 떡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너도 하나님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을 깨뜨리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아멘.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떡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을 배제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돌이 떡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마귀를 이기는 무기입니다. 마귀는 교만한 자를 넘어뜨립니다. 겸손한 자는 이기지 못합니다.
요즈음은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뉴 에이지 사상이 팽배해져 있어요. ‘네가 생각하는 것이 옳아.’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으면 하나님과 의논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네 생각이 답이야. 네 생각대로 해.’ 내 생각이 답인데 하나님과 의논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어요. 성경은 잠언 14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 사망의 길이니라” 마귀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맘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고 내 맘대로 무엇이든지 감당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사람의 말을 듣고 행하기를 원합니다. 만일 결혼한 여인이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고 물건을 산다든지 이런 저런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남편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어요. 관계가 좋아질 수 있나요? 깨질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는 이런 시험을 알면서도 넘어집니다. 내가 약할 때는 주님을 바라보다가 내가 강해지면 주님을 외면합니다. 우스갯말로 세상에서 실패하면 주님께로 왔다가 성공하면 세상으로 갑니다. 실패할 때는 주님이 보이는데 성공할 때는 주님이 안 보입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는 주님을 바라보다가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주님을 멀리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만 풍요로워지면 물질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하지만 알면서도 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런 시험에서 늘 승리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에게 능력이 있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실패했거나 성공했거나, 부요하거나 가난하거나, 건강하거나 약하거나 그 어느 때라도 주님과 의논하십시오. 주님을 앞세우십시오. ‘주님을 배제하고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과 상의하지 않고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결단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주님은 겸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겸손은 외적인 부드러운 태도만이 아닙니다. 주님과 의논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보시고 겸손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십니다. 겸손한자는 사단 마귀의 시험에서 이길 수 있지만 교만한자는 시험 앞에서 넘어지는 거예요. 평생 동안 겸손하게 살기를 결단하기 바랍니다. 작은 일이라도 주님과 의논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소유욕에 대한 시험
두 번째 시험은 소유욕에 대한 시험입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손을 움켜쥐고 태어납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이든 내 것을 만들겠다는 소유욕에 매여 삽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는 그동안 붙잡았던 것들을 다 놓고 손을 폅니다.
마귀가 주님을 두 번째로 시험한 것은 바로 이런 시험입니다. 마귀가 순식간에 예수님을 이끌어 천하만국을 보이며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네게 주고 네 소유가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고 했을까요? 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사단마귀의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어요.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내가 너에게 줄 터이니 나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소유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소유자는 지배권을 가집니다. 따라서 소유권이 없는 자는 소유권이 있는 자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의 소유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란 소유권자에게 드리는 예절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모든 소유를 너에게 줄 터이니 나에게 절하라고 하는 것은 진정한 소유는 마귀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사실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일에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날을 구별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줄로 믿습니다.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예요.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거예요. 내 생명이 내 것이면 하나님께 머리 숙일 이유가 있나요? 없어요. 그러나 생명조차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예요.
그러나 마귀는 뭐라고 말합니까?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사단마귀는 속임수의 대가입니다. 거짓말에 능통합니다. 마귀가 결코 줄 수 없는 것인데도 마귀는 이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왜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갑니까? 마귀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대개는 ‘네게 주리라’라는 말에 속고, ‘내 것이 있다.’라는 생각에 속습니다. 생명이든, 명예든, 물질이든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귀는 아무것도 주지 못하면서 줄 수 있는 것처럼 속임수를 써서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합니다. 권세와 명예를 그 어떤 것보다 더 사랑하게 합니다. 돈과 명예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을 것처럼 유혹합니다.
9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신 것은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만 있고 경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소유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마귀가 주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알면서도 넘어집니다. 유한한 인생은 어디에도 자기 소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세상의 어떤 것도 내 것은 없어요. 마귀는 소유욕을 통해서 우리를 눈멀게 만들고 그것에 빠져버리게 만들어요. ‘오직 주님만을 경배하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주인이십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 인생들의 소유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시험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3. 이기심의 시험
마지막으로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또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며 뛰어내릴 것을 종용합니다. 시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하시며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단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특정한 성경구절 몇몇 구절을 뽑아서 그것을 확대해석 하여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진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지만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이기적인 적용입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성경을 들이댔지만 부분적, 이기적 해석이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적용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치명적인 죄와 실수는 하나님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이기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할 그의 백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젊은 층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은 하나님을 내 목적대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돼요.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2장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에서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만 떼어서 내게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환란을 이기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조건이 없는 면류관을 약속한다는 것은 유혹이며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또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만 내게 적용하면 이기적인 적용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것도 포함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은 결코 쉬운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만 있고 내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성경에 빨간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은 대게 내게 감동되고, 내게 힘이 되고, 내게 위로가 되는 부분이에요. 이것을 내가복음이라고 말하지요. ‘심판을 받을 것이다.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은 피해갑니다. 성경의 이기적인 적용이에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을 나에게 유리한 대로만 적용하지 마세요. 똑같은 성경말씀인데 나에게는 축복이고 저 사람에겐 저주가 되도록 해석하는 거예요. 성경을 보면 의인은 나이고 원수는 내가 싫어하는 아무개로 적용한다면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기심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시험입니다. 이기심 때문에 원수가 되고, 이기심 때문에 성경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이기심 때문에 죄를 범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기심으로 행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어지는 거예요. 마귀가 주님을 시험한 것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탐욕이나 영웅심을 건드려 보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수준의 시험이 아닙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에 목적을 둔 시험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다 끝입니다. 마귀가 아담을 시험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어지게 했듯이 예수님을 시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무슨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고 내 맘대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입니다. 주님만을 인정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이기적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주님 나를 주님의 목적대로 사용해주세요.’ 라고 고백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4:3~13 4장 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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