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copy
설교방송 > 금주의설교
참 부활 신앙
로마서 6:3~9 유우열 목사 2010-04-04
참 부활 신앙 (롬 6:3-9)

 한국 사람의 식생활에는 특이한 것이 있는데 뼈를 우려먹는 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뼈를 우려내서 먹는 경우들을 못 보았습니다. 뼈를 우린 음식 중에는 설렁탕, 사골우거지 탕 등 여러 가지 음식이 있습니다. 전에는 소뼈를 주로 우렸지만 요즘은 감자탕이라고 해서 돼지 등뼈를 우린 것도 있습니다. 얼마 전 광우병 소고기 파동으로 인해서 뼈를 취급하던 음식점들이 곤혹을 치른 적도 있지만 뼈에서 우러난 진한 맛도 살코기의 부드러운 맛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일품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도 뼈에서 우러난 진한 맛 같은 뿌리가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진한 맛을 신앙생활에 비유한다면 교리를 아는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리는 복잡하고 딱딱하고 까다롭고 지루합니다. 그러나 교리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좀 힘들고 이해가 잘 안 되어도 교리의 틀에 든든히 서야 됩니다. 교리란 것은 내가 무얼 믿는지, 그것을 믿음으로 내가 어떻게 변화 되는지가 분명한 거예요. 나팔소리가 분명한 것처럼 신앙이 분명한 성도는 교리위에 틀이 분명하게 서 있는 성도입니다. 상갓집에서 실컷 울고 나서 누가 죽었냐고 묻는 것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도 무엇을 믿는지 모르고 다니는 분도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교리의 틀이 든든히 서야 될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크게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리와 생활입니다. 교리는 신앙생활을 이루어 가야할 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뼈대가 없으면 신앙생활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교리는 집으로 비유하자면 기둥과 같은 것이고 생활은 벽채와 지붕과 같은 것입니다. 기둥 없는 집이 없듯이 교리 없는 생활은 위험합니다. 가령 구원의 교리, 부활의 교리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런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의 경우 자신은 선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선행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의 근본은 교리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오셔서 교리 공부를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지식과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뿌리를 내리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어떤 분은 교리는 전혀 모르는데 성품이 착하고 생활이 모범적입니다. 교리는 없고 생활만 좋은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생활은 모범적이지 않으면서 교리만 붙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모습은 균형을 잃은 신앙생활의 모습이지요. 뼈만 있는 사람이라든지 살만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보기 싫습니까. 

 그래서 특별히 성도는 부활교리를 잘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인이면서 부활교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부활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부활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부활을 얻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이해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은 부활은 죽은 후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살아가는 문제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부활교리에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죽은 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세워가야 할 문제입니다. 언제 어느 때에 주님 앞에 설지 모르는 우리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부활신앙으로 승리하고 주님과 같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성도들이 가져야할 최우선의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은 교회에 나오셔서 설교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교리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의 틀에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절로 1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부활신앙이 확실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거짓종교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부활신앙이 확실하지 못하다면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활신앙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이 교리 안에서 믿음의 틀을 세우고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부활의 의미
 1)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회복
 부활을 짧은 시간에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따라해 보실까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회복” 부활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처럼 생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썩지 않을 몸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썩지 않을 존재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영생하시는 분이신 것처럼 아담과 하와도 영생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어요. 창세기 2장17절 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죽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나요? 그 자리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백여세를 더 살았어요.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육체의 몸이 즉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는데 이 때 하나님의 형상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담은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아담의 육체는 썩지 않을 몸이었으나 썩을 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죽으리라는 죽음입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부활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에게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놀라운 축복을 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은 아담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을지라도 아담의 썩을 육체를 통해서 출생하였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사망이 왕 노릇 하게 된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활 영생을 얻어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을 몸이 영원히 죽지 않을 영체로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이천년 전의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53절로 54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을 삼키는 부활이에요.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을 이기는 부활이에요. 그렇게 때문에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다시 사망이 없는 거예요. 부활신앙이 쉽습니까? 말은 알아듣겠는데 믿어지지 않지요? 말은 알아듣겠는데 이해가 안 되지요? 이런 분들은 성령님께서 이것이 믿어지고 깨달아지게 도우시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 신앙을 철저히 믿었어요. 부활신앙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6장9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부활은 사망이 다시 주장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죽음이 다시 주장하지 못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상태인 것입니다.

 2)주님과 같이 되는 것
 두 번째는, 따라해 보실까요.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부활이란 주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로 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어도 우리에게 사망이 임했지만 예수님 한분 때문에 그를 믿는 자는 모두 다 영생의 부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겠어요? 그리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왜 그리 험하고 힘들게 세상을 사시면서 온 백성의 죄를 뒤집어쓰고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겠어요? 그리고 장사지낸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는데 왜 부활하셨겠어요? 예수님께서 혼자 죄 없으심과 예수님 혼자 부활하심과 예수님 혼자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우리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부활시키고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영생을 주시기위해서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모델하우스에 비유 할 수 있습니다. 모델하우스를 보면 내 집이 앞으로 어떻게 지어질 것인지를 아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 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성도들은 병에서 낫는 것이 기적인줄 생각하지만 부활이야말로 기적 중에 기적인줄로 믿습니다. 부활은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는 것이며 사망이 다시 주장하지 못할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2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님과 같이 되어지는 거예요.
 
 영이면 생선을 먹을 수 없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생선도 잡수셨어요. 그럼에도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셨어요. 이것을 부활하신 영체라고 말합니다. 이런 몸으로 홀연히 부활되어지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부활하시기 전에는 그의 몸도 육체를 입으셔서 피곤하셨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들을 다 느끼셨어요. 그러나 부활하신 이후에는 손에 못 자국과 옆구리에 창 자국을 가진 전과 똑같은 몸이지만 그 모습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진 거예요. 아멘.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6장 5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라는 것은 세례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세례를 받아서 주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면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부활도 연합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같이 된다고 해서 주님의 영광과 권세를 똑같이 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영광과 권세도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주님의 영광은 높으신 영광이고 우리의 영광은 작은 거예요. 마치 태평양 바닷물과 컵 안의 바닷물이 성분은 같지만 넓이 크기 포함하는 내용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태평양 바다에서는 고래가 살 수 있지만 컵 안에서는 무엇이 살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영광과 능력과 권세가 다른 거예요. 

 3)썩지 않을 영체가 되는 것
 세 번째로 부활이란 다시는 죽지 않고 썩지 않을 영체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 변화입니다. 그린도전서 15장 53절로 54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홀연히 변화되는 부활 영광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 부활 영생을 얻는 방법
 1)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 되어야 함
 그러면 부활영생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요? 그 첫째는, 따라해 보실까요.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가 되어야한다.” 예를 들어 결혼해서 남편과 하나가 되면 남편의 모든 재산과 남편이 누리는 모든 것을 나도 누리는 것처럼 내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례는 형식적인 세례라는 의미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마음의 세례를 의미합니다. 마음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 입술로 시인하여 내가 주님 안으로 들어가고 주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 되고 공동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슬프면 나도 슬퍼야 되고 주님이 고통당하면 나도 고통당해야 되고 주님이 행복하시면 나도 행복 할 수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죄에 대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죄에 대해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전도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전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8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라는 말씀처럼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이 부활영생을 얻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2)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
 두 번째로는, 따라해 보실까요.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부활영생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영생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이신 것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라는 로마서 10장 9절로10절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마음으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에서 생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적인 동의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에요.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믿음으로 착각하면 상당한 오해입니다. 물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로 믿고 고백 할 수 있다면 삶이 따라와야 되고 행동이 따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디도서 1장 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야고보사도는 이런 믿음을 가리켜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지식적인 동의가 전부가 아닙니다. 진정한 동의는 행동을 수반합니다. 정말로 주님이 날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서 어떻게 삶에 변화가 없겠습니까?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주일성수 하는 성도이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주일 성수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일성수 못하는 사람이 과연 예수님을 믿는 성도인가는 의문을 품고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주님은 나를 부활시켜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주님께 경배합니다.’하고 예배가 모든 일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란 무엇입니까? 주님은 나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이 주님께로부터 왔고 나의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목숨 걸고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바쁘다고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사단마귀의 사슬에 매여서 성장을 못하는 거예요. 주일성수, 십일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입술로만 시인할 뿐 행위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이루지 못하면서 주여! 주여!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입니다. ‘주’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없고 당신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은우리의 마음으로부터의 이해와 동의와 행동으로서의 표현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환란과 고통과 유혹이 와도 주님을 떠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입술로만 고백하는 자는 조그만 어려움과 시련이 와도 금방 주님과 하나 됨을 멀리하고 주님과의 약속을 파기해 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썩지 않을 몸을 주시려고 부활하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에게 주님과 같이 되어지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어요. 이것을 믿고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삶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3)변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함
 세 번째는 주를 믿는 그 믿음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변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히브리서 6장4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타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지킬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폴리갑목사님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던졌습니까? 얼마나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믿음 때문에 가난해 졌습니까? 이 믿음 때문에 핍박을 당했습니까? 지금의 세대는 유혹도 많고 바쁘고 만나자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일은 뭐하는 날인가요? 예배하는 날이에요. 감사한 것은 예전에 비해서 주일날 결혼식을 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토요일에 많이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이에요.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더 모으면 절대로 주일날 결혼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사정보아 주어서 쫓아가니까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때는 믿음의 변절자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현실과 타협하고 융통성을 동원해서 자신을 합리화시킵니다. 믿음을 가지기는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단 마귀가 유혹합니다. 세상이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깨어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부활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말씀하십니다. 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섰다 하는 자여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순간 나에게 부활신앙이 들어왔으니까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영생이 무엇인지 바로 아십시오. 교리를 바로 아십시오. 부활영생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부활 영생을 얻을 믿음을 가지십시오.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믿음을 지켜야합니다. 부활영생의 진리를 바로 아시고 진리를 붙잡고 올바르게 믿음생활 하셔서 마침내 부활영생의 축복을 누리는 모든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로마서 6:3~9
6장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교회홈페이지제작
대용량동영상서비스
무료SMS솔루션
QT나눔
신앙도서
온라인성경
크리스찬
연합신문
성경타자
설교방송
CCM 방송
성경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