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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
누가복음 4:31~37 유우열 목사 2010-05-02
권위와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 (눅 4:31-37)

 지난주간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부흥성회를 큰 은혜 가운데 마쳤고 이런 저런 어려운 일들도 있었으나 감사한 일도 있습니다. 하순덕집사님은 수요일저녁까지 집회를 참석하고 목요일 아침 차를 운전하여 일터로 나가는 중에 뇌출혈을 일으켰습니다. 평상시 아무런 증상이 없었는데 운전 중 이상해서 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고 차안에서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차를 세운 그 자리가 도로에 있는 CC카메라 앞이었고, 마침 도로 상황실에 발견되어서 도로 순찰차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하여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쓰러진 상황에서는 반신마비상태였는데 어제 가보니 모든 마비가 풀리고 언어가 회복되고 모든 것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순간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에 감사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간섭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삶속에 좋은 일이든, 아니면 원하지 않는 일이든 개입하시는 하나님, 권위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을 사건사건 속에서 경험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온 고속버스기사가 안내 방송을 했습니다. "잠시 후 이 차는 목적지인 대구에 도착하겠습니다. 잃으신 물건 없이 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안내방송을 들은 승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광주로 갈 차가 왜 대구로 온 거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당황한 운전수가 차에서 내려 앞에 붙은 행선지 표지판을 보고는 탄식하며 하는 말했습니다. "어? 내가 차를 잘못 탔네." 운전기사가 차를 잘못 탄 것도 문제이지만 버스 승객들은 광주로 가는 차가 대구까지 가는 동안 뭐하고 있었습니까? 이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차를 탄 사람,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가는 사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운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님이 정확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고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분을 정확하게 알고 믿고 그 분을 삶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부흥회 때 이런 말 많이 들었지요? “덮어놓고 믿지 말고 펴놓고 믿자.” 아멘.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그 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서 승리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를 잘 믿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지식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사실에 근거한 지식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읽어야 하고 성경공부도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에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이루어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면서 믿으면 미신입니다. 사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믿으면 맹신입니다. 나도 제대로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게 믿도록 하는 것은 혹세무민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확신에 거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알아서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기 위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누구이신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안식일에 말씀을 가르치실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으셔서 모두가 놀라움을 가지고 경청하고 있는데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크게 소리를 질러 외치기를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이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므로 예수님께서 꾸짖어 잠잠하고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시니 그 사람을 넘어뜨리고 그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어떤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가지셨기에 귀신을 명하매 나가느냐며 서로 말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귀신이 떠나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사람을 넘어뜨리고 떠나가는 것만이 귀신이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우리 마음속에 불신이 떠나가는 것도 악한 영이 떠나가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속에 죄 된 생각이 떠나가는 것도, 악한 생각이 떠나가는 것도 사단의 영들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귀신이 떠나간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에 심령이 새로워지고, 악한 것들이 떠나가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말씀으로 충만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허전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됩시다.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한 것처럼 우리도 주일성수 합시다. 예배에 목숨을 겁시다.” 이렇게 말씀드릴 때 성도님들이 “아멘” 하셨잖아요? 그러면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모두다 주일 성수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주일에 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결과에 대해서 허전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아멘으로 들었다면 그 말씀을 우리 삶속에서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천되어 질 때 우리 삶에 기적이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고,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특별히 귀신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증언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증언입니다. 어떤 축구선수가 있다고 가정할 때 같은 편 선수가 그 사람은 축구를 잘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상대편 선수가 그 사람은 축구를 잘한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귀신이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증언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귀신이 예수님의 신분을 밝힙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귀신이 증언한 내용을 통해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같이 갖추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으로서 인간을 입으시고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부분이 복잡하고, 이해가 잘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성도님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이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어떻게 하나님이면서 사람이냐는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보내셔야만 할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만 하고 동시에 인간이셔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정말로 나의 구세주로 믿고,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그 분만 섬기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증언에 의해서 하나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법정에서 가장 중요한 진술이 본인의 진술인 것처럼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언 하신 것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10절에서는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미움을 받으셨습니까? 이 말씀 때문에  신성모독 죄로 사형선고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이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면 칭찬받고, 존경받고, 사랑받고 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하셨지만 말로만 증언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누구라도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봄으로서 예수님의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장11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여러 가지 일 가운데 중풍병자가 예수님께로 왔을 때 병을 먼저 고치신 것이 아니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고 죄를 사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를 사해주시는 권세는 누구의 권세입니까?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죄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만 사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신 것은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심을 증언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십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주신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지만 행하심을 통해서 신적권위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나야 되는데 예수님을 인간으로 만나는 성도들이 있어요. 휴머니즘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사랑, 자비, 긍휼, 평화, 따뜻함, 인간적으로 부드럽고, 착하고, 자애로운 모습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만 만나는 거예요. 그러한 예수님만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이시기도 하시지만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인간으로서의 예수님도 만나야 되지만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만 합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셔야만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죄인의 죄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위해 대신 죽는다고 해도 그 죽음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죽는다면 여러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못 받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고 이 때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 예수님은 왜 또 인간이셔야 합니까? 그것은 인간만이 우리의 죄를 지고 죽을 수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입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하나님으로 대신 지시고 인간으로 대신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하나님으로 죄를 대신하시고 인간으로 죄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서”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만 하고 사람이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셔서 성육신 하셔서 이 세상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과 같이 태어나지 않으시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의 후손으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에게 사람의 몸만을 빌어서 태어나셨습니다. 할렐루야! 

2. 예수님을 경험하자.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이요 동시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삶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내 삶에 개입한 것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마어마한 기적이 나타나야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에요. 작은 것 속에서도 경험하는 거예요.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고,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경험하고, 매 순간마다 나를 인도해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속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가 없었습니까? 그들도 광야 가운데서 온갖 고난을 만났지만 그 고난 가운데서도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해서 순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아무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에요. 원치 않는 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어요. 때로는 사고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과 섭리를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삶속에서 이런 하나님을 경험할 때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세기의 부자 록펠러를 아시지요. 그는 세계 역사상 기독교인으로 최고의 부요를 누리면서 선한 사업을 많이 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12개의 종합대학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유명한 시카고 대학입니다. 시카고 대학은 8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명문대학입니다.

 록펠러가 86세가 되던 해에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그의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서 시카고 대학 내에 기념교회를 세우고 헌당예배를 드렸는데 그날 기자가 조용히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생애를 위대하게 만들어 간 비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때 록펠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네 가 스스로 교회를 가거라. 내가 지금까지는 너를 데리고 교회에 다녔지만 이제는 네 발로 걸어가거라.’ 그러면서 처음으로 20센트의 돈을 나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돈을 네 마음으로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너무 기뻐서 얼른 받아서 냉큼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머니께서 ‘아이야 돈을 내라 이 돈은 너에게 주지만 네가 써서는 안 될 돈이 이 안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십일조다. 여기에서 십일조를 지금 떼라.’ 하시고는 2센트를 따로 봉투에 담으시고 ‘나머지는 네가 쓰되 이 돈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 그러면 너는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축복을 받아서 네가 어린 시절에 당했던 그 서러움을 극복하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받아서 이렇게 부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당신 어머니가 무슨 유산을 그렇게 주었습니까?” “나의 어머니는 신앙의 유산을 주었는데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바치라고 한 유언이 나에게 큰 유산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첫 번째 유언이 십일조를 꼭 하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 유언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는 언제나 앞자리에 앉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자리에 앉든, 중간에 앉든, 뒷자리에 앉든 그것은 자유지만 목사님의 영적 파장이 앞에는 소낙비처럼 오고 뒤에는 이슬비처럼 내리니 앞에 앉아서 그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그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달래면서 남은 생애를 살겠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 어머니의 유언대로 앞자리에 앉아서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어도 앞  자리에 나오면 그 모든 것을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앞자리에 있다가 뒷자리로 가는 성도님들을 보면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시험이 들거나 은혜가 떨어진 경우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는 순서대로 앉기는 하지만 앞에 앉기를 사모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앞에 앉으려면 일찍 오셔야 됩니다. 예배시간은 늦지 않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릴 때 그 말씀이 내 말씀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예수님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면 귀신이 떠나갈 때 ‘아 놀랍도다!’하며 주변에서 놀라기만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이 있어요. 록펠러를 보면서 놀랍다고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놀라지만 말고 내가 그 주인공 되자.” 우리가 다 록펠러처럼 될 수는 없지만 우리 삶속에서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갚아주시고, 역사하시는 조그마한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의 세 번째 유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너는 교회에 가면 절대로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라 목사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종이니 그 말씀을 순종하면 네가 마음이 평안할 것이고 그리고 너는 하늘의 지혜를 얻어서 네 하는 일이 잘 될 것이고 그리고 너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그는 평생에 믿음으로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세계 역사상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기념할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으로 사십시오. 믿음으로 주일을 성수하십시오. 사람만나야 하는 유혹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숨 걸고 믿음으로 주일성수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록펠러가 가난할 때에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요즈음은 살기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무엇에든지 믿음으로 기도하며 행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 중에 반드시 고쳐야 될 것이 있습니다. 아무 일 없이 사는 것을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아무 일 없이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행이며 저주입니다. 때로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위험이 수반되지만 그 위험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간증할 수 있는 삶이 복된 삶인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권위와 능력의 주님을 경험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사람이 계산할 수 있는 일만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면 계산이 안 되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권위와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경험하는 시대를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4:31~37
4장
3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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