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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의 은혜
누가복음 5:17~26 유우열 목사 2010-06-27
죄 사함의 은혜 (눅 5:17-26)

 죄 사함의 은혜가 여러분 속에 풍성해지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말씀은 두주 전에 설교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믿음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 죄 사함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룰 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진리는 죄 사함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 사함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한 마디로 자동차 헛바퀴가 도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는 죄 사함에 관해서 세 부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전혀 죄 사함을 받지 못한 분입니다. 당연히 죄 사함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둘째는 죄 사함은 받았지만 죄 사함을 받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분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 사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죄 사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죄 사함을 받고 소망 가운데, 감사 가운데, 행복한 가운데 살아가면서 삶에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목표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분은 이 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고, 또 죄 사함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죄 사함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계신 분들은 확신을 갖게 되시고, 죄 사함의 축복을 누리시는 분들은 더욱더 은혜와 축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늦은 시간까지 많은 성도님들이 월드컵 축구를 시청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눈도 침침하고 피곤하기도 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에게 스프처럼 씹지 않아도 삼킬 수 있는 부드러운 메시지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써야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첫 마디를 놓치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그 어느 주일보다도 신경 쓰면서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이 싫어하는 단어가 있다면 ‘죄’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누가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있을까요? 명백한 죄를 지은 사람조차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환자에게 환자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죄를 지었지만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의 죄를 감추려하며 사람들에게 죄가 발각되지 않을 때 죄가 아닌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1. 죄에 대한 인식
 죄에 대해서 사람마다 인식의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어느 글에 보니까 정신병원에서는 자기를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답니다. 정신병자 두 사람이 대화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해!” 그러자 옆에 있었던 사람이 째려보면서 하는 말, “난 널 보낸 적이 없는데!”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모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인식하는 것에는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크고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라고 여기지도 않고 더 나아가 죄로 인해서 전혀 마음에 고통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마음도 평안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죄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도 있습니다. 남들이 죄라고 생각지도 않는 것을 죄라고 여겨서 고통스러워합니다. 죄책감에 매여서 자기를 비하하며 무슨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 삶을 아주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아무 문제가 없는 평상시에는 죄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고 지내지만 어떤 문제와 고통을 당하게 될 때 죄를 생각하고 죄책감에 빠지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2. 죄의 정의
 그렇다면 죄란 무엇입니까? 죄라는 것에 대한 정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윤리적 도덕적 법적인 기준에서의 죄가 있고 둘째는 성경적 양심적 영적인,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의 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윤리적이며 도덕적이고 법적인 죄란 일명 죄형법정주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란 어떤 행위가 범죄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미리 성문의 법률로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형법의 원칙입니다.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근대형법의 기본원리입니다. 죄를 규정하는 법조문이 없거나 있다할지라도 법에 의해 형을 선고받지 않는다면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법조문에 이런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한 것이다.’ 세상 법에는 이런 법조문이 없으니까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은 것을 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의 기준은 그 범위가 매우 넓고 복잡합니다. 행위를 포함하고 마음을 포함하고 영적인 부분까지 포함하는 것을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상 기준에서는 죄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죄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법에는 미워하는 것을 살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은 것을 간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세상에서는 우상 앞에 절 한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우상 앞에 절한 것을 죄라고 말하며 영적인 간음이라고까지도 말합니다. 죄의 기준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과 세상에서 보는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잠언 21장2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이 자기가 보기에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가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것은 자신은 죄라고 느끼고 있는데 하나님보시기에는 죄가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3. 죄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그러면 죄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정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죄의 기준은 나라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죄는 우리나라에서는 죄가 되는데 다른 나라에게 가면 죄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다처 결혼제도의 경우를 보면, 아랍 이스람권 국가에서는 합법적인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죄가 됩니다. 이렇게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다고 한다면 이것이 죄냐 아니냐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에서 죄가 되기도 하고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에 행위로 지은 죄, ‘살인하지 마라. 도적질하지 마라’ 마음으로 지은 죄, ‘탐내지 마라.’ 영적인 죄, ‘다른 신을 섬기지마라.’ 등 행위적인 마음적인 영적인 모든 부분을 총 망라해서 죄의 기준을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죄의 기준은 나라와 개인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 오고 또 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이 기준은 누가 동의하든지 하지 않든지 적용되는 기준으로 하나님 일방적인 기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정하신 죄의 기준이 적용되어져야 합니까?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기준을 정하실 때는 우리와 의논하지 않으시고 정하셨습니다. 헌법은 어떻게 제정합니까? 투표를 해서 정합니다. 사람의 동의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죄의 기준을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두 가지 태도 밖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을 주셨습니다. 물론 이것도 아담과 하와에게 의논하고 주신 법이 아닙니다. ‘따먹지 마라. 따 먹으면 정녕 죽는다. 너에게는 순종과 불순종의 두 가지 선택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어긴 것 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아담과 하와를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릴 수 있는 축복, 하나님이 누릴 수 있는 권세를 다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축복된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왜 죄가 무서운 것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에서부터 오는 모든 문제들이 다 죄로 말미암아 당하는 것입니다.

4. 죄로 인한 인간의 고통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릴 뿐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도 깨뜨립니다. 더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깨뜨립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저주입니다. 형벌입니다. 고통입니다. 죽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들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적인 면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다보니 에덴의 축복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은 에덴에서 추방되어지는 우리 모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첫째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다음 단추를 바로 끼운 것 같아도 잘못 끼운 것이 되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깨어진 관계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돕는 배필로 지어주셨습니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 후 아담과 하와가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책임전가 하는 모습을 보면 깨어진 관계어서 오는 불행이 인간이 겪는 고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죄로 인해 인간 생명의 질서도 깨어집니다. 본래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처럼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음으로 인해 생명의 질서가 깨어진 것입니다. 그 결과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질병이 오고 사건을 만나고 죽음이 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살아 있다는 것과 죽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모든 병, 사고, 문제는 죄로 말미암은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당하는 모든 질병에서부터 작고 큰 사건 사고까지 모두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이에 대해 그렇다고도 대답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대답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모든 질병, 모든 문제, 죽음 등이 죄로부터 왔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예컨대 발을 헛디뎌 넘어져 다쳤다고 해서 그것도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감기가 걸렸을 때 무슨 죄를 지어서 감기에 걸렸냐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한 부주의와 실수로 인한 것을 죄로 말미암았다고 말하기는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지라도 그 연약함과 실수마저 원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죽음의 종류
 죄의 결과로서 오는 죽음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죽음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죽음을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한번 죽는다는 것은 어떤 죽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은 두 번째 죽음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있는 것을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달나라에 토끼가 있다고 여러분이 믿어도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달나라가 없다고 믿어도 있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부정한다고 해서 있는 것이 없어지거나 인정한다고 해서 없는 것이 있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사망을 만드셨기 때문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첫 번째 죽음은 누구나 다 겪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망은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죽음을 영혼의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의 죽음이란 영원한 지옥형벌입니다. 이를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이 둘째 사망에서 벗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두 번째 사망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성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니까 있는 것으로 가정 하는 거지요. 눈으로 직접 보았나요? 가 보았나요?’ 이것이 믿음입니까? 믿음 아닙니다. 성경에 근거해서 천국과 지옥을 굳게 믿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눈으로 본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된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천국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못합니다. 예수님처럼 죽으셨다가 부활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7. 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죽음의 원인이 죄입니다. 모든 고통, 문제, 저주, 불행의 원인이 죄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죄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죄가 해결된다면 문제도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을 사람의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오면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없고, 살아갈 동안 죄를 짓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곧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를 사해주시는 것인데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는 분,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우리들의 죄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침상 째 예수님께로 온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죄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죄는 내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해결하시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예수님께 내 죄를 해결해 달라고 나온 것입니다. 또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서 나오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의 죄는 죄 사함을 통해서 해결 받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죄는 사해짐으로 해결 받는다.”

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그러면 죄는 어떻게 사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값을 치르게 함으로써 죄를 사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적인 용어로 대속이라고 합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대속” 대속이란 우리의 죄 값을 누군가 대신 치르게 하심으로 죄를 사하시는 방법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린 양이 나를 대신해서  죽임을 당함으로 피를 흘려 대신 죽음으로서 내 죄가 용서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어린양의 피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린양의 피제사가 우리의 죄를 영원히 사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침내 짐승의 피로 하지 않고 죄 없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보혈의 피를 흘리사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사하심의 방법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는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는 것이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9. 최고의 축복 죄 사함의 은혜
 죄 사함은 최고의 축복이요 최고의 은혜입니다. 거저주시는 축복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받는 능동적인 복이 아닙니다. 믿고 손을 벌린 자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복입니다. 중풍병자가 노력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나아갔더니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죄 사함이란 일반적인 죄가 사라진 게 아니라 원죄가 뿌리째 뽑힌 것을 말합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마귀의 세력이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절망의 세력이, 저주와 죽음의 세력이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그래도 죽지 않느냐며 우리를 자꾸만 속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을 받아서 죄의 권세에서, 질병의 세력에서,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을지라도 또 실패도 하고 병도 걸리고 문제도 만납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질병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기 때문에 사망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실패했으나 실패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어느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기쁨과 소망과 행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망이 와도 질병이 와도 행복한 것입니다. 실패가, 암이 우리를 절망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기 때문 인줄로 믿습니다.

10. 죄 사함의 축복을 누리며 살자
 죄 사함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에 나온 성도들 가운데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또 죄 사함을 받았어도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죄 사함을 받았음에도 날마다 고통 가운데, 염려 가운데, 근심 가운데, 소망 없이, 불평과 원망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고 그것에 감사하는 성도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내일 죽어도 행복합니다. 원치 않는 일을 당해도 행복합니다. 환란이 와도 핍박이 와도 사망이 와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고 영원한 영생을 주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어떤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아니하는, 행복을 잃지 아니하는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직 죄 사함을 받지 못하신 분들은 죄 사함을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죄 사함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지식입니다. 세상 지식이 아니라 영적인, 성경적인 믿음의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구에게 10억을 빚졌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갚아주었다면 얼마나 평안하고 자유롭게 살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고 산다면 그것에 눌려서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는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면 무슨 일을 만나도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소망과 기쁨을 빼앗아 갈수가 없습니다. 늘 행복한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죄 사함 받지 못한 성도는 죄 사함을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모르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자꾸만 들어가셔서 영적인 지식을 깨우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분명한 죄 사함의 은혜가 있는 성도들은 우리를 속이는 사단의 계략에서 온전히 승리하시고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5:17~26
5장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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