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를 제정하신 목적 (신16:9-17)
우리나라의 4대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입니다. 이러한 절기는 나라의 역사에 반드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교훈이 있기에 정한 것입니다.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은 그 역사가 대한민국현대사에 근거한 것으로 역사가 깊지 않습니다. 100년 이내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특별히 일본의 압제로부터 투쟁을 했던 삼일절과 그것으로부터 독립을 했던 광복절과 나라의 틀을 제정하고 헌법의 질서를 세운 제헌절이 국경일로 제정되었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것이지만 국경일의 근거가 근자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란 뜻입니다. BC 2333년 10월 3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 날을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로 보았기 때문에 개천절로 삼은 것입니다. 개천절이 경축일로 제정된 것은 1909년 1월 15일(음력) 나철이 단군 숭배를 기본으로 하는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창시한 것에 기인합니다. 당시 일제치하에서 나라의 기틀을 확립하고 민족을 부흥시키는 힘은 민족의식 고취라고 생각하여 동료 오기호 등과 함께 ‘단군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단군교 창시 1년 만에 ‘대종교’로 개칭하였는데 개천절은 단군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개천절의 근거가 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4천년이나 지나서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민족종교에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평가절하하거나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절기와 비교해 보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도록 말씀하신 절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을 제정하시고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특히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그 민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까지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유월절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다시 어린양의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완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기념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을 유월절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또 유월절의 개념은 성찬의식과도 같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정하시고 지키도록 명령하신 근본 목적과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의의와 의미를 알면 우리가 이 절기에 기쁨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어지리라고 믿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맥추절의 정확한 단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맥주절이라고 생각하고 맥주를 주는 절기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맥추절은 보리맥 자와 거둘추 자를 써서 보리를 거두었다는 의미에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1. 은혜에 감사하라.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정하시고 그것을 지켜야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은혜가 새겨집니까, 아니면 섭섭하고 속상하고 미운 것이 마음에 새겨집니까? 인간의 기억구조가 은혜는 새겨지지가 않습니다. 그 큰 은혜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누가 한 마디 한 작은 서운한 말은 가슴에 새깁니다. 원수는 가슴에 새기고 은혜는 흐르는 강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인간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자가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를 마음과 행동으로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말로만 아니고, 마음으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네 하나님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 받은 것이 크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 은혜가 귀하다면 그 은혜에 대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또 16절로 17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하는 절기가 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가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지낸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신명기 8장4절을 보면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이기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광야를 지나고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첫 열매를 거두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은 광야라는 말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는 7월 달에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그 때는 광야의 낮 온도가 44도가 넘습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그 광야에 노출되어 있으면 일사병으로 다 죽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강력하신 보호와 인도가 있으셨기 때문에 40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그들이 농사를 지었습니까, 길쌈을 했습니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먹고 살았고 옷이 없어서 속살이 보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아래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이 보리 단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것입니까? 40년 동안 씨앗 한 번 뿌려보지 못한 민족이 가나안 땅에서 얻은 첫 수확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에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0년을 지켜주셨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켜주셨다. 우리를 보호하셨다. 우리를 인도하셨다.’ 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의 둘째 녀석이 학교에서 보내주어서 영국에 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루에 두 시간씩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40만 원 정도 받았답니다.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첫 열매 드려야 되나요?” “당연하지. 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얻은 소득이니까 전부 하나님 앞에 드려라.” 두말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광야까지 가기까지는 자기의 힘도 있었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는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오늘 내가 구원받은 것도 내가 노력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습니까? 내가 믿은 것입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셔서 예수 믿게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서 거듭난 것입니까? 아니면 거듭나서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까? 내가 예수를 믿어서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났기 때문에 믿게 된 줄로 믿습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이 나에 의해 된 것입니까, 성령님에 의해서 된 것입니까? 성령님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구원도 나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어제는 어느 목사님 자녀 결혼식이 예정되어있었는데 결혼식하기로 예정한 2시간 전에 결혼식이 미루어졌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들 불길한 생각들을 했습니다. 소식을 들으니 다행이도 경미한 교통사고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결혼식을 미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구경삼아 인천대교를 가보았습니다. 인천대교가 얼마나 높습니까? 거기에서 어제 버스가 추락했습니다. 어느 대학교 교수님은 아내와 자녀 일가족이 사망 사고를 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잠언 27장1절에는 “네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삶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자 훈련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혹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깜빡하면 죽을 뻔 한 일이 있었습니까?” 모든 사람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한 발자국 만 잘못 옮겼으면 뇌진탕으로 죽을 뻔했는데 그 순간을 넘긴 기억이 여러 번 있습니다. 순간의 발걸음조차 인도해주셨기 때문에 안전하게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어느 권사님 딸은 운전을 하는데 상대차선에서 오는 차가 전조등을 깜박거리며 경적을 울려대더랍니다. ‘저 차가 왜 그러지?’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기가 역주행을 하더랍니다. 또 우리교회 어떤 집사님도 역주행을 하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많이 다치지 않았답니다. 이런 일도 있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아차 하는 순간에 세상 떠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바로의 학정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시고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고 대적을 물리치게 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으니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 안에서 복된 삶을 이루어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절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리는 절기가 되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나 된 것이 내가 수고해서 얻은 줄 알았는데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도왔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섭리를 베풀어 주셔서 모든 여건을 허락해 주셨기에 내게 이와 같은 축복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도 감사하지만 우리의 주변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절기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긴 원한이 있다면 버리시기 바랍니다. 섭섭한 감정이 있다면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인생이 망가집니다. 은혜를 가슴에 새기십시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섭섭함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섭섭한 것, 속상한 것, 상처받은 것이 새겨지면 불평과 원망과 나쁜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이런 것들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반면 은혜는 자꾸만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자꾸만 기억하고 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고 좋은 말을 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 강화하라.
하나님께서 절기를 정하신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성을 강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삼일절과 광복절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맥추절을 지키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11절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고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함께’라는 단어에 의미가 큽니다. 14절에도 “함께 즐거워하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한 가족 공동체라는 것을 강화하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개인주의가 극도로 팽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동체라는 의식이 매우 결여되었습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각의 중심이 ‘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 공동체성이 심각하게 훼손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각각의 지체라고 하였습니다. 지체가 각각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나가 될 때 몸의 기능이 정상화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협력이 없이는 교회의 하나 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거룩한 공동체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교회를 돌과 시멘트로 보았습니다. 각각의 벽돌이 있지만 벽돌이 개별적인 것으로 있으면 결코 건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벽돌과 벽돌을 시멘트 몰탈로 연결할 때 벽이 되고 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섬김이라는 몰탈을 붓고, 희생이라는 몰탈을 붓고, 겸손이라는 몰탈을 붓고, 자기를 비움이라는 비움의 몰탈을 붓고, 양보라는 몰탈을 붓고, 절제라는 몰탈을 부어 벽돌 하나하나가 이어져 갈 때 이것이 벽이 되고 건물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벽돌이 자신의 개성을 주장하면서 시멘트로 연결되지 않을 때 그 벽돌은 건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또한 어떤 외부적인 충격이 가해졌을 때 시멘트로 하나 되지 못한 벽돌은 떨어져 나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성도들이 있어도 모두 다 나 중심이 되어 버리면 안 됩니다. 거룩한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절기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드리는 축제입니다. 축제 때에는 모두가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조금은 비워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가족이 모이면 꼭 싸움을 합니다. 그 집안의 내력은 형제들이 칼을 들고 싸우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서로 죽이겠다고 싸웁니다. 아버지 생신이라고, 어머니 생신이라고 모였는데 가족이 모일 때마다 무엇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싸웁니다. 살다보면 마음에 안 맞는 것도 있고 섭섭한 것도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 좋은날 싸웁니까? 서운한 것도 조금 낮추어 놓고 속상한 것도 조금 누그러뜨려놓는 것이 가족공동체를 강화시키는 것 아닙니까?
교회 공동체를 강화시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2장 3절로4절에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하나 되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사실 교회의 공동체성을 훼손시키는 사람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 있습니다. 먼저 믿은 성도들 중에 본이 되지 못하여 교회를 하나 되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성도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전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연약한 성도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입만 열면 불평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교회의 공동체성을 약화시키는 행동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약화되면 세상을 선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 된 교회 공동체만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기는 서로를 배려하며 양보하며 협력할 때 지켜질 수 있습니다. 공동체성이 강화되어야 축제의 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공동체성을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3. 나눔을 통한 기쁨의 배가하라.
절기를 지켜야 할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고 기쁨을 배가하기 위함입니다. 공동체성이 이루어지고 나니까 기쁨도 배가 되는 것입니다. 절기는 축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드컵 16강에서 이청용선수가 만회골을 넣었을 때 온 국민이 일어나서 누구도 상관하지 않고 얼싸 않고 춤을 추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음식점은 16강을 올라가면 음식을 공짜로 주겠다는 곳도 있었고 음식 가격을 낮추겠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절기는 이런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4. 고난을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절기를 지켜야 할 이유는 12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고난의 시간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때, 애굽에서 해방되었던 때, 광야에서 헤맬 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셨던 때, 가나안 정복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셨던 때, 그 어려웠던 때를 모두 다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웠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단칸방에 여러 식구가 누워서 칼잠 자던 때를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많아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커집니다. 불평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바벨론 강에서 말합니다. “너희들 노래 한번 해 봐라.” 그 노래가 무슨 노래입니까? 타향살이노래가 절로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타향에 와서 신세타령을 하며 살았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그곳에서 돌아올 때 힘든 것이 힘든 것이겠습니까? 또 본토에 돌아와서 어려움을 당한 것이 어려움이겠습니까? 여러분! 지난날 고난의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러면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가 넘쳐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도록 제정하신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제정하신 이유는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아픔과 상처를 새기지 말고 은혜를 새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족 공동체를 강화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을 나누어 배가시키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기억하면서 불평을 없애고 감사가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맥추절을 지키면서 저와 여러분 속에 이 네 가지 주님의 뜻이 다시 한 번 회복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명기 16:9~17 16장 9 칠 주를 계속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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