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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열두 제자
누가복음 6:12~19 유우열 목사 2010-07-25
선택받은 열두 제자 (눅6:12-19)

 여러분! 혹시 선거를 통해서 회장이나 반장이나 아니면 책임 있는 자리에 당선되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때의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삶의 보람을 느낄 만큼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왜 좋을까요. 대다수의 국민에게 선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인정해주어서 내가 선택 받았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으로 여깁니다. 정치의 매력이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대기업 회장 자리 내려놓고 지역 국회의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면 돈을 벌어 재력가가 되는 것보다 많은 사람에게 선택받고 살아가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받는 자리면 심지어는 구의원이라도, 학교의 반장이라도, 동장이라도 그렇게 달려드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동 대표를 선출하는데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싶은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시대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리학자인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 설을 보면 인간에게는 5단계의 욕구가 있는데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지면 상위 욕구로 점차 나아간다고 합니다. 1단계는 생리적 욕구로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음식ㆍ물ㆍ수면ㆍ산소 그리고 배설 등의 욕구를 말합니다. 2단계는 안전의 욕구로서 신체의 안전과 동시에 심리적으로 협박당하거나 사회적으로 협박당하는 것을 피하려는 욕구입니다. 3단계욕구는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로서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주위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4단계 존경의 욕구로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마지막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충실히 실현시키려는 욕구, 인생의 의미, 삶에 보람을 느끼며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구를 말합니다. 

 메슬로우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선택 받고 인정받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간사합니다. 어제는 좋다고 선택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해관계가 다르면 싫다고 버립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것이 민심이요. 유권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가만해 생각해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처럼 힘들고 부질없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았다고 좋아하다가 사람에게 버림 받았다고 충격 받고 좌절하고 실패 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특히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는 놀라운 축복을 얻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어린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길을 갈 때 “내가 아빠 손을 잡고 간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빠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아빠가 아이 손을 잡고 간 것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만세 전에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3절로 5절 말씀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 말씀을 묵상하면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사람에게 선택 받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입니다.

  태어나서 우리교회에 처음 나온 어떤 아기가 조금 전에 기도를 받았습니다. 아기의 얼굴모양은 엄마와 아빠를 닮았지만 그 영혼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믿음의 가정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에서 창세기 큐티를 하고 있는데 노아 홍수 때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입니까? 노아의 가족 8식구만 택함을 받았습니다. 학자에 따라 약간은 다르지만 그때 당시의 인구를 10억~30억 정도로 봅니다. 8명을 남겨놓고는 하나님께서 다 쓸어버리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가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시고 우리는 질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도예공이 불가마에서 작품을 꺼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조리 깨버립니다. 가마에서 구워져 나와도 그냥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8명만 택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자리에 사람이 많으니까 너도 택함 받고 나도 택함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별거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지구촌 70억이 되는 인구 가운데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는 결코 많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창세전부터 택하셔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불러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옆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귀하는 대단하십니다.” 우리는 자긍심을 가져야 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세웠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선택과 사람의 선택이 다른 것은 주님은 택하시고 버리지 않으시지만 사람은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어제 애완용 강아지의 머리를 포장용 테이프로 감아 싸서 버린 사건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자기가 예쁘다고 길렀던 강아지를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하게 버릴 수 있습니까? 그게 사람입니다. 사랑한다고 평생을 행복하게 하겠다고 해놓고서 자기가 버립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선택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택은 다릅니다. 내가 버리지 않는 한, 주님께서는 한 번 택하신 자를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시면서 인도하시고 도우십니다. 시편 31편 8절에는 “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지요. 제가 좋아하는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내가 순종하기만 하면 영원토록 버리지 아니하실 줄로 믿습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천 대까지라는 것은 세상 끝날까지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를 버린다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한 번 택하신 주님께서는 영원히 나를 이끌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택하시고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주님의 손을 놓지 마시고 주님의 품을 떠나지 마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날마다 순종하여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 하늘에 속한 자로 택하심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놀라운 은혜요 축복이지만 특별히 예수님의 열두 제자로 선택을 받은 자들은 역사상 가장 복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께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고르시고 또 고르셔서 열두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도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역사 이래 사도라고 이름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선택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이들은 예수님께 선택을 받고 존귀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열두 제자의 이름을 닉네임으로도 많이 쓰고 본인의 실제 이름으로도 많이 씁니다. 어떤 성도는 장차 천국에 가서 제자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분도 있습니다. 예수님께 택함을 받음으로 인해서 이들 이름이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건만 12제자만 택하신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12라는 수는 유대인들에게는 완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12제자는 예수님의 복음 사역에서의 완전성을 의미하며 구약의 12지파가 암시하듯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출현하게 됨을 알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12지파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루어졌지만, 신약의 새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12제자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선택받은 열두 제자의 면면을 보면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매우 평범한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어부였으며, 바돌로메도 어부라고 보며, 빌립은 벳세다 사람으로 베드로와 동향 사람입니다. 마태는 세리였으며, 시몬은 열심 당원이었고, 도마는 블레셋(팔레스타인)사람이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큰 야고보에 가리어서 전혀 두각을 보이지 못한 인물이며, 그리고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예수를 판 가룟유다 등이었습니다. 보통사람들인 우리들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천하다고 할 수도 있는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주님께 선택받고 부름 받아 주님의 제자가 된 후 이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비범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했던 가룟유다는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뻔했다.” 고 할 정도가 되었지만 제자들은 존귀하고 영광스런 이름이 된 주로 믿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자녀삼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들을 부르셨을까요? 저들에게 이 땅을 바라보고 살지 아니하고 이 땅의 가치관에 매여서 살지 아니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대로 주님이 바라보는 그 나라를 향해서 살아가라고 저들을 불러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때로는 친구도 버리고 가족도 뒤로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라나선 것입니다.
 
 왜 이들이 존경을 받는 이름이 되었습니까? 이들은 땅에 것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늘의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의 부르신 목적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영혼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았습니다. 이런 삶으로 부르신 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를 택하신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따라가는 그 당시에는 천대를 받고 멸시를 받고 힘들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마침내 영원한 승리자로 영원한 성공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불러주시고 오늘 우리를 불러주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유명한 사업가는 사업에서의 승자와 패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승자는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사람이고 패자는 칠면조처럼 땅에서 뛰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땅에서 뛰지 않고 독수리처럼 하늘에서 날도록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땅에서의 기는 자로 살지 않게 하셨습니다. 칠면조의 옷이 아무리 화려해도 땅바닥에 있는 음식조각 몇 개가 칠면조의 목적입니다. 볼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하늘을 날아 땅 너머의 먼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주시는 축복을 바라보면서 살 수 있도록 독수리의 눈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독수리처럼 육신을 뛰어 넘어 영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시고 이 세상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려고 불러주신 줄로 믿습니다.

 세상사는 것이 별것 아닙니다. 잠깐입니다. 어제는 집에 들어가서 시원한 방바닥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았구나!’ 그렇다고 제가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죽을 날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목적을 두고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떨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의 명예가 전부라고 생각해서 그것에 온 에너지를 다 쏟아서 명예를 얻었는데 얻자마자 놓아야 된다면 그것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생을 바쳐 그것을 이루었는데 세상 떠날 일이 생겨보십시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잠시 이 땅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을 주님은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먼저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로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나이가 좀 들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세상 떠날 거’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그것입니까? 이대로 살다가 얼마 안 가 화장터에 가서 한줌의 재가 되어 나오는 것이 인생의 끝인가요? 자신의 인생을 상상으로 그려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인생은 그것이 아니다. 칠면조 인생은 그럴지 몰라도 너희의 인생은 날개를 펴고 그 나라를 바라보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그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과감하게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물질도 포기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명예도 내려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교회 전도대가 화, 수요일에 늘 모여 전도하는데요. 여기서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도대에서 중보 기도함을 만들어서 함께 기도하는 것인데요. 전도대원 모두 한두 가지 기도제목을 적어서 기도함에 넣으면 추첨을 통해 두 사람을 뽑아 기도해준답니다. 한번은 어느 집사님 기도제목이 뽑혔는데 ‘돈이 없어서 전기세도 내지 못합니다. 필요한 물질 해결해주세요.’ 라는 기도제목이었는데 기도 후 어느 권사님이 나에게 주신 응답으로 받고 제가 하겠다고 해서 즉시 해결되는 훈훈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이야깁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기도함에 기도제목을 넣었지만 몇 달이 지나도 뽑히지 않았는데 지난 수요일에 뽑힌 것입니다. 그 집사님의 가정은 남편 집사님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시는데 실은 너무 잘 안 되는 상황입니다. 교회에서는 주일학교에 부장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늘 안타까운 것은 주일에 자기 반 어린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차가 있지만 너무 낡은 승용차이기에 아이들을 많이 태울 수도 없고 태워도 늘 불안했답니다. 그래서 승합차를 주셔서 주일학교를 위해 차량운행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제목을 넣은 것입니다. 이 기도 제목이 지난 주간에 추첨되어서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습니다. 익명의 성도가 그분을 위해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2천만 원을 목사인 저에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익명으로 헌신한 분도 돈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도 없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네가 해라’는 감동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헌신한 것입니다. 너무도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기도해서 응답받은 집사님은 기도응답을 받아서 감사한 것이고, 익명으로 헌신한 성도는 장차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을 믿고 하셨을 것이니 바로 이런 성도가 독수리처럼 하늘을 나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뿐 아니라 우리교회에서는 이런 훈훈한 일들이 참으로 많이 일어납니다. 자신은 정말로 내핍 생활을 하면서 선교지에 교회를 건축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돈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인색하지만 선교를 위해서 헌신적인 분들입니다. 1030으로 선교지에 교회가 26개째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헌신 없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장학금을 헌신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알게 모르게 숨은 손길로 섬기고 봉사하는 소식을 듣습니다. 독수리 날개 같은 믿음의 날개를 달았기에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모두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장차 주님께서 주실 은혜와 축복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지난주에는 여성제자반 일 년 훈련 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 저녁 예배 시에는 이분들이 15분 정도 성구 암송을 합니다. 또 금요일 저녁에는 남성들과 제자훈련을 하는데 “당신들의 삶속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십시오.” 라고 했더니 이런 간증이 있었습니다. “저는 결혼 후 자녀를 갖지 못했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습니다. 아내가 임심이 되었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자궁 외 임신이었습니다. 그날 밤 얼마나 통곡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는 자여 왜 의심하느냐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더니 정상적인 임신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또 어느 집사님은 부천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인천으로 내려왔답니다. 이곳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한답니다. 가게를 얻었는데 처음에는 가게 세도 내지 못해서 고통스러웠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믿음의 십일조를 드리라는 믿음을 주셨답니다. 월세도 못내는 상황에서 믿음의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그 후 2년이 되었는데 지금은 믿음의 십일조 드린 것의 배를 드리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게를 확장해서 옮긴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믿음의 날개를 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은혜주시고 축복주시고 작은 체험을 통해서 더 좋은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땅에 매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하늘에 꿈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대개 땅에 꿈을 두는 사람은 고작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에 대한 염려와 궁리로 차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가 되면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더 영원한 축복을 위해 꿈을 펼치는 것입니다.

 사람은 먹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짐승은 먹는 것만 주면 대 만족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좀 적게 먹거나 혹 먹지를 못한다 할지라도 꿈을 가지고 하늘의 비전을 가지고 영생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것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런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마음 중심으로부터 감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2. 부르심에 대한 순종
 주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이 큰 축복이지만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제자들의 응답과 순종도 매우 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이 땅에서 무엇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보이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보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따르겠다는 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즉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니고 박수 받는 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로 24절 말씀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절망적이고 희생적인 것만을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이에 따르는 상급과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을 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8절로 2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여 부르신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을 택해서 불러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가룟유다가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승리했던 제자들처럼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우리를 속이고 어렵게 해도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칠면조로서 이 세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수 있는 참 믿음의 하늘에 속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6:12~19
6장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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