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마음을 가지라(눅7:29-35)
여러분은 긍정적인 사람인가요, 부정적인 사람인가요? 일반적인 통계에 의하면 인간의 4분의 3은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긍정의 마음을 가져야만 은혜도 받고, 변화도 되고, 삶의 승리도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이 긍정의 마음으로 바꾸어져서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28절 말씀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또 29절에는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백성들은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0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부정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세례요한을 인정하고 그의 베푸는 세례를 받았으며 세례요한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는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지도 않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태도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던 백성들과 세리들은 구원받고 은혜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태도를 가졌던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되었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일에 박는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의 태도를 보시면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32절 말씀입니다.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아무리 은혜의 말씀을 전해도 반응이 없고, 아무리 회개의 말씀을 전해도 반응이 없고 무감각한 모습입니다.
또 33절로 34절을 보면 이처럼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바리새인들은 세례요한이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금욕생활을 하는 것을 보며 귀신들렸다고 비난을 하더니 예수님이 오셔서 먹고 마시니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며 예수님을 향하여 비난의 말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들 앞에는 누구도 비난과 험담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온 믿음의 성도들 가운데 만에 하나라도 바리새인과 같은 분이 있다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어지는 시간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와 축복들을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어떤 복도 복으로 받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저주스러운 마음입니다. 마치 길가와 같고 돌짝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축복은 걸러내고 저주를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것인가의 기준은 얼마만큼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의 태도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긍정적인 마음의 태도로 말씀으로 은혜 받고 주의 사역을 감당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전문점 스타 벅스의 회장 하워드 슐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사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결코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없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마음에 부정적인 것이 깔려 있으면 무슨 설교를 해도 은혜가 안 됩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누구를 만나도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집니다. 성도와의 관계도 깨집니다. 심지어는 부부간의 관계도 깨집니다. 상처뿐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안에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언어가 사라지게 되기를 기도해야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고쳐나갈 수 있지만 자신이 부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이라는 것을 모를 때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 교만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보면서도, 또 세례요한이 행하는 일들을 보면서도 왜 예수님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고, 백부장의 종이 죽을 병에 걸렸을 때 그를 치유해주셨고, 가난한 자를 돌보시고, 먹이시고, 온갖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잘못만을 책잡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 99가지는 안 보고 문제가 될 만한 한 가지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왜 주일날 병을 고치냐며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왜 부정적인 마음이 있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부정적인 생각의 근원이 됩니다.
성경에는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율법교사라고 말합니다. 저들은 율법의 전문가입니다. 전문가라는 말은 좋은 의미의 말이지만 이들은 누구를 보아도 율법의 기준을 적용하여 판단하는 자의 자리에 있게 됩니다. 이들의 잣대에 예수님마저도 잘못했다고 판단되어질 정도라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습니까? 이들은 하나님만이 판단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서 율법의 잣대로 잘 잘못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부부간에 서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판단하는 자리로 올라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판단하는 자리로 올라가면 계속 판단하게 됩니다. 지적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지적합니다. 판단하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을 판단하고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 모두 다 나빠만 보였을까요? 그것은 아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비판하고 욕했지만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소중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것들은 다 내버려두고 잘못된 것들만 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이들도 예수님의 행하심, 세례요한의 행적에 대해서 알았지만 완고함으로 저버렸다고 말합니다. 30절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는 말씀처럼 성령의 감동하심을 의도적으로 저버렸다고 합니다. 그들의 완고하고 강퍅한 의지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좋은 것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부정적인 것만 들추다가 좋은 것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깨달음을 주셔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나쁜 것만 보려고 하는 기질들이 없어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에는 완전히 나쁜 사람도, 완전히 좋은 사람도 없습니다. 완전한 교회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부족한 교회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교회도 문제가 있습니다. 완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열 가지 좋은 것은 보지 못하고 한 가지 나쁜 것만 본다면 그 마음이 나쁜 것입니다. 그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입술이 누구를 비판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금의 세상은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 주셔서 내안의 부정적인 생각, 내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부정적인 언어를 사라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환경
이들이 이처럼 부정적이고 비판일색의 사람이 된 것은 오랜 전통에 학습된 환경까닭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의 굴레에 씌워져서 비판이 생활화되었고, 누군가를 비판하는 분위기 가운데서 지냈습니다. 그들은 남을 비판하는 일에 합세했고 마침내 부정적인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늘 칼을 가지고 쪼개는 사람들입니다. 뭐가 잘못되었는가는 꼬집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잘한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잘못한 것에만 끄집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환경에 어울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분위기 속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비판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욕하는 분위기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같이 욕을 하게 됩니다. 환경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은 부정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것 같습니다. 벨기에 요한 데놀레트 박사가 실험 결과를 밝힌 바에 의하면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16세까지 자신에 관해 17만 3천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1만 6천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29.6개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겨우 2.7개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 셈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대로 방치해 두면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말을 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은 인생을 망치는 쓰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나 쓰레기가 마음을 덮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날아가는 새의 배설물이 머리에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새가 머리에 둥지를 틀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부정정인 말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안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말은 때에 맞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말은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입니다.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대로 지혜로운 말은 학자의 혀처럼 곤고한 사람에게 힘을 더해줄 수 있는 말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말입니다. 금요일에 제자훈련을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지혜로운 말로써 성도들을 섬길 것인가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분위기 상 누군가를 비난해야 하는 분위가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운 사이인데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고 분위기 상 동조해야 할 상황에 이르면 함께 욕하고 비난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어떤 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앞에서 이런 말은 하지 마세요.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라며 화제를 돌린다고 합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태도라고 보았습니다.
3. 노력
사람들은 대개 환경과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노력하지 않아도 들어와서 마음에 쉽게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은 노력하지 않으면 내 안에 자리 잡지 못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는 우리 인간은 하루에 5만∼6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이 많은 생각 중에 75%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25%는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위해서는 노력하여야 합니다. 남을 비난 하는 것은 몇 시간이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속할 수 있지만 남을 칭찬하는 것은 5분 이상 지속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부정적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 없지만 긍정인 마음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긍정의 마음, 긍정의 말은 놀라운 능력과 힘이 됩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뮐러는 청소년 시절, 동네에서 부랑자였습니다. 아버지의 돈을 훔치고 거짓말을 일삼고 친구와 어울려 유흥업소와 경찰서를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다가 결국 교도소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목사님의 긍정적인 말을 듣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조지! 나쁜 버릇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한번 택한 자녀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낙심하지 말고 노력하면 넌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라는 말에 힘을 얻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긍정의 말을 할 때 놀라운 변화와 축복이 일어납니다. 인간은 ‘말’을 만들고, ‘말’은 인간을 만듭니다. 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고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미래가 영향을 받습니다. 긍정의 말은 많은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 앞에 충성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밝은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점만 찾는 사람도 있고 나쁜 점만 찾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수없이 나쁜 점들 가운데서 우연히 발견한 단 하나의 좋은 점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행하심을 보면서도 좋은 것은 찾아내지 못하고 문제만 끄집어내서 시비를 걸고 비판을 일삼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무서운 적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을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농담으로 조차도 비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정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무슨 말인가 하면 주님의 복음을 듣고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성도에게는 아무리 바리새인들의 말에 의해 복음이 비난을 받고 곡해 당하는 상황에 이른다 할지라도 요동되지 않고 주님에 대해 긍정의 마음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비판과 비난이 홍수같이 쏟아지는 세상에서도 그런 것들을 다 걸러내고 믿음의 말, 하나님의 말씀, 축복의 말씀, 칭찬의 말, 격려의 말들을 하고 받을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변에 바리새인 같은 자들이 있어서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놓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할지라도 변함없이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외치기를 바랍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 앞에 나타났을 때, 병사들은 모두 다 이런 생각했답니다. “저렇게 거대한 자를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저렇게 크니 절대 빗맞을 일은 없겠군.”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마음이 떠나가고 긍정적인 마음이 자리 잡게 하려면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가 우리 안에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정적인 생각이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를 잡지 않도록 하십시오.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말이 입술에서 떠나도록 하십시오. 오직 긍정적인 마음과 긍정적인 말, 축복과 격려하는 말이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은혜 충만하게 되고 주님 기뻐하시는 풍성한 열매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7:29~35 7장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32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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