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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누가복음 8:4~15 유우열 목사 2010-11-07
마음(눅8:4-8)

 몇 년 전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면서 ‘마음’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도대체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심장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뇌에 있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보여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8살 난 여자 아이가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답니다. 심장은 살해당한 10살 아이의 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심장이식을 받은 아이에게 놀라운 현상이 일어납니다. 꿈에 자기를 죽인 남자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남자에 대한 인상착의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에서 아이의 진술을 따라 자기를 죽였다는 남자를 조사를 해보니 그 남자가 범인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심장에 있는 것인가?”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에는 마음은 심장에 있다고 보통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결론은 마음은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다 전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하는데 그렇지를 않다는 것입니다. 뇌에 있는 신경세포가 마음의 저장장소라고 합니다. 뇌에 있는 신경세포에 외부 환경에 의한 전기 자극이 가해지면 어떤 감정이나 정보가 기억되거나 저장된다고 주장합니다. 일면 타당성도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마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성경에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1057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과 뜻이라는 단어를 비슷한 말로 생각하여 포함한다면 마음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사람에게도 있지만 하나님께도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마음은 인간이 스스로 가지기도 하지만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예수를 믿을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느헤미야 2장 12절에는 말씀하십니다. 또 욥기 7장 17절에는 “사랑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욥이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대하게 하셨는데 그 증거가 바로 사람 속에 마음을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위대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 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마음입니다.    시편 33편 15절에서는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 살피시는 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지으시며 우리가 그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것을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믿습니까? 믿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제 마음을 못 믿습니다. 인간의 마음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4가지로 설명합니다. 카르디아(καρδία)라고 하는데 감정과 감각을 의미합니다. 노우스(νούς)라고도 하는데 지능과 지식을 가리킵니다. 푸쉬케(ψυχή)라고도 하는데 목숨을 의미합니다. 또 푸뉴마(πνεύμα)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혼을 의미합니다. 즉 마음이란 인간의 감정, 지성, 의지와 생명과 영혼을 포함하는 전 인격체의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과 잘 교통해서 풍성한 삶의 열매가 있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한 가지 질문해 볼까요? 하나님께도 마음이 있고 사람에게도 마음이 있는데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을까요? 마음에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고 가정하면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주일아침부터 복잡하게 이야기 하느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와 사단 마귀, 세상 환경에 영향을 받거나 공격을 받으면 길가나 바위나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 영향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으면 옥토와 같은 좋은 밭이 되어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일단 마음이 어떤 모양으로든 형성이 되어 자리가 잡히면 그 마음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일단 마음이 돌이나 길가처럼 굳어져 버리면 어떤 말씀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옥토와 같은 마음은 어떤 말씀도 다 은혜가 됩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관리 중에 마음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니까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망하게 하시려고 강퍅한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누구에게는 복을 주시려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내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정결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용서의 마음을,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을 만져 달라고, 나의 마음을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열매 맺는 마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는 이유는 내 마음이 어떠한지 현 주소를 알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터 누구의 영향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 마귀의 영향을 받을 것인가, 성령님의 영향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1. 열매 맺는 마음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농부가 밭에 나가 씨를 뿌리는데 밭이 네 종류입니다. 첫째는 씨가 길 가에 떨어지매 사람에게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습니다. 둘째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라버렸습니다. 셋째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로 인해서 기운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은 옥토인데 백배의 결실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네 마음 밭이 생기게 된 이유도 설명해 주십니다. 길 가와 같은 마음 밭은 말씀을 듣지만 마귀가 말씀을 먹어버려서 말씀을 믿고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는 상태라고 설명하십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영적인 문제요 마귀의 문제입니다.

 둘째로 바위와 같은 마음 밭은 말씀을 듣지만 뿌리가 없어서 잠깐 믿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배반하는 자입니다. 심지가 약한 자일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믿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삶의 환경이 힘들어서 안 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환경의 문제입니다. 말씀이 자랄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의 환경에서 말씀이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의 환경에서는 말씀이 뿌리 내린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세 번째는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 밭인데 씨앗이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지만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합니다. 믿기는 믿어야 되겠는데 먹고 사는 문제, 돈 버는 문제, 세상에서 재미 보는 문제로 막혀서 믿음생활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토는 좋은 땅으로써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네 종류의 밭으로 분류하셨지만 크게 나누면 두 종류의 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는 밭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입니다. 길 가, 바위, 가시떨기 밭은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밭에서만 백배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씨앗이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려면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입니다. 적당한 온도가 될지라도 습도가 없으면 싹이 날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온도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본문 말씀의 문제는 습도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이 왜 문제가 됩니까? 아예 씨앗에 습도가 닿지를 못합니다. 즉 사단의 역사로 생명의 습기에 접촉하지 못합니다. 열매는커녕 발아도 못합니다. 돌짝밭은 어떻습니까? 바위위에 뿌린 씨앗은 습도가 있어 싹이 나지만 즉시 말라 버립니다. 습도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습도가 있어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가시가 습기를 빼앗아 자라지 못하게 하므로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밭은 습도를 유지하는 밭이기 때문에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결실하여 백배나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습기입니다. 길가라 할지라도 습도가 제공되면 일단은 싹이 납니다. 바위에도 습도만 유지되면 싹이 납니다. 수경재배가 그렇지 않습니까? 흙이 없지만 습도가 유지되니까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으려면 습도가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습도가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의 영혼이 부드럽습니다. 

 땅에 습기가 없으면 딱딱하게 굳어져 바위같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곳에 넘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온 몸이 다치고 아마 팔 다리가 부러지기도 할 것입니다. 땅에 습도가 없으면 굳은 땅이 되어서 상처를 주고 문제를 야기하고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는 밭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속에도 습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왜 열매가 없습니까? 우리의 마음에 습기가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유로 메말랐습니까? 사단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말랐습니다. 완악하고 거칠고 빡빡한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환란을 이기지 못하는 연약한 마음으로 인해서 강퍅해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염려, 재물에 대한 탐심, 환란으로 인해서 마음의 습기가 말라버렸습니다. 마치 사막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의 역사는 우리의 마음에서 이런 저런 방법으로 생명의 습기를 빼앗아 갑니다.

 창녕에 우포늪이 있습니다. 이 늪에 온갖 생물과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막에 가 보았더니 그곳은 정말 사람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늪과 사막의 차이는 습기가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습도가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마음속의 습기가 언제 말랐습니까?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라버렸을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습기가 말랐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은 상황이 많이 진행된 후입니다. 습기가 마르는 것은 순간에 마르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전혀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어느 순간 열매가 맺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자신의 메마름을 알게 됩니다. 마음속의 습기가 완전히 말라버렸을 때는 다시 회복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사하라 사막, 리비아, 이집트가 지금은 사막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비옥한 곡창지대였습니다. 그러한 땅들이 조금씩 말라 들어가더니 언제 말랐는지도 모르게 지금은 황무한 땅 사막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우리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태어날 때부터 사막화 되어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영향들 가운데서 마음속의 습기가 서서히 제거되어 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거친 황야처럼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 용서의 마음, 희생의 마음이 내 속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는 감동적인 영화를 보아도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습기 없는 마음은 굳은 마음입니다. 생명력을 상실한 마음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마음속에 습기가 제공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2. 습기가 있는 생명력 있는 마음
 마음은 지성, 감성, 생명,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 전인격에 습기가 촉촉하게 적셔져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습기가 되셔서 충만하게 우리의 심령을 적셔주실 때 굳은 마음이 제하여지고 부드러운 마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럴 때에 은혜를 받는 것이고 그 은혜를 따라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 열매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감성의 습기도 회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즈음에는 예수는 잘 믿는데 감성이 메말라버린 경우가 참 많습니다.  감성의 습기가 마르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도 감성 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이 곱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는 말이 조금 빡빡해도 오는 말이 부드러웠으면 좋겠습니다. 또 지성의 습기가 마르면 발전이 없습니다. 지성에 습기가 있다는 것은 지성이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성령의 습기
 성령의 습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습기와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님을 불같은 성령님, 바람 같은 성령님, 기름 같은 성령님 등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하지만 습기라는 상징이 매우 적절하다고 봅니다. 성령의 습기가 인간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면 씨앗이 자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곧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의 삶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 광주를 다녀오면서 어느 목사님이 자기의 간증을 했습니다. 본인은 예수님 영접하기 전에는 타락한 생활을 했었는데 주님께서 만나주셔서 새로운 인생이 되었고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성령의 인도하심 보다 자신의 경험을 내세우게 되면서 삶이 건조해지더랍니다. 삶이 건조해지니까 다툼이 일어나고, 별 일이 아닌데 상처를 받고, 사람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더랍니다. 조용히 생각해보니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표현하면 성령의 습기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서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성령의 습기가 메마르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저런 일을 만났을 때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님과 친밀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습기가 우리 삶에 촉촉하게 적셔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내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열매가 맺혀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2)감성의 습기
 감성의 습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모두 감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온유, 절제, 충성이 눈에 보입니까? 손으로 만져집니까? 여러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메말라 버렸다면 사랑의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는데 요즈음은 ‘게을러서 그런 거지 뭐. 요즈음은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인데 일을 안 해서 그렇지 뭐.’ 하고 긍휼한 마음이 자꾸만 사라져버립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아! 내 자신이 메말라있구나! 감성이 건조해져가고 있구나!’ 하고 느끼며 자신을 스스로 살펴보아야 됩니다. 

 찬송을 하는데도 감동이 없습니까? 그러면 회개해야 됩니다. 눈물로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눈물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것이 감성이 있는 것입니다. 감성이 있는 여자 분들은 갈등이 있으면 웁니다. 울 때는 그래도 괜찮은 것입니다. 아무리 아파도 울지 않으면 이것은 심각한 중병에 걸린 것입니다. 나올 눈물조차도 없이 감성이 메말라버린 것입니다. 감성이 말라버리면 이렇게 무섭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까? 속에서 부글거리는 것들이 있습니까? ‘나 건드리기만 해. 가만히 안 놔둘 거야.’ 감성이 메마른 것입니다. 이런 감성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도 주님이 보이지 않거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눈물이 없습니까? 감성에 습기가 메마른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없으며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얼굴만 새록새록 떠오르고 ‘한번 두고 보자.’ 이런 마음만 든다면 감성에 습기가 마른 것입니다. 불우한 이웃에 대한 긍휼이 없습니까? 불신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라졌습니까? 눈물의 회개로 습기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에게 눈물을 주세요.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나에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너그러운 마음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지성의 습기
 지성에 습기가 더해질 때 우리는 발전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마음의 열매는 지식에서 출발하여 감정으로 이어지고 의지로 행동할 때 열매가 맺어집니다. 그 시작은 지성입니다. 10년 전에 어느 책 한 페이지를 읽은 것을 가지고 지금도 그것만은 붙잡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성이 고갈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고갈되면 안 됩니다. 신앙은 배움입니다. 영적인 지식에 대한 배움입니다. 지금 은혜 받은 사람들의 면면들을 우리가 지성적으로 접근해야 됩니다. 무조건 ‘주여! 믿습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덮어놓고 믿으면 안 됩니다. 성경을 알고 제대로 믿어야 됩니다. 말씀이 그런가하여 묵상도하고 은혜 받은 사람의 경건서적도 읽어야 합니다. 성숙을 위해서는 지성의 습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밭이 영성으로, 감성으로, 지성으로 촉촉하게 적셔져서 여러분의 삶에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풍성한 열매가 맺혀지는 축복된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8:4~15
8장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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