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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적인 선택, 감사!
골로새서 3:15~17 유우열 목사 2010-11-14
의지적 선택, 감사!(골3:15-17)

 11월은 교회가 결산하는 달입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드린 감사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옆 사람에게 인사해 보시지요. “감사하는 사람 되십시오.” 우리는 감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복된교회 성도님들은 감사에 풍성한 성도님인 줄로 믿습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감사가 더욱 더 의미 깊고 심지 깊은 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증거를 들라면 이런 저런 업적을 내세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업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난날과 현재에 그리고 앞으로 되어 질 일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감사는 인생을 승리했느냐, 성공적이냐, 잘 살았느냐를 평가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한해를 돌아볼 때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겠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믿습니다.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하면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수만 년이 지나도 동물이 바뀌지 않는 것은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린 아이로 태어나고 자라면서 여전히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믿음이 자라가면서 성숙한 사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은 감사할 수 있기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 만나서 감사하는 수준의 감사가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차원 높은 감사가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수십억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감사하지 않을 사람 있습니까? 너무 감사하서 선교헌금도 드리고 감사헌금도 드릴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는 누구나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대학에 수석입학이나 수석졸업을 했다든지 뭔가 특출한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한 해 동안 사업이 잘 되었습니까? 한 해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이런 분들은 쉽게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자연발생적인 감사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가 아니라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할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그래서 그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의지적인 선택의 감사가 저와 여러분 속에 드려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좋은 일을 만난 것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감사할 내용들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의지적인 선택으로 감사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의지의 결과로서 감사
 감사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마땅히 감사해야 할 상황인 것 같은데 불평하고 원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감사는 의지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그들은 불평과 원망에 휩싸이게 된 것을 봅니다. 사실은 감사로 충만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일로 인해 불평과 원망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원수는 가슴에 새기고 은혜는 강물에 새긴다는 속담처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는 잊어버리고 현실의 작은 문제만 가지고 불평하는 모습입니다.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감사할 조건들을 찾아서 감사할 수 있는 감사가 우리의 삶에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감사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 불평과 원망을 할 것인지 아니면 감사를 할 것인지를 갈등하다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를 선택하고 말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할 때 이것이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거절하여 5년의 옥중 고생을 하고, 나환자를 위해 그 일생을 바치다가, 공산군에 의해 순교한 손양원 목사님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투옥되어 있는 중에 사랑하는 그 아내에게 감사를 권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사모님은 병으로 아주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병고 중에서 얼마나 신음합니까? 이 같은 더위에 고열도 심하니 설상가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기후와 환경을 초월하니, 안심하소서. 꽃피고 새우는 양춘가절에만 신애가 있는 것 아니고 백설 엄동 혹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합니다. 항상 기뻐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소서. 안심과 희락은 만병의 보약이오니, 모든 염려는 주께 맡기고 부디 병석을 떠나소서.
 1943(소하18)년 8월 18일 손양원
 
 목사님은 감옥에 갇혀 있고 사모님은 병중에 있지만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절망하고 낙심할 상황에서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노력하지 않아도 나오는 것이지만 감사와 찬양은 의지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한해를 돌아볼 때 원망할 수밖에 없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렇다할지라도 우리는 의도적으로 감사를 뿜어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물로 이것이 힘든 결정이지만 의지적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때에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행복으로 변화 될 줄로 믿습니다.

2. 행복을 위한 감사
 감사와 행복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감사와 행복 사이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감사하게 되면 행복감이 자꾸만 극대화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의식적으로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는 행복한 감정이 생겨나게 되고 더 나아가 환경을 이기고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왜 행복해 지는지 몇 가지 이유는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삶의 시야가 넓어집니다. 감사는 절망적으로 바라보던 환경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 문제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시려는 과정이구나.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가 있나보다.’하며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점에 집중하던 것을 해결점에 집중하게 합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은 고난을 통해서 옵니다. 고난당할 때 우리는 원망하기 쉽지만 ‘이 속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겠구나.’ 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옥중서신입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쓴 편지입니다. 감옥에 갇힌 자신을 보면서 ‘내가 복음 전했는데, 주의 일을 했는데 어떻게 감옥에 갇힐 수가 있어.’ 하며 원망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빌립보서 1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 가운데서도 감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시위대와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감옥에까지 와서 복음을 전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감옥에 잠시 넣어주셨으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갇힌 상태에 대해서 감사하니 삶의 시야가 넓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몸이 아프십니까? 감사하십시오. 문제를 만났습니까?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삶의 시야가 넓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불평과 원망하는 사람은 자신을 자학합니다. ‘나는 지지리도 복이 없어. 어째서 이 모양인가? 하는 일 마다 안 되고.’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말을 하게 되면 자신 안에 있는 놀라운 잠재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가집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세례문답을 하는데 어떤 학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믿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난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셋째, 내 생각과 말에 힘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감사하게 되면 내 생각과 말에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님이 올해로 82이십니다. 그런데 20년 전부터 무릎이 아프셔서 여러 곳을 다니며 치료를 받으셨지만 아직도 많이 아프십니다. 제가 안타까워서 주변에 있는 여러 병원에 가서 수술이 가능한지를 물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나이도 많으시고 힘듭니다. 차라리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무릎이 점점 더 아파지셔서 이제는 한 발자국도 디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이 서울에서 척추수술을 하셨는데 그곳에 가 보라고 추천을 해 주어서 그 병원을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수술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수술이 안 된다는 말만 들었는데 수술을 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수술을 하고 나니 이제 물리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아주 심하다고 합니다. 고통으로 참기 어려워하시는 어머니께 “어머니 감사하세요. 수술을 못하셨으면 어쩔 뻔 하셨어요? 수술 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지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프시다는 말을 안 하십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니까 감사할 이유가 많았습니다. 수술을 하게 된 것도 감사하지만 고통을 느끼는 것도 감사한일입니다. 회복되는 증거이지 않습니까? 감사하면 삶에 힘이 생기고 능력이 생기고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넷째, 과거를 보내고 미래를 소망하게 됩니다. 감사는 미래형 축복입니다. 지나간 일에 붙잡히면 낙심과 괴로움뿐이지만 감사할 때 과거는 지나가고 미래가 열려집니다. 감사라는 단어 자체가 미래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삶에 대해 더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고마운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 기지 않습니다. 감사하기 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던 것도 감사하면 놀라운 것으로 변화됩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겼지만 감사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족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 보셨나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감사는 당연한 것을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 없어. 매일 그 모양 그 타령이야.’ 이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감사하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 때문에 감사해 보셨나요? ‘대한민국에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으로 감사해 보셨나요? 아마 말로는 했어도 헌금으로 드려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G20정상회의를 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사회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기 때문에 누리는 이런 저런 혜택들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감사하게 생각하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누리기 힘든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한국에 태어났나. 미국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그러나 지금 보면 미국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만큼 좋은 나라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3. 의식적으로 감사하려면
 감사하게 되면 이처럼 기적이 나타나고 행복해 지는데 의식적으로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는 마음먹었으니까 이제부터 감사할거야.’ 이렇게 맘만 먹으면 저절로 감사가 됩니까? 아닙니다. 맘먹었어도 감사가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단 마귀가 우리 마음에 가시덤불과 온갖 쓰레기를 던져 놓기 때문에 감사보다는 불평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는 하고 싶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는 순교의 현장에서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실 때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평강이었습니다. 이 평강이 나의 마음에 들어오게 될 때 감사를 드릴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해주시니까 우리의 삶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이러한 것들이 나타나게 되니까 우리 속에 감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매를 맞아도 감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감사가 우리 속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거하면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 훈련할 때 이런 공부를 해 보았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을 이기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가운데 한 가지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면 고난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를 들면 욥이 고난을 당하지 않습니까? 욥이 고난당하는 그 내용의 말씀. 욥이 고난을 당하면서 그 입술로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했더니 나중에 갑절의 복을 받았더라는 말씀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고난을 만났을 때 이기기 쉽겠지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극한 어려움 중에서도 감사한 것을 알면 다윗처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편 35편에는 무고하게 다윗을 해하려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18절에는 대회 중에 감사한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이 어려움을 당할 때 감사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어려움 중에도 감사했더니 다윗의 삶이 감사한 것처럼 진정한 승리의 삶으로 바꿔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다윗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해야 되겠구나.’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안에 충만해지면 그 말씀에 힘을 얻어서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러한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환란을 만나도 ‘주님께서 이기셨으니 나도 이기겠다.’ 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어려운 일이 와도 ‘그래,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실 거야.’ 라는 믿음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절로 되는 감사에만 매여 있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의 수준을 넘어서서 이제는 의도적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깊은 감사의 비밀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골로새서 3:15~17
3장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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