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에 대한 설명(눅8:9-15)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8장 4절로 8절에서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9절로 15절에서는 그 비유를 풀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비유에 대한 설명으로 정하고 보니 요즘 성도들을 미혹하는 대표적인 이단 가운데 신천지가 생각납니다. 신천지에서 대표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비유풀이’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고,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비유풀이를 해야 주님 오실 것을 대비할 수 있고, 참 하나님과 예수님은 비유풀이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참 하나님은 이만희를 지칭합니다.
이단들은 정통 기독교보다 인터넷 매체를 더 적극 활용합니다. 인터넷에서 비유풀이라는 내용을 검색해보면 대부분 신천지에서 올려놓은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요즘 이단시비가 일고 있는 큰 믿음 교회도 인터넷을 기가 막히게 이용합니다. 일단 이들은 다음이나 네이버 등의 검색 사이트에서 그들의 글이 검색 첫 부분에 올라가도록 작업을 합니다. 이단은 단결력이 있기에 이를 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8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는 말씀처럼 각양 매체를 동원하여 미혹합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검색을 할 때에도 분별력 있게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26일에 다음에서 검색을 해보니 화면에 제일 먼저 올라와 있는 ‘까페글’ 란에는 4개의 카페가 신천지에서 만든 카페였고 블로그에서도 4개의 블로그가 신천지에 소속된 사람이었습니다. 웹문서 중에는 4개 중에 한 개만 이단관련 상담 카페였고 게시판에는 기독교 단체에서 올라온 글이 몇 개 되지만 신천지에서 만든 것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비유로 푼다며 나중에는 이만희씨가 한국에, 동방에 오신 재림예수님의 대언자라고 주장하고, 추수 꾼으로 다른 교회에 들어가서 거짓말을 해서라도 144,000명을 채우라고 공작을 하면서 교회를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천지 이만희 교주 숭배교입니다.
이들은 본문 10절에서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붙잡고 비유풀이를 해야만 성경을 알 수 있다면서 임의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답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또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에서 말씀하신 그 내용이 영적인 것이라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천국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천국은 마치……. 과 같다.”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교훈을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게 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Black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유란 독특한 표현 방식이지 암호가 아니며, 비유가 의미하는 바는 곧 비유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는 성경을 왜곡하게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 길 가
주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설명하신 내용을 보면 그 내용이 평범한 것이며 특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씨를 뿌렸습니다. 그 씨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데 몇 날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씨라는 표현은 상식적인 것이며 특별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너무 특별하게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해석할 것은 상식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성경에 사용된 낱말 하나하나를 모두 신비하게 혹은 영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어떤 내용은 역사적으로, 어떤 내용은 문자적으로, 어떤 내용은 은유적으로, 어떤 내용은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주님은 길 가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길 가는 어떤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길 가와 같은 사람은 말씀이 떨어졌는데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그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은 상태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긴 사람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안 됩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대로 살아야하겠다는 각오가 생기지 않습니다. 울리는 꽹과리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이 그런가하여 그 말씀을 마음에 상고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성도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말씀이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말씀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일단 말씀을 빼앗기게 되면 이유가 어떻든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나오다가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교회의 누군가가 교회에 대한 이런 저런 부정적인 말하는 것을 듣고 시험이 들어서 교회에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물론 부정적인 말을 한 사람도 문제이지만 가장 불행한 것은 그 성도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뿌리 내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가정이든 단체든 교회든 세상엔 문제없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그것이 누가 말한 부정적인 소식이었든 간에 그것으로 인해서 말씀이 마음에 뿌리 내리지 못한다면 마음이 길 가가 된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단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설교가 다 거짓말처럼 들리고 교회가 다 사기꾼집단 같아 보입니다. 우리는 말씀이 마음에 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마귀를 조심해야합니다. 늘 깨어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바위 위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설명하시는 마음의 상태는 13절 말씀을 보면 바위 위에 떨어진 씨와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위 위라는 것은 울산바위 같은 바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바위 위는 길 가보다 더 말씀이 뿌리 내리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위는 돌밭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지리적이고 환경적인 상황을 통해서 해석해야 됩니다. 마태, 마가복음에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위 위에 흙이 얇게 덮여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위 위에 얇게 덮인 흙 위에 씨앗이 떨어지면 즉시 싹이 나지만 수분과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서 이내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상태를 시험을 당할 때 배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즉 바위위에 떨어진 씨앗은 시험을 당할 때 이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에게 시험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죽는 날까지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어떤 시험이 와도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야 될 줄로 믿습니다.
통계를 보니 대한민국의 비기독교인 중에서 50%이상은 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교회에 출석했으나 지금은 출석하지 않거나 타종교를 믿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안티기독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교회를 떠나게 되었을까요? 이들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시험을 받아서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몇 번 교회에 나오다가 안 나오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 줄을 서있는데 어떤 권사님이 새치기하는 것을 보고 교회에 안 나오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권사님이 새치기하는 것을 보고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시험도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기 전에 교회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닫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말들을 전한 사람도 나쁘지만 듣는 귀도 복되지는 못합니다. 말 때문에 시험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이 복된 말, 좋은 말, 믿음이 성장하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말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의 말이 행복을 만든다>는 책의 내용인데요. 하버드대학 심장 내과에서 레빈 박사가 우심방에 가벼운 문제가 있는 환자가 있어서 학생들에게 TS환자(우심방환자)가 왔으니 들어가 보라고 했답니다. 대개 심장병은 좌심방에 많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청진기를 가지고 그 환자에 청진기를 대면서 “TS래 TS!” 라고 수근 거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여인은 심각한 상태로 병원에 왔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사연을 알아본즉 어제 학생들이 “TS래 TS” 라고 수근 거린 말을 듣고 이 여인은 TS(Terminate끝 Situation상태)로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이 여인의 심장은 회복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어느 노인이 레빈 박사에게 왔는데 제3심음이 크게 들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제3심음이 크게 들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제3심음을 들어보라고 불렀습니다. 학생들이 와서 청진기를 대고는 “아주 잘 들립니다. 뚜렷이 들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사는 이미 가족들에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한 상태인데, 그런데 노인이 죽지를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태가 호전되면서 1주일 만에 정상이 되어 퇴원했습니다. 알고 보니 노인은 병원에 왔을 때 학생들이 하는 “아주 잘 들립니다. 뚜렷이 들립니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 말을 회복가능하다는 말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노인의 심장이 에너지를 얻어 힘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듣느냐가 생명을 죽이기고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말도 잘해야 하고, 듣기도 잘해야 합니다.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은 이런 저런 말로 인해 시험이 들어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의 시험이든지, 이단의 시험이든지, 교회 내부의 시험이든지, 어떤 시험이든지 이기기를 축복합니다.
3. 가시떨기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말씀하시는 마음의 상태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마음입니다. 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발아도 하고 뿌리도 내리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가 없는 이유는 가시떨기에 영양분을 다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과도한 관심을 가진 나머지 영생의 말씀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복음을 깨달았지만 세상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영생천국신앙이 이름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형식을 갖출 것은 모두 갖추었지만 다만 열매가 없습니다. 주일성수도하고, 십일조도 드립니다. 적당하게 기도생활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포커스가 세상입니다. 이런 모습이 가시떨기입니다.
부자라고 다 가시떨기가 아니며, 가난하다고 다 좋은 땅은 아닙니다. 부요해도 천국신앙으로 사는 성도가 있고, 가난해도 세상중심으로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 경우는 물질이 부요했으나 그 마음은 옥토인줄로 믿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요 최고의 부자였지만 그 마음은 옥토였습니다. 요셉도 부요한 자가 되었지만 그 마음이 옥토였습니다.
4. 좋은 땅
마지막으로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좋은 마음으로 말씀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면 다 은혜가 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달란트비유가 나오지 않습니까? 다섯 달란트 받는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주인에 대해서 착한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나를 이렇게 귀하게 여겨주셔서 다섯 달란트를 주셨네. 두 달란트를 주셨네. 감사하시지. 열심히 일을 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한 달란트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러나 악하고 게으른 종은 ‘아니, 주인이 나를 어떻게 보기에 한 달란트 밖에 안 주었어.’라는 마음을 가졌기에 땅에 묻어 두고 일하지 않은 것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로서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추위와 더위와 온갖 병충해와 비바람을 이겨내고 마침내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온갖 시험과 유혹과 낙심과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욥처럼 환란을 이기시길 바랍니다. 요셉처럼 유혹을 이기시길 바랍니다. 다윗처럼 승리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길가나 바위 위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가나 바위 위는 이미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교회 안에서 믿음생활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가시덤불이나 좋은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좋은 땅인지 아니면 내 안에 가시덤불이 많이 있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가시덤불이라면 이것들을 다 뽑아내고 좋은 땅이 되어서 열매 맺을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8:9~15 8장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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