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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따라 진실하게
누가복음 8:16~18 유우열 목사 2010-12-12
진리를 따라 진실하게(눅8:16-18)

 어느 식당에서 중년 남녀가 식사를 하는데 너무 닭살 돋게 서로를 챙겨줍니다. 나이로 보아 갓 결혼한 사람들 같지는 않은데 너무 느끼할 정도로 애정표현을 하니까 옆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불륜 아냐!” 그러자 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기 좋은데 뭘. 우리가 비정상이지 저렇게 살아야 해! 소 닭 보듯 하며 사는 것보다는 불륜처럼 살아야 되는 거 아냐!”

 이단의 특징이 있다면 앞에서 비유로 말씀드린 것처럼 아주 친절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불륜처럼 친절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유일한 사랑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자기에게만 있는 진리와 생명이 있다는 식으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정상적인 교회는 이단들이 섬기는 것 같은 섬김이 없고 친절이 없을까요? 여러분은 오늘 교회에 오셔서 닭살 돋을 만큼 친절을 느끼셨습니까, 아니면 소 닭 보듯 하는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거의 대부분은 후자일 것입니다.

 불륜과 정상적인 부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정상적인 부부는 자기가 알아서 각자 먹습니다. 고기를 먹으면 좀 적게 먹으라고 오히려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불륜 부부는 서로 떠먹여줍니다. 등산할 때도 정상인 부부는 대개 남자가 먼저가고 여자가 뒤에서 같이 좀 가자고 잔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륜은 손을 꼭 잡고 언제나 같이 붙어서 다닌다고 합니다. 물건을 살 때도 불륜은 잔소리가 없답니다. 아무리 비싼 물건을 골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부부는 이러쿵저러쿵 잔소리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깨어지고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반면 정상적인 부부는 해로합니다.

 왜 이런 속된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본문말씀을 보니까 진짜와 가짜는 언젠가는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친절하고 닭살 돋치도록 잘해주어도 속에 숨긴 나쁜 의도는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안상홍 증인회가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하여 이탈하려는 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들어갈 때는 천사의 미소로 환영합니다. 온갖 친절을 베풀기에 웃으면서 들어가지만 그 안에서 비리를 발견하고 나가려고 할 때는 폭력배의 위협에 시달립니다. 울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집단이 이단입니다. 또 요즈음에는 신천지가 아주 말썽을 부리고 있습니다. 신천지가 천사의 친절과 섬김을 베풀지만 결과는 가족이 해체되고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지 않습니까? 

 본문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숨은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장은 드러나는 것이 없는 것 같아보여도 언젠가는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돌이나 가시덤불이 가득하게 있는 사람은 자신이 좋은 밭인 것처럼 아무리 위장을 해도 열매로서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서 우리 앞에 아무증거가 보이지 않는다할지라도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흔들림 없이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진리의 속성은 어떤 것일까요? 17절 말씀입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진리란, 따라해 보실까요.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드러난다.” 여러분이 믿음을 따라, 말씀을 따라, 진리를 따라 살아가면 당장 어려워도 마침내 승리로 드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비 진리는 지금 당장은 뭔가 되는 것 같고, 보이는 것 같고, 득세하는 것 같아도 반드시 문제가 되고 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부부와 불륜의 남녀를 볼 때 겉으로 보기에는 불륜의 남녀가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서로의 가정에 문제를 일으키며 깨어집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부부는 언뜻 보기에는 냉랭해 보일수도 있지만 풍성한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

 비 진리는 인기영합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륜의 달콤한 같은 매력적인 부분들을 제공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믿음에서 흔들리게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이 변함없습니다. 그러니까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서, 믿음을 따라서, 말씀을 따라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숨겨졌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고 관심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진리는 언제나 무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컨대 주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실 때에는 온 무리가 관심을 가지고 주님께로 몰려왔습니다. 백성들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시자 한 사람 한 사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비 진리 내지 사이비는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릅니다. 이들은 뭐든지 다 안다고 말합니다. 뭐든지 해결해 준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이단들은 주님 오실 날짜를 안다고 말합니다. 누가 구원받는지 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구원의 표도 준다고 하고 누구에게 기도만 받으면 막힌 문제가 다 풀어지고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이러니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러나 다 해결된다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반면 진리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저 믿음으로 기다리라고 합니다. 얼마나 답답합니까? 기도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하신바 대로 된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기도하여야 하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도 없고 복음을 위해 고난이라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다 형통하지는 않습니다. 형통이라는 것을 세상적으로 보면 잘되는 것을 말하는데 믿음으로 살아도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씀대로 살아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매력이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이번 달에 십일조를 백만 원 드리면 다음 달엔 이백만 원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수입이 배로 늘어나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달에 십일조를 이백만 원 드리면 다음 달에는 오백만원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일까요, 투기일까요? 투기입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과 사이비를 구분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렸어도 그 다음 달에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더 어려워져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마침내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에 근거해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이 시대에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도 투기하는 것처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표적주의, 기적주의, 신비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대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손만 얹으면 모든 병자들이 낫기를 원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제가 기도해서 모든 병자가 다 나으면 병원이 필요 없겠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았는데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넣기도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순종하지 않았는데 돈도 많이 벌고 세상에서 득세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혼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리를 따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은 예수를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믿는 것은 사실은 드러나지 않는 신앙입니다. 겸손하게 묵묵히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진리는 보이는 증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영화감독 우디 알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뚜렷한 표적을 보이시기만 한다면! 가령 스위스 은행에 내 이름으로 큰돈을 입금한다든지” 이와 같은 표적을 보여준다면 하나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로 흔히 내세우는 것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조건으로 자기가 원한 것을 해주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표적을 나타내 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표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표적도 보여주셨고 오병이어의 표적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표적주의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이 또 다른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0절로 31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향하여 마태복음 12장 3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표적주의는 그럴듯하나 비 진리입니다. 비 진리는 표적을 구합니다. 기도 후에 응답을 받았는데 손에 금가루가 보인다든지, 어젯밤에 꿈을 꾸니까 당신이 고통당하는 모습이 보여서 찾아왔다든지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꿈에 나타나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성도를 미혹하려고 하기에 문제입니다. 물론 누가 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꿈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꿈도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꿈을 꾸어야 하고 모든 일에 음성을 들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큰 문제가 되었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사모님이 자칭 영적으로 충만하고 목사님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 목사님은 밖에 나가려면 사모님에게 “여보, 오늘 어떻게 해야 돼?” 하고 묻는답니다. 그러면 사모님이 “예, 오늘은 동쪽으로 가세요.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은 만나지 마세요. 오늘은 몇 시까지 들어와야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사모님이 영적으로 인도한다며 말했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난리가 나고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으로도 보여주시고 말씀으로도 인도하시지만 모든 것을 표적주의나 신비주의처럼 이끌어 가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식을 통해서도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성경을 어떻게 기록했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 기계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인간은 기계적으로 받아 적기만 했다는 설입니다. 또 유기적 영감설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충만함과 지적인 충만함과 경험과 인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삶에 때로는 상식을 통해서 때로는 직접적인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책을 만들어 배포합니다. 저에게도 책이 왔습니다. 이들은 교주를 절대화시킵니다.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느 교주가 이쪽에 땅을 사려고 했는데, 꿈에 다른 쪽을 보여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자기는 원래 생각했던 쪽을 사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다른 쪽의 땅을 계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 땅이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는 목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성도는 이처럼 꿈에 보여주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경험을 절대화시켜서 다른 사람도 이처럼 꿈으로 계시를 받아야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항상 꿈으로 예언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좋아 보이는 것 같아도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있는 것입니다. 감정과 느낌과 꿈에만 의존하는 것입니다.

 교통법규를 모를 때 법문서를 찾아보는 것이 빠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알려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이 빠를까요? 법문서를 찾아보는 것이 빠릅니다. 물론 아무것도 없을 때는 기도해야 되겠지요. 무슨 말입니까? 이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믿음을 가져야하는지는 성경에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기에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때 하나님께서 갈 길을 다 준비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저들은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대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민족을 아예 없애버리고 모세 너로 말미암아 새로운 민족을 삼아야 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환상을 보고 한 발자국 가고 또 환상을 보고 한 발자국 가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시고, 역사하시고 음성도 들려주시지만 늘 보아야 되고 모든 것을 들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구분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2. 진실한 자의 축복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이는 진리를 따라 진실하게 믿음으로 나가는 자에게 주실 상급을 의미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이 가득하면 결국은 다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실하게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묵묵히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미국이나 한국 혹은 지구촌에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갑자기 부흥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훌륭하게 목회를 하기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말씀 중심이 아닌 표적주의, 기적주의, 신비주의에 사로잡힌 경우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면 모두들 떠날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병든 자를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실 때는 사람들이 인산인해가 되도록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병을 고치는 기적을 줄이시면서 서서히 생명의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십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죽기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요한복음 6장 60절 말씀을 보면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하면서 수군거립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 66절에 보면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6장 67절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6장 68절로 69절에서 대답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수많은 무리들은 예수님 때문에 내가 얼마나 유익할까, 내가 얼마나 잘 될까, 얼마나 내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에 맞추어 열광적으로 주를 따랐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모두다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제자들은 끝까지 주님을 따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세지말 혼란한 세대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까? 이단들은 불륜보다도 더 달콤한 친절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넘어갑니다. 다윗처럼, 요셉처럼, 욥처럼 믿음으로 나아가나 어려움이 있고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육간의 축복을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욥이 “하나님! 앞을 보아도 아니 계시고 뒤를 보아도 아니 계시고 옆을 둘러보아도 아니 계십니다. 그래도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장 내일 일을 알려주시기도 하시지만 어떤 경우는 암흑같이 아무것도 알려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 말씀을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상황과 현상과 표적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진리를 따라, 말씀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8:16~18
8장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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