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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보다 강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8:26~39 유우열 목사 2011-01-23
귀신보다 강하신 예수님(눅8:26-39)

 지난 주일에는 바람과 물결을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의 핵심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바람과 물결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줄로 믿습니다. 바람과 물결이라는 자연현상이 제 아무리 강하고 인간의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연현상까지도 굴복시키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에 나오는 군대귀신보다 강하고 크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귀신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어떤 대적이라도 예수그리스도 앞에는 다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을 내 안에 모시고 그분과 더불어서 살아가게 되면 이 세상에 아무리 악한 사단이 역사한다할지라도 우리는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은 귀신, 사단, 마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현실적이지 않고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가 귀신, 사단, 마귀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단과 마귀 그리고 귀신의 역사 앞에서 인간은 정말로 어떻게 대처할 능력도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장악하고 있는 세상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의 싸울 것은 혈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 악한 사단 마귀를 가리켜서 우리를 주관하고 있는 이 세상의 주관자, 악의 영들, 공중 권세 잡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주장하고 장악하고 있는 악한 사단 마귀 가운데 알게 모르게 사로 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그 누구도 스스로 악한 마귀에게서 빠져나와 승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결박하시고 사단 마귀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누가 사단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까? 예수이름으로만 이길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누가 귀신에 사로잡혀 고통 받는 자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로만 해방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땅에 가셨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거라사 마을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가다라 지방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 하나가 이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놀라운 반응을 나타냅니다.

 성도에게는 귀신들렸다는 것과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해 건강한 판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혹자는 정신적으로 조금의 문제가 있는 것을 모두 귀신들린 것이라고 단정하거나, 또는 귀신에 들려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영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지혜로운 판단을 위해 건강한 교회 목회자와 상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 부분에 있어서 성도들 가운데 극단적인 판단을 하는 성도들이 있다 보니까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오래 동안 옷을 입지 않고 집에도 있지 않고 무덤 사이에 사는 더럽고 추한 귀신에 들린 자입니다. 이 사람을 제어해 보려고 쇠사슬로 묶었지만 그것을 다 풀어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소리를 지릅니다. “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괴롭게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시니 귀신이 나왔는데 귀신에게 이름을 물으니 군대라고 합니다. 즉 많은 귀신이 들어가 군대가 된 군대귀신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하늘 끝에 있는 뜬구름 같은 말로 들립니까? 이러한 사실들이 믿음으로, 영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군대귀신은 자기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않기를 구하면서 마침 돼지 떼가 있는 것을 보고 돼지 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합니다. 돼지 떼가 삼천 마리쯤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군대귀신이 돼지 떼에 들어갔고 돼지 떼가 호수로 내달려 몰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대귀신 들린 자가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던 돼지를 치는 목자들이 놀라 도망하여 성내에 가서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므로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을 심히 두려워하며 떠나기를 요청하게 됩니다. 귀신에서 나은 것에 대해 기뻐하기보다는 삼천 마리의 돼지가 죽었다는 경제적인 손실 때문에 예수님께 떠나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려 하는 사단 마귀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면 예수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마귀에 대해서만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마귀에 두려워 떱니다. 꿈만 꾸어도 두려워합니다.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미리 겁에 질립니다. 마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우리로 승리하게 하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라사지방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다면 예수님께 떠나가시기를 요청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돈을 주고도 해결할 수 없는 귀신들린 사람을 주께서 해결해 주셨으니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모르니까 떠나가시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1. 예수님과 귀신에 대한 지식
 이 말씀을 묵상하는 데 지난 주간에 큐티했던 출애굽기 6장 26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물질로 시달리고, 질병으로 시달리고, 이런 저런 것으로 시달려도 우리는 마귀의 노예가 아닙니다. 질병의 노예가 아닙니다. 실패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는 군대라고 말씀하심에도 스스로 노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망한다.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는 안 된다. 우리는 힘들다. 우리는 저주받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군대로, 천국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데 그들은 우리는 저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않나봐. 나는 버림 받은 것 같아. 나는 실패하는 인생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난다고해서 실패한 인생입니까? 물질의 손해를 보았다고 해서 저주받은 인생입니까? 질병에 걸렸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인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되는 구원, 예수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영원한 축복을 알지 못하면 오히려 귀신 때문에,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운 일들 때문에 약해지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담대하게 세상을 승리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것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알아서, 그 분의 능력을 알아서, 그분의 자녀 된 자가 어떤 축복과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을 알아서 모든 것에서 승리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귀신론에 대해서 이리저리 많이 들어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있습니다. 귀신의 힘과 능력을 너무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바로의 권세에 무기력해진 것처럼 성도들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단 마귀의 역사에 굴복당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이상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승리를 확신하기 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오늘은 손 있는 날이네 없는 날이네 하며 따집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자유 했는데 더 이상 무엇을 따집니까? 예로부터 내려오는 미신에 젖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단마귀가 스스로 예수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굴복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는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어떤 분을 보았습니다. 그 교단은 자나 깨나 귀신, 항상 귀신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은 의자 위에도, 책상 위에도, 앞에도, 뒤에도, 온 사방 천지에 귀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귀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 사로잡혀 삽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모르고 귀신만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귀신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방심할 대상도 아니지만  결코 우리의 생명을 빼앗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로 29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환란과 시험을 당한다할지라도 걱정하지 않을 것은 아버지 손에 붙잡혀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손에 잡혀 있는 우리를 원수 마귀가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영원토록 보증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우리 인생들을 사로잡고 우리를 저주와 영원한 형벌로 영원한 지옥으로 몰아가려는 악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일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예수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하고, 예수그리스도만 붙잡고, 예수그리스도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우리에게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2. 군대 귀신이 떠난 후의 반응
 예수님은 군대귀신처럼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귀신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이십니다. 군대귀신 들린 자가 고침을 받은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군대귀신이 떠나고 치료된 후의 지역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이 군대귀신 들린 자는 거라사 지방의 모든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처치곤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깨끗하게 귀신에게서 해방된 모습을 보면서 지역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째는 크게 두려워하였으며, 둘째는 예수께서 그 지역에서 떠나가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나면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여러분! 거룩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껴보셨나요?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경험하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면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반응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람과 물결이 잔잔하게 된 것을 경험하면서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결을 명하매 순종하는가?”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깜짝 놀란 것입니다.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또 베드로가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을 때 두려워하여 스스로 주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반응한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내가 입술이 부정한 자 가운데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음에”라며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처럼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죄를 짓는지 짓지 않는지를 누가 간섭하고 누가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 거룩한 두려움이 오면 그 거룩한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몰아낼 줄로 믿습니다.

지금 거라사 사람들도 귀신들린 자가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이러한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예수님을 만나면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에 힘써야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두 가지 방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경험으로 알 수 있고 배워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다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에 나오는 것을 다 경험한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너무나 힘든 인생이 될 것입니다. 웬만하면 성경에 나오는 일들을 경험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죽다가 살고 싶으십니까? 귀신들렸다가 고침 받고 싶습니까?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이 있고 싶으십니까? 쫄딱 망했다가 다시 일어나고 싶으십니까? 이런 경험을 다 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경험만 가지고는 예수그리스도를 알 수 없습니다. 배워서 알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바로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교회에 처음 나와서 처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엇을 배웁니까? 예수는 누구이신가에 대해 배웁니다. 예수님은 어떤 신분이신가? 무슨 일을 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 예수를 믿는 나에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예수님에 대해서 배웁니다. 신학적으로 기독론이라고 말합니다.

 귀신론에 대해서도 배워야 됩니다. 귀신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우리를 어떻게 대적하는가? 귀신의 최후 결말은 무엇인가? 영원한 지옥. 이러한 것들을 알고 나면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줄로 믿습니다. 잘못 가르쳐주는 곳에 가면 자꾸만 두려움을 증폭시킵니다. 그러기에 성경공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해서 예수님을 알아야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도 공부하라는 말만 하면 알레르기반응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힘이 되고 지식이 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마귀를 알아야 마귀의 힘에서부터 승리할 수 있고 예수님을 알고 죄를 알아야 죄에서부터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알아가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호세아 4장 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싫어하는 일을 골라서 하고 좋아하시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을 버리면 법이 나를 버린다고 말합니다. 법을 모르고 무턱대고 행하는 것이 용감한 것이 아닙니다. 법을 내가 버리면 법이 나를 버리듯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는 것입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나는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성경을 배우냐고 말합니다. 성경은 학문적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만 해도 배우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주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배워가는 일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로 알아서 ‘주님이 이렇게 위대하시구나. 이렇게 놀라우시구나. 나를 위해 이렇게 큰일을 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이것 때문에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군대귀신이 떠나자 일어난 두 번째 반응은 두려워하여 여기를 떠나달라는 요청입니다. 이들이 왜 예수님께 떠나가시기를 요청했을까요? 이들은 예수님께서 군대귀신을 쫓음으로 돼지 삼천 마리가 몰사하는 경제적인 손실을 보았기에 이런 것이 두려워 주님을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한 사람이 구원받은 일에는 관심이 없고 돼지 삼천 마리가 죽은 물질적인 손해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처음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예수 믿으면 어려운 일이 닥친다던데 그래서 저는 예수 못 믿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안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는데 수술하는 것이 아파서 암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항암제를 맞고 고생을 해도 이것을 이길 수만 있다면  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생명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예수 믿고 당장 조금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것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천하보다 소중한 영혼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와 저주와 원수 마귀에게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세상에서 만나는 온갖 악한 시험과 역사에서 승리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힘으로 바람과 물결을 이길 수 없고 악한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통해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 만나시고 그 분의 힘을 의지하여서 온전히 승리하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8:26~39
8장
26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27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32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34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35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36 귀신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받은 것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이르매
37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38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내시며 가라사대
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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