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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를 향한 주님의 교훈
누가복음 9:1~6 유우열 목사 2011-02-13
전도자를 향한 주님의 교훈(눅9:1-6)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한 동안 훈련하신 후에 전도자로 파송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전도를 시키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한 마디로 말하면 전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전도의 방법으로 여기까지 부흥하고 선교해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도는 미련한 방법처럼 보입니다. 고린도전도 1장 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도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련하게 보이지만 전도의 방법을 통해서 한 개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한 나라가 복음화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교회에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의 인도였든지 친구의 전도였든지 누구의 전도였든지 전도를 통해서 우리가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도 전도가 되어서 열두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와 불교와 미신이 아주 강한 나라였지 않습니까? 그런 이 나라에도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제일 먼저 시작된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나라 초기에는 권서인이라는 전도방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권서인은 책을 판매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파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두꺼운 성경이 아니고 성경을 나누어서 쪽 성경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신 것처럼 파송을 받아 성경을 파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가지고 어디든지 가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전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권서인들의 활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성경은 전국 어디에나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성경이나 찬송가를 ‘복음궤짝’이라는 상자에 넣어 짊어지고 다니면서 학교, 서당, 공동작업장, 잔치 집, 장터를 찾아다니며 팔았답니다. 심지어는 필요할 경우 물물교환형식으로도 판매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도로 인해 당시 부유층보다 복음에 더 목말라 있던 가난한 민중들 가운데 복음이 널리 전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은 전파되었고 오늘의 한국교회가 된 것입니다.
 복음전파의 대 전제는 이렇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로 15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누군가가 가서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예수를 믿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어야 알게 되고, 알아야 믿게 되고, 믿어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게 되고 구원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전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있어서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를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신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보내시면서 크게 두 가지 교훈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자세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입니다. 여러분도 이 교훈을 받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시고 복음을 전할 때 이런 태도를 가져야 되겠다는 결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1. 절대 믿음을 가지고 가라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자의 자세는 이것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절대 믿음을 가지고 가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냥 나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1절에 보면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제자들에게 이런 능력과 권위를 주어서 보내신 것입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에게 문제는 귀신과 질병의 문제였습니다. 귀신 문제는 영적인 문제요, 질병의 문제는 육체의 문제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주님 당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 문제는 이 세상 끝날 까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권위를 주셔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는 것은 제자들을 초능력자로 만드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주신 복음의 능력을 말합니다. 복음의 능력이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복음 자체가 능력입니다. 말씀이 능력입니다. 이 복음은 악한 사단 마귀 귀신에게 사로잡한 자를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을 영접하는 자는 악한 귀신과 악한 영에서 해방되고 참 자유를 얻게 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사람들의 마음은 사단마귀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가리켜 마귀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귀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신 것도 만병통치의 권위를 주신 것이라기보다는 병의 근본인 죄와 인간의 연약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복음의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질병에서 완전히 해방 받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병들어 죽습니다. 이것을 온전하게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것을 온전하게 해결합니다.

 따라서 복음을 가진 자는 능력과 권위를 가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내 능력이 아니지만 복음의 능력과 권위를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의 질병은 아무리 많은 의사도, 좋은 병원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잠깐 병세를 완화시키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질병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해결할 의사도, 병원도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자들도 병으로 죽었으며, 기사는 없지만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았으나 그도 병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복음은 죽음을 이기는 영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 줄로 믿습니다. 영생을 얻어 육체의 질병과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육체의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런 저런 병으로 아프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있는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죽음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면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는 실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넓은 의미로 생각해 본다면 바로 내 능력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 말씀의 능력을 주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능력은 나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무엇을 한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에는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면한 육체의 질병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생명을 파멸에서 건지시고 새롭게 하시는 것이 진정한 치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든 귀신과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셔서 제자들을 보내셨다는 것은 제자들을 하나님과 같은 초능력자로 만드셔서 보내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므로 복음의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갑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는 죄와 저주 그리고 악한 사단 마귀에게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능력입니까?

 나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느냐? 나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느냐에 대해서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에겐 아무 능력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 말씀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갈 뿐인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절대 믿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목회자로서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과연 나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과 병을 고치는 권위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모태서부터 그토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고 결코 예수님을 떠나 다른 길을 가본 적이 없다고 자랑할 수 있지만 저에겐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병을 고칠 능력이 없습니다. 귀신을 쫓아 낼 능력이 없습니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의 능력은 소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되고,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내게 있는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는 복음의 능력으로 사역한 것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은 목사의 전매특허도 아닙니다. 누구나 사용하면 능력인 것입니다. ‘나는 능력이 있다, 없다’ 이런 말을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다만 복음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써보라는 것입니다. 칼은 있지만 칼집에서 빼서 써보지 못하고 칼이 잘 들까 어떨까 늘 마음에 생각만 하고 있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모두에게 복음의 능력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믿고 나가서 복음전하면 귀신도 나갈 것이며 질병의 문제도 치유될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도 치유해 주시지만 영원한 영생을 주셔서 더 이상 죽음이 죽음이 되지 않는, 더 이상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은 능력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전파하러 가는 제자들에게 절대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구체적인 지침 사항을 말씀하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옷이 두벌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복음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먹고 입고 마시는 모든 것을 주님께서 책임져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절대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귀신의 권세를 쫓아내시고, 질병을 치유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게 어떤 능력이 있느냐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기만 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미국에서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올 때 가서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살까?’를 고민했으면 어떻게 이곳까지 올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선교사님은 선교 후원비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갔다고 합니다. 선배선교사님들이 그렇게 미련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역사하시고 채워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초창기에 권서인들이 복음을 전할 때, 어떤 마을에 가면 더럽고 재수 없는 사람이 왔다고 소금을 뿌립니다. 온 동네가 반대를 합니다. 이집을 가도, 저 집을 가도 핍박과 조롱밖에 없습니다. 하루 종일 밥 한 끼 먹지도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 가려면 또 같은 일을 당할까봐 걱정이 되지만 그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쁨 때문에 그들이 전도인의 삶을 놓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롱을 당하면서 어렵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잠자지 못한 때가 없었고,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여주시고 입혀주시더라는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하는 자의 태도
 또 복음을 전하는 자는 유연한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절대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여 나가지만 복음을 받는 사람들의 태도는 한결같지는 않다고 하십니다.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사람도 있지만 듣지도 않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 것에 거절하고 더 나아가서 나를 핍박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유연한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어제 인터넷을 달군 뉴스가 한 가지 있습니다. 서울 조계사 사찰에 목사와 장로, 선교사라는 이들이 전도를 한다며 소란을 피우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80-90대 노인 4명은 메가폰을 들고 대웅전 앞에서 “부처가 밥 먹여 주냐? 하나님이 밥 먹여주는 것이다. 알고나 먹어라.”라며 난동을 부렸다고 합니다. 이어 “공산주의 북한에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 안 믿으면 공산당, 나쁜 놈이다.”라고 했답니다. 이들은 조계사 관계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목회자로서 마음이 답답해지는 뉴스였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 교회에 누가 와서 메가폰을 잡고 “하나님이 밥 먹여 주냐? 부처가 밥 먹여준다.”라고 말했다면 상당히 불쾌했을 것입니다. 말은 맞는 말입니다. 부처가 밥 먹여 줍니까? 하나님이 밥 먹여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연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다 믿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전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 5절에 보면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저주해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누가 밥을 먹여주는지 알고나 먹어라.’라고 하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겠습니까? 혹자는 ‘성령이 역사하시면 믿겠지요.’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방법이어야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5절 말씀에서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성지 의식이 있어서 타 지역 즉 이방인의 땅을 방문하였을 시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옷에 먼지를 터는 관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런 습관을 아시고 하신 말씀으로서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이나 마을에서 먼지를 털라는 것은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받지 않는 자는 이방인과 같다는 의미가 됩니다. 또한 먼지를 터는 것은 믿지 않는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책임이 당사자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받지 않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자는 유연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어도 듣지도 않고 오히려 죽이려는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듣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가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저주를 한다든지 폭언을 하는 것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닙니다. 전도하다가 전도를 안 받는다고 해서 “그러면 지옥이나 가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그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혼미하게 해서 들어도 듣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듣기는 들어도 복음 안에 있는 영광의 광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영접할 때, 예수님을 영접할 때 내가 어떤 영광과 축복을 얻게 되는가를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느 집에 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혹 어느 집을 방문했는데 복음을 받고 집에 머물기를 허락했다면 그 집이 아무리 누추하고 머물기에 불편하다 할지라도 그 집에 머물라는 교훈입니다. 즉 만족스럽지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더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복음을 듣느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자기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복음의 전파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3월 16일부터 4월 24일까지 목장전도페스티발을 하고자 합니다. 목장에서 목원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복음의 능력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능력이 없는데요. 저는 말 주변이 없는데요.’라고 말하지 말고 복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에 이르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능력을 의지하고 나아가서 그들이 믿는지 아니 믿든지, 조롱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복음전할 수 있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자들이 열매 맺어 주님께 기쁨으로 돌아온 것처럼 목장마다 전도의 열매가 맺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개인의 삶속에서 전도의 열매가 맺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9:1~6
9장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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