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구라 하느냐?(눅9:18-22)
지난 금요일자 국민일보 1면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대통령 내외분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금년도 제 43회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인도자의 진행에 따라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 중 참석자 모두가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고 단상에 계셨던 대통령 내외분께서도 단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면서 감격하여 가슴이 뛰었습니다. 정말로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국가의 대표가 되는 분이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해서 여러 종교 중 하나인 기독교의 행사에 참석해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체통이 서지 않는 것이고 또한 종교 편향적인 태도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 사찰에 와서 예식에 따라 삼배의 참배를 하겠느냐며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보는 관점은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정말로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이래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 준 아름다운 행동이었습니다. 대개 사람의 표를 의식해서 자기의 믿음을 분명하게 하지 않습니다. 불교인도 아니고 천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도 아닌 경계선 상에서 애매한 행동을 하는 것이 대부분의 정치인들이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신앙에서는 선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면 이와 같은 믿음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자기를 고소하려는 예루살렘 공회 앞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5장29절로 31절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성도 모두는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인임을 고백할 수 있는 확실한 믿음으로 세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 분은 분명히 예수 믿는 군수인데 아니면 예수 믿는 시장인데 고사지내는 곳에 가서 절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분명히 예수 믿는 집사님인데 제사상 앞에서 절하고 있습니다.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알았기에, 어떻게 믿기에 이렇게 이중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해서 실수도 할 수 있고, 욕도 할 수 있고 때로는 윤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것과 다른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사실이 엄청난 교훈이 되고 도전이 될 줄로 믿습니다. 행여나 지금까지 믿음에 대한 색깔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믿음의 색깔을 분명하게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1.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만년설이 있는 헬몬산 근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곳은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인해 사시사철 물이 풍성한 곳이며 목축이 잘 이루어지는 비옥한 땅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우상의 제단이 많은 곳으로서 토착민들은 산림과 야수의 신 ‘판’을 섬기고, 로마인들은 황제 아구스도를 숭배하기 위해 황제 신전을 건립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보니 이곳을 텔단이라고 하는데 곳곳마다 우상을 섬겼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이 질문은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오고 있지만 과연 예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나 따라다니는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따라오는지 아니면 떡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오는지 이미 알고 계셨지만 교훈을 위해 질문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떤 성도가 등록하여 새 가족 반을 하다가 교회를 나오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심방해서 물어보니 교회에 나오면서 아이가 감기가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왔는데 특별히 잘되는 것이 없는 것을 보니 교회가 우리하고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안 나가려고 한다고 하더랍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분이 조금만 인내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정확하게 알았더라면 이러한 일을 다 극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면 이 성도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그런 분들을 위해서 더 많은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물론 그 성도가 교회에 안 나오기로 했다고 해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기도하고 중보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사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따라다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것입니다. ‘무슨 병을 고쳤다더라.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더라.’는 소문이 있었기에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어느 한순간에 돌아서서 주님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무리들을 보시면서 주님은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고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제자들의 대답을 들어보면 무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편향적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예수님을 특별한 선지자 정도로는 보았지만 예수님의 메시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큰 기둥 같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소경은 코끼리 귀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넓은 부채 같다고 말합니다. 또 배를 만진 소경은 코끼리는 바위덩어리 같다고 말합니다. 모두 다 맞는 말이지만 코끼리를 바르게 이해 한 것은 아닙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고 했는데, 세례요한은 경건주의자의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광야에서 한 벌 옷에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헤롯의 죄를 지적하고 백성의 죄를 지적하여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었던 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도덕 윤리주의자로 이해한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은 착하게 살고 좋은 사람 되기 위해서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예수님에게 이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예수님에 대해 전부를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기적의 능력을 행한 선지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여러 기적을 행하시니까 엘리야 같은 능력의 선지자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본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안 것이지 온전히 안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분이기 이전에 죄를 사하시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저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서 부활하신 유일하신 구원자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빼놓고 겉모습만 알았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대통령을 알지만 문자적으로 만 아는 것입니다. 대통령에게 어떤 권한이 있으며, 어떤 책임이 있으며, 그 자리가 어떤 자리라는 것을 초등학교 아이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런 모습과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에 보면 예레미야라고도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애국선지자입니다. 지금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줄 민족운동가 정도로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그 민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무리들의 대답을 들으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어떤 분에게 예수그리스도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예수는 성이고 그리스도는 이름이라고 했답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이라고 하듯이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분이요, 신분이요,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 받았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이해 할 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음 받은 자를 통해서 우리들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용서해 주시고, 사단 마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메시아가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메시아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만점짜리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의미를 바로 알고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라는 찬양처럼 의미를 바로 알고 베드로처럼 고백할 때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고 다른 이름 앞에 무릎 꿇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만 경배하는 믿음의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하므로 예수님의 정확한 신분이 밝혀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로 1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제자이기에 당연한 대답이기는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약에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습니다. 유일하신 구원자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처럼 바른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믿고 섬기면 칭찬을 받고 상급과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제 아내의 친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생인데 오래 동안 소식이 없던 어느 날 시댁과의 갈등과 우울증으로 인해 못살겠다며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너 예수 믿어야 돼! 하나님 만나야 문제 해결 받아.”라고 말했더니 성질을 확 부리면서 “나에게 그런 소리 절대로 하지 마.” 하고는 가버렸답니다. 그 때는 불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친구가 지금은 수원중앙침례교회 권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그 날 예수 믿어야 된다는 소리를 듣고 화를 냈지만 돌아가서 계속 그 말이 생각이 났고 문제로 답답한 가운데 마침내 교회로 찾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기도대장, 전도대장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봉사하고, 물질의 헌신에도 앞장서는데 특히 선교에 헌신적으로 참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과 김장환 목사님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는지 모른답니다.
그녀의 남편도 9급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했는데 예수님도 모르던 사람이 예수 믿고 3급 공무원으로 계속 승진을 했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경기도청에서 용인시로 전출이 되었답니다. 모두들 좌천되었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몇 주 전에는 용인시 기흥구청장이 되었답니다. 인구가 40만이 넘지 않으면 시장이 구청장을 임명할 수 있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기흥구 인구가 40만이 넘지 않아서 임명으로 구청장이 된 것입니다. 예수 믿지도 않는 시장이 그 권사님 남편을 선거도 치루지 않고 구청장으로 임명했답니다. 그 권사님은 남편이 돈도 들이지 않고 구청장이 되었다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로 바로 만나니까 가정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깨어질 것 같은 가정이었는데 예수님 바로 만나니까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아 영적인 축복을 누리고, 더나가 삶의 문제를 해결 받고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면 인생의 해답이 보입니다. 마치 지도를 보고 여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한 번 사는 인생을 헤매지 않고 바른 길을 가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에 대해서 단면적인 것을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수님이 사업 잘되게 하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몸의 건강을 치유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혹은 윤리 도덕을 함양시키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찬송가 96장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구체적인 소개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약한 자의 강함, 눈먼 자의 빛, 병든 자의 고침, 죽은 자의 부활, 우리 생명 되십니다. 또 추한 자의 정함, 죽을 자의 생명, 죄인들의 중보, 멸망자의 구원, 우리 평화가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온 교회의 머리, 만국인의 구주, 모든 왕의 왕, 심판하실 주님, 우리 영광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찬송의 가사 대로 고백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지식으로 예수님을 알고 경험으로 예수님을 알아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9:18~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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