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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갑시다
빌립보서 3:10~11 유우열 목사 2011-04-24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갑시다(빌3:10-11)

 오늘은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능력의 날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의 뿌리는 부활인줄로 믿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가 아니라 대단한 것입니다. 사업이 조금 잘 되는 수준, 밥 세끼를 편안하게 먹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천년 전에 있었던 그 부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부활되는 것을 믿는 믿음 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부활된다는 것을 믿는다는 믿음이 대단한 믿음인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승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내에게 부활의 믿음이 있는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믿음을 확증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하셨을까? 우리도 부활된다는데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까? 이렇게 의문부호가 생기면 곤란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나도 부활할 것이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어떤 문제가 있어도 승리하게 된다.’ 이렇게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의문부호를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다고는 하는데 정말 그럴까? 죽어봐야 알겠지.’ 죽으면 누구다 다 압니다. 살아서 믿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초기기독교의 복음전파의 주제는 ‘그는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요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을 믿는 성도들이요 그리스도와 하나 된 성도들 인줄로 믿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현실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믿음의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승리하기보다 넘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힘들고 복잡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좋지 못한 습관조차도 제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우울함 감정을 이기지 못합니다. 자존감의 결여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언어습관, 게임 중독과 같은 것조차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에겐 이겨야 하고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해도 변화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무기력해집니다. 오죽했으면 국회에서 청소년의 오락을 제한해보려고 밤 시간에 자동으로 게임이 다운되도록 하는 셧 다운제 법안을 여야합의하에 만들었겠습니까? 인간은 게임중독조차 이길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어떤 부모가 12시 넘도록 게임을 하는 아들을 보고 화가 나서 무조건 전원을 꺼버렸답니다. 그러자 아들이 주먹을 들이대더랍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에 몰두하다보니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는 여러 학문과 방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얼마 전 코칭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NLP(신경언어프로그래밍) 코칭인데요. 내재적인 능력을 개발하여 변화와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심리상담기법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고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거인을 깨우기만 하면 누구든지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와 개발, 성공과 성취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변화시키지 못할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대단해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학문은 자기를 변화시키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제안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쁜 습관을 제거하십시오. 긍정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좋은 관계를 만드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십시오. 자신감을 가지세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능력은 제공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나를 변화시킬 능력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그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이 능력을 주십니다. 본문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활의 능력을 힘입기만 하면 세상에서 만나는 환란, 시험, 유혹, 문제들을 다 이기고 마침내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도바울이 시험이 없었던 사람인가요? 문제가 없었던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운 시험을 끊임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이기는 승리의 인생이 된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신에서 승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단마귀에서 승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능력은 우리로 어떤 승리를 얻게 하십니까?

1. 과거를 해결하는 능력
 우리들의 지나온 삶은 실패, 실수, 잘못 그리고 후회로 얼룩져 있습니다. 마치 구겨진 도화지 같습니다. 구겨진 도화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것을 둘둘 말아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도화지라면 던져버리고 새 도화지를 쓰면 되겠지만 구겨진 인생은 그럴 수도 없습니다. 심리학은 ‘나는 구겨지지 않았다! 나의 과거는 그저 지나간 일일 뿐이다! 나는 나 일 뿐이야!’라고 외치라고 조언할 것입니다. 자기 최면을 걸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보아도 구겨진 인생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에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지난 날 실수하고 죄 짓고 상처받고 힘들었던 일들, 즉 주님에게서 떠나가게 했던 모든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 십자가에 못박아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그 곳에 내가 실수한 것들, 범죄 한 것들, 지난날의 허물들이 못 박힌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지난날은 다 없어진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더 이상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기를 바랍니다. 물론 죄의식은 있어야 됩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볼 때 여기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아무리 깨끗하다고 외쳐도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문제없다고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부활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입어야만 과거로부터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과거는 용서받아야 없어진다.” 과거에서의 승리는 용서로부터 시작됩니다. 용서 받으면 과거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죄든, 어떤 실수든, 문제든 용서 받으면 해결됩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내가 죄를 지은 사람이 죽었다면 누구에게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혹 누가 용서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죄 없으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를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 실수와 잘못으로부터 해방시키십니다. 더나가 죄책감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주십니다. 그렇다면 용서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로마서 8장 1절에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헬라어로 “테 텔레스타이”라는 말입니다. ‘완불’이라는 뜻입니다. 내야 할 돈을 내고 ‘완불’ 스탬프를 찍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의 지난날의 죄와 허물을 완전하게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과거로부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2.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따라해 보실까요. “예수님의 부활은 현재의 문제도 해결한다.” 모든 사람은 현재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현재 어떤 문제도 없다고 한다면 심장박동을 체크해 보십시오. 문제가 없는 사람은 공동묘지에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피곤하고, 짜증나고, 아프고, 지치고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고, 행복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에겐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삶의 모든 스트레스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는 다 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혹 염려가 들어와도 기도제목으로 바꿔질 줄로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극복하는 능력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7절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는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만난다 할지라도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인간의 최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이깁니다. 어떻게 죽음을 이깁니까?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부활의 영체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죽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간이 죽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도 그리 머지않은 2045년경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십억 개의 미세한 기계(나노 로봇)가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 노화를 막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지능이 출현해 인간과 결합하는 ‘사이보그 시대’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2045년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건강 관리법은 이러합니다. 첫째, 체중과 식단 조절입니다. 최적 체중인 65㎏, 신장 168㎝을 유지하고 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해 하루 탄수화물 섭취량을 80g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매일 30~60분씩 걷는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3-4회 근력강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셋째,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하루 8시간 숙면하고, 명상도하고 마사지를 받기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넷째, 뇌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자체가 우리의 뇌를 만들어내므로 지적이고 예술적인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일은 중요한 노화 방지 활동이라고 합니다. 다섯째, 몸 안의 독소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섯째, 검사를 통해서 혈액 수치를 일상적으로 점검하고 컴퓨터 단층 촬영을 통해 인체 깊숙한 곳의 장기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곱째, 신체의 생화학적 재편성을 위해 하루에 150알 정도의 영양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합비타민과 무기질 혼합제, 당뇨병 예방제, 콜레스테롤 수치 조절제, 스트레스 관리용 알약 등을 먹어야 한답니다. 이렇게 하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관리를 하면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제2의 진시황제가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인간은 죽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피부가 노화되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세포가 노화되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도 사망의 권세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불행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의 문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에 의문부호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라는 감탄부호가 생기기를 축복합니다. 부활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 죽음을 해결하신 것입니다. 죽음으로서 죽음의 세력을 물리쳐 주신 줄로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 보면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의심하는 사람, 두려워 떨며 걱정하는 사람, 세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비겁하고 겁이 많던 사람들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아간 줄로 믿습니다. 세상을 향해 가던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사도 바울은 복음전하는 자가 된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인생의 가치와 목적이 바뀌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현실의 문제가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고 병에 걸릴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서 영원한 새 생명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는 이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않는 몸으로, 죄 짓고 타락하고 수치스럽게 산 욕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병들고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으로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기 바랍니다.

3. 미래를 극복하는 능력
 또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미래를 극복하는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겐 과거의 문제가 있고, 현재의 문제가 있지만 미래의 문제도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에너지, 식량, 인구증가, 공해……. 등 모든 문제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핵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지구 종말의 시계가 11시 54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인류의 미래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증명합니다. 경제문제만 해도 이제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닌 지구촌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미래는 너무도 어둡다는 것입니다.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의 미래가 어둡다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다가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그렇습니다. 이 세상으로서의 미래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셔서 새롭게 하실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엔 죽음도 없고, 질병도 없고, 슬픔도 없고, 문제도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이 우리의 미래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미래도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아래서 다 해결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문제 많고 고민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 세사에서 그 문제 때문에 실망하고 한숨짓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미래를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고, 부활을 바라보고, 회복을 바라보고, 승리를 바라보면서 기쁘고 감사하며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예수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 동행하시고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제자들은 예수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육신의 감각으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런 그들이 언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주님께서 성경말씀을 풀어서 말씀하실 때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그 가슴이 뜨거워짐으로 비로소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된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활의 주님 앞에 의문부호가 있는 분들은 기도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오셔서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시시기를 기도하십시오. 말씀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부활의 주님을 의지하고 죄에서 승리하시고, 죽음에서 승리하시고 미래 영생천국을 얻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서 3:10~11
3장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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