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교회(마16:13-20)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고 신앙 속에 교회관이 바로 새겨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제는 6·25동란 61주년 기념일 이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반세기 만에 세계 9위 경제 강국이 된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가 되었지만 전쟁의 참상이 얼마나 참혹했겠습니까? 국토의 95%가 파괴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물론 주변의 도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온 줄로 믿습니다. 어느 자료에 보니까 지금까지 몇 번 내전에 휩싸일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도 아예 손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이 손을 놓았더라면 북에서 남침을 했을 것이고 또다시 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없이 60년 동안 이처럼 평화와 번영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켜준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한 것이었지만 세계질서를 책임져야 할 미국이었기에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6·25 전란으로 인한 희생자를 보면 남한 민간인의 인명 피해는 사망 37만 3500여 명, 부상 23만여 명, 피난민 240만 명, 전쟁고아 10만여 명, 한국군 사망자 5만 8800여 명, 부상자 17만 8600여 명, 이 외의 재산피해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 전쟁기간 중 북한은 8만 5000명에 달하는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을 포로로 납치해 갔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북한지역으로부터는 3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공산학정을 탈출하여 월남하여 대한민국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미군 3만 6천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지금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죽은 미군의 숫자의 10배에 해당하는 군인이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런 희생을 통해 이 민족은 지켜졌고 지금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희생을 통해서 이 민족이 지켜졌습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참전 16개국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는 6,25때만 되면 세계에 흩어져 있는 참전용사들을 초청해서 그들에게 감사하고 위로하는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많이는 못해도 한 두 분이라도 초청해서 우리나라를 구경시켜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전한 국가가운데에는 지금은 국가적인 상황이 역전돼서 오히려 우리는 선진국이 되고, 미개한 가운데 살아가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에서 그 나라에 장학금도 제공하고 많은 좋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008년도에 전국 중·고등학생 1600명을 대상으로 6·25에 대한 인식을 설문조사 한 결과에 의하면 ‘통일을 위한 전쟁이다’가 20.5%, ‘남한의 북침이다’가 4.7%, ‘잘 모르거나 관심 없다’가 17.1%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은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기까지 미군에 의한 희생자가 1천218명이라고 합니다. 미군이 우리나라에 와서 죽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피해를 받은 것만 생각합니다. 또 미국이 자국의 이익 때문에 파병을 한 것이지 우리를 위해 파병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나를 도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도왔다고 하는 것과 같은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런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6·25동란 61주년을 지난 이 민족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우리 민족이 없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오늘과 같은 축복은 번영은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를 도운 여러 나라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6.25동란 61주년을 맞이한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되어지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일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미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사교장화 되어서 그렇습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면 교회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부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신앙고백의 공동체
교회는 무엇입니까? 따라해 보실까요. “신앙고백의 공동체다.” 오늘 말씀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보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석이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가리킵니다. 가톨릭에서는 베드로가 반석이기에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했던 신앙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누구든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그 심령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란 예수를 나의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가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합니다. 이는 ‘불러내었다’는 뜻으로 회중을 상징합니다. 죄악세상에서 바깥으로 불러낸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이 자리인줄로 믿습니다. 교회 문 만 열고 나가면 죄악세상입니다. 그 죄악세상에서 저와 여러분을 불러내어서 모인 하나의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악세상에서 나오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도 6월만 예배를 안 드리면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죄악세상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니까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해도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에 오염되고 찌들고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또다시 빠져나와서 내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고, 씻음 받고, 힘을 얻고 세상에 나아가야만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는 교회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 받아 거룩하게 되어 구원 받음으로 성도라고 부르는 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는 자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부르는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공동체인줄로 믿습니다. 가장 보배로운 공동체인줄로 믿습니다. 가장 존귀한 공동체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축복하는 자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를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축복하고, 교회를 보배롭게 여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 성경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지불하시고 사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 주님의 교회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피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규모가 크든 작든 건물이 화려하든 초라하든 모두 거룩합니다.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목사도 주인이 아니요 장로도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섬김의 대상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교회를 섬기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는 것을 위해 힘쓰고 노력하는 모든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이요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모습으로든지 교회를 섬기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올 때 카풀을 해서 주변의 사람들을 모시고 오는 것도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주차로 봉사하는 것도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방송실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돕는 것도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성가대로, 목자로, 교사로, 예배순서를 통해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금번 맥추감사주일은 교회사랑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왜 맥추감사주일을 교회사랑 주일로 지킵니까? 맥추감사절을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유월절 후 7*7=49일이 지난 안식일을 맥추감사절이라고 합니다. 또 오순절은 한 순이 열흘이므로 유월절 후 오십일을 따져서 오순절이라고 말합니다. 이 오순절 날 성령께서 임하시고, 성령께서 임하시면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맥추절과 오순절은 구약적인 개념으로 계산하기도하고 태양력으로 계산하기도하고 음력으로도 계산하기 때문에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맥추절과 오순절을 같은 개념으로 보아서 맥추절을 교회가 시작된 절기로 보고 교회사랑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교회에 대한 사랑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즈음엔 ‘아무 교회나 다 교회다. 어느 교회든지 다 주님의 교회다.’ 라는 개념이 확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대한민국에 있는 집이 다 내 집입니까? 아니잖습니까? 내 집은 한 곳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애정도 없어지고 내 교회라는 의식도 없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구에 가면 4대 장로님 가문이 있습니다. 대구제일교회에 시무하시는 이철룡 장로님인데 그 고장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내과병원원장이십니다. 이 장로님은 대구에서 돈이 제일 많고 인격이 제일 좋고 병원은 제일 잘 된다는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4대가 한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며 섬겼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4대라면 대략 12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 장로님은 교회를 지키는 한 뿌리 역할을 감당한 분입니다.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할 신앙의 덕목을 가진 분입니다. 복의 복은 한 뿌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장로님이 “3년 적선을 하면 명당이 필요 없고 길거리에 묘를 모셔도 자손이 잘된다고 하는데 4대가 한 뿌리가 되어 교회를 섬기니 당연히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했답니다.
그동안 교회를 옮길 상황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의시이니까 외국에 가서 공부도 해야 했을 것이고 지방이니까 서울에 올라올 일도 있었을 것이고 얼마든지 자기의 성공과 발전을 위해서 더 나은 곳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럼에도 이 교회는 나의 교회라는 신념으로 묵묵히 교회를 지켜왔던 것입니다. ‘이 교회는 나의 교회, 뿌리를 박아야 할 교회, 뼈를 묻어야 할 교회, 내가 헌신해야 할 교회, 내가 사랑해야 할 교회, 내가 섬겨야할 교회’로 마음에 새겨 놓으니까 4대가 한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목회자는 부임하고 또 이임을 하지만 성도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평생 뼈를 묻고 대를 이어 헌신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있어야 복도 받고 영광도 됩니다. 4대가 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4대가 한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목회자는 어렵지만 그러나 장로로 4대를 섬기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축복의 가문이 나오도록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가문이 복된교회에서 4대 장로가 나올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앞으로 100년 후의 일입니다. 100년이 지나가는 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고 온갖 유혹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환란과 역경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요즘은 성도들이 얼마나 교회를 쉽게 옮기는지 모릅니다. 기분이 조금만 상해도 금방 옮겨버립니다. 그러니까 평생 나의 헌신과 사랑을 심어 충성할 교회가 없는 교인이 많습니다. 교회는 모두 같으니까 어디나 주님의 교회라는 주장을 하면서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 요즘 성도는 목회자를 향해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겠다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기에 이 카드를 만지작만지작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슬쩍 보여주기도 합니다. 누가 주인이기에 그렇습니까? 주님이 주인이시라면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지만 표면적인 주인은 여러분입니다. 저는 몇 년 지나면 은퇴하고 떠나야 됩니다. 그러나 평신도는 은퇴가 없습니다. 물론 직분에서는 은퇴가 있어도 교회는 은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된교회가 내가 뿌리를 내리고 복을 받아야 할 교회라는 의식이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교회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완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헌신과 섬김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문제가 많습니다. 문제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아무 문제가 없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보였을 때 그 문제를 내가 끌어안으므로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사랑이 없다면서 밖에 나가 교회를 향해 돌팔매질을 합니다. “우리교회는 사랑이 없어. 사랑이 없어.” 그러나 사랑이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이 없는 현장에 와서 사랑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섬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들어와서 섬김이 없는 부분에서 섬겨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사랑해야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시편 122편 6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바꾸어 말하면 ‘복된교회의 평안을 구하라 복된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는 형통하리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도 사랑해야 말씀에 은혜가 됩니다. 목회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천사의 설교를 해도 은혜가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어떤 설교를 해도 은혜가 되고 용납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안 되면 회개하고 성령님께 구해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를 사랑할 수 있고 목회자를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한국교계의 유명한 신학자 신성종박사님이 있습니다. 총신대학교 대학원장을 지내시고 교수를 역임하셨고 지금은 은퇴를 하셨지만 충현교회 담임목사님을 하셨던 분입니다. 이분께서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 대목을 보면 천국에 가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상을 주시는데 제일 큰 상을 받는 사람이 복음을 위해서 순교한 사람이랍니다. 두 번째로 큰 상을 받는 사람은 전도해서 영혼구원을 많이 한 사람이랍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땀을 흘리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물질도 아끼지 아니하고 온갖 헌신과 사랑으로 교회를 섬긴 자에게는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상을 예비하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장이 부실하다고해서 그것에 대해 자꾸 부정적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그 목장을 사랑하십시오. 그 목장을 세우십시오.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비결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부담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픔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계속 머리를 갸우뚱하며 고민을 하면 남편은 부담감을 가집니다. ‘돈을 더 벌어야 되겠구나. 내가 용돈을 적게 써야 되겠구나.’ 마찬가지로 남편이 힘들어하고 고민하면 아내도 부담감을 가집니다. 부담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부부가 아닙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부부요 가족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공동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즈음엔 교회를 정할 때도 아무 부담 없는 교회를 선호합니다. 부담감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부담감을 가져야 됩니다. 함께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교회공동체입니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보이거나 문제가 되었을 때 비난하거나 잘못되었다고 꼬집는 것은 진정한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교회에 문제가 보이면 그것이 나의 부담감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가 보이는 것에 여러분의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보이는 것에 여러분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비난의 돌팔매가 아니라 문제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섬기고 자기를 희생하여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은 형통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맥추감사주일을 교회 사랑주일로 정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물도 드리기를 바랍니다. 행여 지금까지 교회에 나오기는 했지만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회개해야 될 기도제목인줄로 믿습니다.
3. 승리하는 교회
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교회는 영원토록 승리하는 교회인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포하십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영원합니다. 교회는 불멸합니다. 교회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없어져도 교회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즘 교회의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교회는 어떤 죄악의 세력이 공격을 한다 해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영원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공동체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가 복음을 전파함으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한 수많은 영혼들이 각 나라와 족속 그리고 민족과 방언 가운데서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는 백성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교회가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며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구원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교회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두축은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승리를 위한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기 바랍니다. 복된교회를 나의 교회로 삼아 한 뿌리 신앙을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통해 복을 받아 영광의 가문을 이루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 구원 사역을 교회의 본질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헌신하여 영원토록 승리하는 교회를 이루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16:16~20 16장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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